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초단편소설
"야! 따라와."
오늘도 역시 그냥 지나가질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세 명의 악마들.
난 또 그 녀석들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가지 않으면 올라갈 때까지 또 맞는다.
아니 뭘 하든 안 하든 난 그냥 맞는다.
나에게 옥상은 그냥 맞는 곳이다.
그게 지긋지긋한 나의 일상이다.
퍽! 소리와 함께 난 또 옥상 바닥으로 쓰러진다.
딱딱한 옥상 바닥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차디찬 콘크리트 옥상 바닥이 나의 침대보다 더 많이 나를 받아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생각한다. 어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지 않으면 난 또 맞으니까.
그렇게 일어나자마자 한 놈이 나에게 묻는다.
"죽고 싶냐?"
지긋지긋하고 우습지만 무시무시한 질문이다.
우선 너무 많이 들었다.
죽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가 처음 저 질문을 들었을 때 참 우스웠다.
그리고 죽고 싶냐라고 너무 당연하고 쉽게 내게 물어본다.
무섭다. 저 질문이 더 이상 나에게는 장난이나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저 질문에 홀로 대답해 본다.
그래. 요즘 난 죽고 싶다. 너무 무섭지만 죽고 싶다.
이렇게 사는니 죽는 게 낫다.
이렇게 맞다 보면 언젠가 정말 죽을 거 같다.
이게 내가 저 새끼들에게 맞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다른 한 녀석이 또 나에게 말한다.
"요즘 돈 가지고 오는 게 적다?"
아... 돈.
나에게 있어 돈은 나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저들에게 있어 돈은 나의 목숨보다 중요하다.
나의 목숨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닌데.
저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나의 목숨으로 거래를 하려 한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말이다.
정말 화가 나지만 또다시 난 이렇게 말한다.
"미안해..."
나의 목숨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걸까?
아니면 저들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못해 미안한 걸까?
뭐 그냥 다 포함한 걸로 치련다.
어쨌든 미안한 건 사실이니까.
오늘도 여느 때와 같았다.
처절한 날 중 하루였다.
그들은 날 또 조롱하고 괴롭혔다.
거의 2년을 넘게 받아온 고통이다.
이 고통은 적응도 안된다. 항상 힘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너무 힘든 날이었다.
다른 날 보다 옥상 바닥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른 한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병신... 나 같으면 안 산다."
너는 죽을 결심을 해보기는 했을까?
해보기나 하고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내뱉는 건가?
하지만 뭐 괜찮다. 너의 말은 오늘의 나에게 용기를 줬으니까.
니들이 조롱하는 그 병신이 죽음이라는 결심을 하게 해 줬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 녀석들이 나를 조롱하며 웃고 떠드는 그 순간.
녀석들이 한 눈을 팔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그리고 웃음 섞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병신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왜? 뛰어내리게?"
그래 맘껏 조롱해라. 난 여기서 한 발짝만 나아가면 이제 편안할 테니까.
이제 딱 한 발짝만 앞으로 가면 편안해진다고 생각할 때였다.
순간 시공간이 모두 멈추고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어이? 그냥 죽기 억울하지 않아? 내가 도와줄까?"
한 꼬마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그냥 동네 꼬마 같은 모습을 한 녀석.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짓궂은 목소리를 가진 그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꼬마에게 내가 물었다.
"넌 누구야?"
"나? 뭐 악마 비슷한 거? 지금 너에겐 신 같은 거려나?"
꼬마 녀석이 비열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어린 녀석임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의 웃음소리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도 죽을 결심을 한 놈이다.
꼬마 악마 따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과연 저 녀석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다시 그 녀석에게 물었다.
"네가 뭘 도와줄 수 있는데?"
그러자 그 꼬마 악마는 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
멋지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권총이 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곤 악마 녀석이 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목숨을 나한테 주면 거기에 총알을 하나 넣어줄게. 그럼 넌 너를 괴롭혔던 놈들 중 가장 나쁜 한놈을 쏴 죽이면 되는 거야... 쉽지? 그냥 방아쇠만 살짝 당기면 돼"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나에게 총을 건네는 녀석이었다.
나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아니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뭐 사실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난 죽을 거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 한놈은 데려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좋아 내 목숨 줄게."
난 대답과 동시에 녀석에게 권총을 받아 들었다.
멈춰있던 시 공간이 풀리고 난 권총을 든 채 그 녀석들 앞에 섰다.
권총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그 녀석들은 순간 놀라는 듯했다.
하지만 한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너 장난감 총으로 뭐 하냐?"
순간 난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더 이상 농락당하기 싫고 조롱받기 싫었다.
권총을 든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악마 꼬마에게 말했다.
"저 새끼들 다 의자에 묶어줘!"
그러자 악마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걱정 마."
대답과 동시에 악마 녀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녀석들이 한 놈씩 의자에 묶여 앉아있었다.
총으로 쏴 죽이기 아주 쉽게 말이다.
악마가 그놈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니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한 줄은 알지? 역시 모르나? 아무튼 니들 중 한놈은 오늘 저놈 손에 죽을 거야. 그러니까 억울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 알았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걸까?
그 녀석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억울하다는 듯 열변을 토하며 악마에게 따졌다.
그러자 악마는 손짓 한 번으로 그 녀석들의 입을 모두 막아 버렸다.
악마가 나에게 다가와 두 손을 공손하게 펼치며 말했다.
"자 이제 골라봐... 어떤 녀석을 죽일 거야?"
나는 한 놈씩 돌아가며 그 녀석들의 눈을 바라봤다.
녀석들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겁에 질려서 말이다.
세 놈 다 겁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의 눈빛은 저 녀석들에게 간절하지 못했던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더 이상 나는 당하기만 하는 그런 병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저 새끼들이 목숨을 구걸하는 병신들이니까 말이다.
기분 좋은 상상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천천히 첫 번째 녀석에게 다가가 총을 겨눴다.
악마가 타이밍 좋게 첫 번째 녀석의 입을 풀었다.
"미안하다!! 제발 용서해 줘! 저 새끼가 시켜서 한 일이야... 진짜야..."
두 번째 녀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녀석이 지목한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두 번째 녀석에게 총을 겨눴다.
"아니야!! 저 새끼야!! 저 새끼가 시킨 거야 씨발!!! 난 죽이지 마!!!"
두 번째 녀석이 세 번째 녀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마지막으로 세 번째 녀석에게 총을 겨눴다.
"씨발!!!! 아니야!!! 저 두 새끼들이 한 거야!!! 나 아니야!!! 야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그런 거잖아!!!"
"푸하하하!!!"
난 웃음이 나왔다.
사람 괴롭힐 때는 한 팀 같던 녀석들이 죽음은 서로에게 미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음도 잠시였다.
한놈만 죽일 수 있다는 현실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결국 난 화를 누르지 못 한채 소리쳤다.
"씨발!!! 왜 한놈뿐이야!! 왜!!!!"
난 세 놈을 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세 놈을 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저 새끼들을 다 죽여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난 웃었다.
난 권총을 들어 내 머리를 겨눴고 한 발의 총알로 나 자신을 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였다.
얼굴이 발갛게 닳아 올라 있는 악마 녀석이 보였다.
악마는 나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미쳤어?! 너한테 쏘면 어떻게 해? 이건 계약이랑 다르잖아?"
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총알 세 발 줘. 너무 억울하잖아? 안 그래?"
나의 말에 악마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잠시 후 고민하던 악마가 씩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오케이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