어느 날 조리원 이야기가 나왔단다. 엄마보다 2~4 개월 일찍 임신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미리 조리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고 있더구나. 출산 후 조리를 조리원에서 할 것인지 집에서 할 것인지 누가 돌봐 줄 것인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단다.
"너희들 출산 후 조리는 어떻게 해?"
"난 지금 알아보고 있어. 그런데 가격이 좀 비싸. 3백만 원인데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 250만 원도 있는데 나는 300만 원짜리가 마음에 들거든."
"그럼 하고 싶은 곳으로 해. 평생 한두 번 있는데 이것도 안 하면 후회한다고 하더라."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2주 동안 조리를 하는데 3백만 원이 필요하다는 사살에. 그리고 3백만 원이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격의 연속이었지.
엄마는 외할머니가 조리을 해주기로 해서 가격을 알아보지 않았거든.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알아보지 않고 있다 가격을 들으니 놀랄 수밖에.
"가격이 그렇게 비싸? 우아. 나 진짜 놀랬어. 난 엄마가 조리를 해주기로 해서 조리를 집에서 할 거거든. 난 입맛도 까다로우니 엄마에게 먹고 싶은 거 해달라고 하면서 집에서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이때 한 친구가 슬픔을 보이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문장은 거기 있던 사람들을 슬픔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단다.
"좋겠다. 난 엄마가 없어서 먹고 싶은 것도 해달라고 할 수 없는데... 아, 짜증 나. 난 왜 엄마가 없는 거야"
순간의 정적. 밀러 오는 슬픔은 눈물로 반응을 보이려고 했단다. 잊고 있었다. 친구의 엄마는 조금 일찍 돌아가셔서 없다는 사실을. 순간 친구가 임신을 하였을 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참고 감췄던 눈물을 보이기 충분했단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울 수는 없었단다. 친구의 마음이 더욱 아플까 봐 꾹 참고 다시 감추었지.
그때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단다.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울까? 얼마나 생각날까? 멀리라도 있으면 찾아가기라도 할 텐데. 갈 수 없는 곳에 있으니 어떻게 찾아갈까?
임신을 하면 엄마를 많이 찾는 거 같구나.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부터 시작해서 " 엄마 때는 어땠어?" 딸의 말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과정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마치 알에서 깨어나 나 역시도 엄마가 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연이어 따라오는 생각. 나도 내 아이가 컸을 때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내 아이가 슬픔을 경험하지 않도록. 그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옆에라도 있어줘야 할 텐데. 누구에게 쉽게 말하지 못 한 아픔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그리고 또 연이어 외할머니의 엄마를 생각했단다. 외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을 건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엄마는 한 번씩 외할머니에게 물어본단다.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 생각 안 나?"
"한 번씩 생각나지.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2년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더구나. 그런데 어째 겠냐. 돌아올 수 없는데."
'엄마, 난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속으로 난 어찌해야 할까?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 눈물이 나를 달래줄까? 그럼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함께 해야 할까?
이별에 대한 답을 누가 정확히 알까 싶구나.
하지만 이별은 아직 미정이고 현재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들어오는구나. 너와 내가 함께 할 때 훗날 조금 덜 후회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때론 슬픔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을 때도 많단다. 슬픔이 나쁜다는 게 아니라 깊으면 좋지 않다는 거지. 그 늪에는 눈물만 주고 오면 되는 거 같구나.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조금 더 잘하자꾸나. 엄마가 매일 너에게 미안한 감정을 하나씩 해소해 나가면 너도 조금씩 성장해 가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부족함을 느끼는 거 같구나. 그럼에도 잘 커주는 네가 고맙고 이렇게 같이 함께 있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단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서 후회가 최소가 되도록 노력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