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아 요즘 태아 때의 일을 편지로 쓰면서 죄책감이 많이 들었단다. 그래서 오늘은 현재 일로 너에게 편지를 쓰고자 한다.
편지 속에서는 "사랑하는 딸아"부터 시작하여 다정함이 넘치는데 현실 속에서 엄격하고 야단치는 나 자신을 보니 괴리감이 들더구나. 이 편지를 계속 써야 하나 생각도 들고.
너희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점은 '아이들은 강하고 부모는 자식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잘못했을 때 훈계를 해야 하는데 순수함이 가득 차고 티 하나 없는 너희들의 얼굴을 보면 차마 혼을 내기가 힘들단다. 혼을 내기는커녕 안아주고 싶고 뽀뽀해주고 싶은데 그걸 꾹 참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하지만 한 번씩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엄격했던 엄마의 마음이 폭격당해 무너져 두 팔로 너희를 안을 때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을 느낀단다.
'아, 부모는 약하구나.' 잘못된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내가 안아줌으로써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힘들지만 훈계를 할 때는 모진 마음먹고 하자. 다 끝난 뒤에 앉아 줘도 되니깐.' 혼자서 생각하고 엄격함을 유지했단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잘못됨을 느끼게 되었단다. 처음엔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훈계가 이제는 변색되어 화풀이하는 훈계가 되어버려 너희들에게 큰 소리를 치는 모습에 자기반성이 들어가게 되더구나.
올바르고 강하게 자라라고 엄격한 면을 보여줬지만 엄격함이 올바르고 강하게 자란다는 보장도 없더구나.
엄마는 네가 강하게 자라기를 원했단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남들보다 좀 더 엄격하게 했단다. 세상을 살아가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기에 강하길 원했고 그 마음에서 잘못에 대해 엄격했던 엄마를 반성해 본다.
엄하게 키우는 게 강하게 키운 건가? 꼭 강해야만 세상을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유함은 강함을 이기지 못할까? 많은 생각이 반복됨의 끝에 나의 방식이 잘못됨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것을 바꿔야겠다 생각했단다. 반성하는 생각 다음으로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니.
안아주면서 잘못된 것을 알려줄 수도 있는데 왜 그리 엄격하게 했을까? 아마 엄격해야 빠른 반응이 오기에 이게 맞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다. 정작 그것이야말로 한순간 반짝 보이는 반응일 것인데.
며칠 전부터 너에게 화를 좀 낮추고 조금씩 다정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봤단다. 엄격한 말 대신 다정하게 말하는 나 스스로가 뿌듯하고 나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단다. 이렇게 조금씩 바꿔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유함이 강함을 이기고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지만 네가 누군가의 잘못을 말할 때 엄마처럼 누군가에게 정 없이 딱딱함이 아닌 포옹력있는 다정함을 보여주게 더 좋겠다 생각했단다.
자식은 부모를 배우고 자란다고 하는데 엄격했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벗어던지고 다정함으로 포옹력있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