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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Oct 16. 2024

김박사의 일기장

김두필 초단편소설

32030년 4월 3일

내 딸 수빈이가 아프다. 애지중지 키워온 나의 외동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수빈이가 8살 때 와이프와 이혼 후 홀로 열심히 키운 내 딸이다.

조금만 있으면 20살이 되어 날개를 펼쳐야 하는 내 딸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수빈이의 병명은 혈액암.

흔히들 백혈병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다른 암이야 수술해서 암덩어리를 제거하면 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형체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에게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 닥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난 자신했다.

내 딸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라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난 대한민국 의사니까.

그렇다 난 의사다. 하지만 난 내 딸이 병에 걸리는지도 몰랐던 바보 같은 아빠다.

의사면 뭐 하는가? 내 딸의 건강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이 일기를 쓰면서도 그저 손이 떨리고 눈물만 나올 뿐이다.

난 빵점 짜리 아빠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내 딸 수빈이를 살리고 싶다.


2030년 4월 5일

수빈이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어제 동료인 오박사에게 수빈이의 차트를 보여줬다.

오박사 역시 고개를 저으며 나의 어깨를 토닥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수빈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냐고.

오박사에게 돌아온 대답은 8개월 남 짓.

난 또다시 절망감에 빠졌다.

난 수빈이를 살리고 싶다. 아니, 살려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전부를 걸고서라도 수빈이를 살릴 것이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하면 될까?

결론은 하나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공부 그리고 연구.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하는 것이다.

수빈이는 꼭 살 것이다. 아니 내가 살려낼 것이다.


2030년 5월 6일

우선 오박사에게 한 동안 수빈이를 맡겼다.

우리 수빈의 몸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부탁 헸다.

오박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수빈을 맡기고 지금 한 달이 흘렀다.

난 지난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혈액암 공부에 매달렸다.

잠도 자지 않았다. 그저 전 세계의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연구는 아직 하지 않았다. 우선 공부가 먼저니까.

모든 연구에는 기초가 중요하다.

기초가 단단해야 연구의 실패가 줄어든다.

혈액암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항암화학요법(면역치료제, 표적치료제), 방사선치료,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이 대표적 방법이다.

지난 한 달간 오박사가 수빈이에게 시도를 해 보았지만 별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방법은 내 연구에서 배제해야 한다.

기존에 없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써야 한다.

그게 불법일지라도 도덕적이지 못하더라도 그게 수빈이를 살릴 수 있다면 난 해야 한다.

남은 시간 난 최선을 다해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아빠가 널 꼭 살려내고야 만다.


2030년 6월 28일

오박사에게 수빈이를 맡긴 지도 어느덧 2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었다.

수빈이는 오박사가 잘 케어해 주고 있다.

덕분에 아직 수빈이의 상태가 많이 나빠지진 않았다.

그동안 나는 연구에 몰두했다.

수빈에게서 암덩어리를 꺼낼 연구를 말이다.

아직은 연구 중이지만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연구에도 어느 정도 발전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연구는 한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혈액암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해 낸 유일한 방법이다.

혈액에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암세포 덩어리를 난 고체화를 해볼 생각이다.

항암약을 써서 추적하는 것이 아닌 암세포 자체를 고체화시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이다.

기필코 해내고 말 것이다.


2030년 7월 7일.

고체화에 성공했다. 혈액 속에 있는 암세포를 형체화 시켜냈다.

항암이 아닌 혈액 속 암세포를 고체화시켰다는 것은 곧 빼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몸속의 폐암 아니 간암처럼 도려내거나 제거하면 된다.

내가 만든 이 알약을 섭취하면 혈액에 있는 암세포가 고체화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생겼다.

혈액 안에 고체화된 암덩어리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고체화 한 암세포를 어떻게 꺼낼 것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이 녀석을 꺼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액체화 된 혈액을 빼내서 들어가기 전 고체화를 시키고 혈액은 다시 수빈이의 몸속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저 방법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2030년 7월 15일

혈액 투석으로 실험을 강행했다.

내가 개발한 알약을 실험용 쥐에게 먹이고 투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여과기를 놓고 고체화된 암세포 녀석을 걸러내고자 한 것이다.

어느 정도 암세포가 걸러진 것 같다.

이제 시간을 두고 관찰해 봐야겠다.

제발 성골 하길...


2030년 7월 21일

투석은 실패다.

일시적으로 멈췄다 들어간 혈액에서 암세포가 또다시 발생했다.

그러고 나서 혈액에 있던 암세포는 더 빨리 퍼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걸까?

일 회성이라서 그런 걸까?

그럼 일회성이 아니게 할 수 있을까?

일회성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여과하면 그 암세포 녀석들인 다 걸러낼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저 지긋지긋한 암세포 새끼들을 다 빼낼 수 있는지를...


2030년 8월 3일

시간이 가고 있다.

시간이 없다.

수빈이의 몸 상태가 이제는 좋지 않다.

컨디션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힘을 내야 한다. 잠을 더 줄여야 한다.

기필코 해내야 한다. 나는 아빠니까...


2030년 8월 15일

한 가지 더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 방법이 성공을 하면 수빈이를 살릴 수 있다.

수빈이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불과 3개월...

내가 할 수 있을까?

점점 힘이 빠진다. 지쳐간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2030년 8월 20일

에크모... 에크모를 써보려 한다.

일회성이 아닌 에크모를 이용해 오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여과를 시켜보고자 한다.

그리고 좀 더 미세한 덩어리를 걸러 낼 수 있게 여과기도 더 세분화시켰다.

이론은 충분하다.

이제는 해야 한다.

더 이상 실험용 쥐는 안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수빈이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

더 지체되면 수빈이의 컨디션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조금 더 준비하고 준비해서 시작해야 한다.


2030년 9월 1일

오늘 수빈이를 집으로 돌아왔다.

오박사는 내가 뭘 하려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오박사가 안다면 나를 말리겠지...

이제 멈출 수 없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 에크모를 돌리고 멈추고를 반복해야 한다.

수빈아 제발 버텨줘...

넌 꼭 건강해질 거야...

제 수빈이의 몸에 에크모를 연결한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2030년 9월 10일

성공이다.

에크모를 이용해서 암 덩어리 추출해 냈다.

수빈이의 컨디션이 돌아오고 있다.

지켜봐야겠지만 나는 수빈이가 살았다고 확신한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다.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모든 벌은 내가 받을 테니 수빈이를 살려달라는 것이다.

그거 하나면 난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이다.


2030년 9월 30일

수빈이는 이제 건강해졌다.

연구가 성공했다. 이 연구를 더 진행하면 많은 혈액암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와 실험을 세상에 알릴 수는 없다.

자칫하면 수빈이도 살 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딸로 이런 연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많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수빈이가 건강해진 것으로 만족한다.

이제 저 지하실 밑에 있는 암덩어리만 처리하면 된다.


2030년 10월 1일

암덩어리를 처리하려 했는데... 처리하지 못했다.

내가 수빈이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녀석은 그동안 열심히 세포 분열을 했다.

세포의 크기와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암 덩어리가 마치 아기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그 암덩어리를 없애기 위해 태우려는 그 순간.

암덩어리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아빠...라고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빈에게서 나온 저 녀석이 또 다른 수빈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고 싶어졌다.


2030년 10월 15일

암덩어리가 점점 더 성장해 가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되어 간다.

9세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또 다른 나의 딸... 내가 만들어낸 나의 딸이다...

이름은 수정이라고 지어줬다.

어디까지 세포 분열을 해낼까?

수정이에게 점점 정이 가고 흥미가 생긴다.


2030년 10월 27일

수정이는 이제 고등학생 정도가 되었다.

세포 분열을 열심히 해낸 것이다.

오늘은 수빈이와 수정이를 만나게 해 보았다.

수빈에게서 나와서일까?

수정이는 제법 수빈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수빈이가 좋아하지 않는다.

둘이 잘 어울리면 좋겠다.

결국 둘은 같은 아이니까....


2030년 11월 1일

수정이는 수빈이의 나이까지 완벽히 세포 분열을 이루었다.

수빈이의 나이가 되니 수정이의 세포 분열도 더 이상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큰일이다.

수빈이가 수정이를 싫어한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둘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길 바랄 뿐이다...


2030년 11월 13일

수빈이와 수정이의 사이가 점점 더 나빠진다.

수정이는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다.

나에게는 환하게 웃지만 수빈이에게는 전혀 웃질 않는다.

수빈이가 싫어해서 그런 걸까? 알 수가 없다.


2030년 11월 20일

수정이가 더 이상하다.

자고 있으면 조용히 와 나와 수빈이를 쳐다보고 있다.

어제는 자다 깨서 부엌으로 가보니 식칼을 꺼내 놓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둬도 될까?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었는데...

수정이를 지하실에 가둬 놓는 게 좋을까?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2030년 12월 1일

수정이의 공격성이 강해졌다.

어제는 수정이가 수빈이를 계단에서 밀어버렸다.

수빈이와 수정이를 떼어 놓아야 한다.

힘들지만 수정이를 가둬 놓아야겠다.


2030년 12월 20일

내가 잠시 병원을 다녀온 사이...

수정이가 지하실에서 나왔다.

지하실에서 나온 수정이는 칼을 들고 있었고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수빈이가 보였다.

순간 놀라 수빈이를 챙길 새도 없이 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수정이가 수빈이를 죽였다.

저 암덩어리가 결국 수빈이를 죽게 만들었다.

그때 태워버렸어야 하는데... 나의 실수다...

지금 밖에서 수정이가 소름 돋게 웃고 있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수정이의 목소리...

아빠... 빨리 나와... 아빠가 나 만든 거잖아...

그렇다 수정이는 내가 만들었다.

저 암덩어리를 죽여야 한다.

내 집에서 처리해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저 암덩어리가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나가야 한다. 나가서 암덩어리를 죽여야 한다.

내가 수정이를 죽일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죽이지 못한다면 그래서 저 암덩어리가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가 만약 수정이를 죽이지 못해 저 아이가 밖으로 나간다면 나의 이 일기를 본 사람이 수정이를 꼭 죽여주기를 바란다. 너무나도 위험한 아이니까...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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