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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Sep 04. 2024

아메리카노 한잔

김두필 초단편소설

"아 더워... 이게 도대체 몇 시간 째야...."


처음 보는 곳을 민수는 계속해서 걸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자마자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으니까.

자신이 도대체 왜 정신을 잃었으며 어째서 이곳에서 눈을 떴는지 모른 채 그냥 걸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건조한 모래뿐이었다.


"이곳은 사막인가?"


모든 것을 말려 버릴 것처럼 생긴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런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생각하던 사막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전갈도 있고 뱀도 있고 하던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앞만 보며 민수는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입술은 말라비틀어졌다. 입안에도 더 이상 수분기가 없었다.

침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민수는 그렇게 메말라 가고 있었다.


"아... 물... 물이 필요해..."


민수는 물이 간절했다.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수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는 서걱거리는 모래들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강렬한 태양만이 민수를 내리쬐고 있었다.

눈부신 하늘을 보며 민수가 말했다.


"제발 물 좀 주세요..."


그 한마디와 함께 민수는 앞으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누워있는 자신이 마치 모래처럼 느껴졌다.

수분끼가 없는 민수의 몸은 모래와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가던 민수의 눈에 작은 카페가 들어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민수가 다시 힘을 내 걷기 시작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시원한 무언가를 한잔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짜낸 민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카페로 들어갔다.


"살려주세요."


카페는 고소한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규모가 작은 카페이기에 보이는 것이라곤 작은 테이블 한쌍뿐이었다.

민수는 그 작은 테이블에 쓰러지듯 주져 앉았다.

쓰러져 있는 민수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이곳의 바리스타가 민수를 맞이했다.

중후한 백발의 노신사가 멋진 저음으로 물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메뉴판에는 오직 커피 종류의 음료들 밖에 없었다.

지금 민수는 커피가 먹고 싶지 않았다.

물 혹은 시원한 탄산음료가 간절했다.

메말라 있는 목을 뚫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민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탄산수 같은 것은 없을까요? 목이 너무 말라서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커피 종류밖에 팔지 않아서요."


백발의 노신사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수에게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민수가 입을 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쓴 맛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원함이 간절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시원한 것만 먹을 수 있다면... 그깟 쓴 맛쯤이야 극복할 수 있지 뭐..."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노신사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노신사는 바로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꽤나 자연스러운 움직이었다.

그리고 아주 정성스럽게 커피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커피를 뽑던 노신사가 민수에게 물었다.


"이곳까진 어떻게 오셨습니까?"


"모르겠어요. 잠에서 깨보니 이 동네였습니다."


"그렇군요."


노신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카페에서 마주한 민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치 자주 있는 일처럼 말이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노신사는 컵에 얼음을 가득 담았다.

드르륵드르륵 얼음을 푸는 소리에 민수의 갈증은 더해갔다.

메말라 있던 침이 나오기 시작하고 민수의 목으로 꿀꺽하고 넘어갔다.

저 시원한 얼음의 느낌을 아는 민수에게는 고문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음이 가득한 잔에 노신사가 추출한 커피를 쏟아부었다.

그러자 뜨거운 커피가 얼음을 녹이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변하고 있었다.

완성된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아 노신사가 민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메리카노는 조금 써요. 그래도 먹다 보면 향도 좋고 고소하답니다."


목이 말랐던 민수는 급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쓴맛이 많이 나면 어떠한가? 

지금 이 갈증만 해소될 수 있다면 미친 듯이 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민수의 생각이 무안하게 커피는 너무 썼다.

순간 빨대에서 입을 떼며 민수가 말했다.


"윽! 이거 너무 쓴데요?"


"허허허. 그러게 너무 급하게 드시지 말고 천천히 먹어봐요. 뭐 눈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봐요..."


노신사의 말이 옳았다. 민수에게는 더 이상 갈 때도 없었다.

나가봐야 눈앞에 펼쳐지는 건 넓디넓은 모래사막뿐이었다.

급할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천천히 마시면서 이곳에 있는 게 더 나았다.

노신사의 말을 들은 민수는 천천히 조금씩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너무나도 썼지만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음미하던 민수가 입을 열었다.


"정말 쓴 아메리카노였는데 먹다 보니 참 고소하네요."


"거 보세요. 쓰지만 맛이 참 좋지요?"


그렇게 민수는 아주 천천히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있었다.

메말라 있던 민수의 입도 아주 천천히 젖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동안 민수의 마음도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그렇게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있는 민수에게 노신사가 물었다.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참 쓰죠?"


"네... 정말 쓰네요..."


"근데 마시다 보면 고소하고 쓴 맛은 참을 만하죠?"


"네... 천천히 마시니까 참을만하더라고요."


노신사가 민수의 어깨를 다독여 줬다.

노신사의 토닥임에 민수의 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 나 갑자기 왜 이러지?"


민수는 알 수 없는 감정과 안도감으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항상 바쁘게 살아왔던 민수였다.

민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 바쁜 게 사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민수는 단 한 번도 바쁜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곳 사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수는 주변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미친 듯이 앞으로만 나아갔다.

어떠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민수는 그냥 걸었다.

그냥 앞으로 걷다 보면 무엇인가 나올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쓰디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이 시간 동안 민수는 여유로웠다.

여유로움은 민수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민수를 울게 만들었다.

한참을 다독여 주던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인생도 똑같아요. 참 쓰지만 또 참고 천천히 살아가다 보면 참을 만 해...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곳에 이렇게 오지 맙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이 줄은 내가 잘라 줄 테니까 다시 한번 참고 살아봐요."


싹둑!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민수는 눈을 떴다.

눈을 뜬 민수는 연신 컥컥 거리며 목을 만졌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자신의 자취방.

그리고 잃어버렸던 모든 기억이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사막에 있을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이때까지의 삶의 기억이 돌아왔다.

미친 듯이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기억.

수십 장을 쓰고 지우고 를 반복하면서 제출하던 이력서의 기억.

자신의 땄던 많은 자격증의 기억.

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던 기억.

그리고 취업에 실패하고 무너져버린 자신의 모습.

모든 기억이 민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민수는 자신의 목을 더듬거리며 만지기 시작했다.

목에 있는 잘린 빨랫줄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리곤 민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져 있는 의자와 그 위로 잘려있는 주황색 빨랫줄이 보였다.

그리고 노신사의 말이 생각이 났다.


"인생도 똑같아요. 참 쓰지만 또 참고 천천히 살아가다 보면 참을 만해..."


민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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