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초단편소설
서울의 한 복잡한 골목의 작은 반지하 원룸.
현관문 옆쪽으로는 작은 화장실이 위치해 있는 보통의 원룸이다.
있는 거라곤 냉장고와 작은 티브이 그리고 삐걱거리는 침대가 전부였다.
그 오래된 원룸은 허름했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소주병은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었고 집안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또 시켜 먹은 듯한 먹다 남은 음식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약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다 쓴 주사기가 흩어져 있었다.
다만 이 방의 분위기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관문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여자의 핸드백과 구두뿐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물건이 이곳에서는 마치 특별해 보였다.
그 두 가지만 너무나 가지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 작은 침대에 영천이 쪼그려 앉아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미친 듯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니들... 뭐야?... 도대체... 뭐야?..."
어둠 속에서 연신 중얼대는 영천의 옆으로 아주 작은 빛이 새어 나왔다.
작은 원룸은 어둠 그 자체였다.
방안이 전부 불이 꺼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작은 화장실에서만 옅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옅은 빛이 새어 나오는 화장실 문틈 사이로 여자의 발이 보였다.
힘이 빠진 채 쓰러져 있는 연화의 발이었다.
누구한테 폭행을 당한 건지 얼굴은 멍투성이에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옅은 빛만큼이나 옅은 목소리로 연화가 말했다.
"살... 려... 주세요..."
***
다시 원룸 안.
침대의 영천은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니들 뭐야? 니들 도대체 뭔데 날 괴롭혀!!"
그러자 영천의 옆에 앉아있던 소연이 말했다.
"이거 너무 섭섭한데? 우리 기억 안 나?"
옆에 있던 지수도 말을 거들었다.
"너무해... 적어도 우리는 알아봐 줘야지..."
침대의 한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영천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영천.
잠시 후 어쩔 줄 몰라하면 연화가 쓰러져 있는 화장실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영천이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마치 똥 마려운 개 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때 그런 영천에게 소연이 말했다.
"그냥 죽여... 뭘 고민해?"
"죽여?"
영천이 소연에게 되물었다.
"그래 죽여 그냥..."
"씨발... 죽일까? 어?"
"그래 그냥 죽여... 어차피 쏟아진 물이야... 주워 담지도 못해... 그냥 죽여..."
소연의 말을 들은 영천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씨발. 죽여 그냥..."
그때 옆에 있던 지수가 영천에게 소리쳤다.
"그만해..."
"역시 그만해야 되나?"
영천이 지수에게 되물었다.
"그래 그만해 개새끼야..."
"역시... 그만해야겠지?"
"그래... 멈춰... 이게 그만해야 돼..."
"그래... 이제는... 더 이상..."
이때 소연이 지수의 입을 틀어막으며 영천에게 말했다.
"한 번이야... 한 번만 더 해... 죽일 때 생각을 해봐... 좋았잖아? 기분 째졌잖아? 안 그래?"
소연의 말에 영천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음성으로 웃어대는 영천.
그런 모습에 소연은 즐거워하고 지수는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방안이 떠나갈 정도로 웃던 영천이 멈추고 소연과 지수에게 물었다.
"니들 뭐야? 니들 도대체 뭔데 나한테 지랄들이야... 어?"
소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미친 새끼 넌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지?"
"뭐 니들... 천사와 악마... 뭐 그런 거야?"
영천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수도 냉정한 목소리로 영천에게 말했다.
"니라고 하지 마 잘한 것도 하나 없는 찐따 새끼가..."
"하! 찐따? 씨발 넌 착한 척하더니 사람을 병신 취급하네? 내가 너희들이 뭔지 알 필요가 있나? 씨발 꺼져!"
영천이 소연과 지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소연과 지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천의 말은 들은 채도 안 하고 자신들이 할 만만 계속하고 있었다.
연화를 두고 소연과 지수는 영천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소연은 계속해서 연화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지수는 계속해서 연화를 죽이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영천은 더 혼란에 빠져가고 있었다.
소연의 말에는 미친 듯이 웃고 지수의 말에는 미친 듯이 울어댔다.
마치 미친놈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울던 영천이 소리쳤다.
"제발 그만해!!! 이 미친것들아!!! 꺼져!!!"
"싫은데?"
"우린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소연과 지수가 말했다.
그리곤 또 둘은 자신의 할 말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를 영천에게 계속해 댔다.
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 영천도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듣고 있던 영천이 소리를 질렀다.
"아!!! 씨발!!!"
저 소리와 함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영천.
그러더니 다시 미친놈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웃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울기도 하는 영천이었다.
영천의 감정은 미친 듯이 계속해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소연은 더 비아냥 거렸고 지수는 더욱더 차갑고 냉정하게 영천을 비판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서 미친 듯한 감정기복을 보이던 영천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자 소연과 지수도 하던 말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영천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말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던 영천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씨발..."
저 한마디와 함께 영천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 옆 선반에 놓여 있는 망치를 힘껏 손에 쥐었다.
망치를 든 채 괴기한 발걸음으로 영천을 화장실로 향했다.
***
화장실에 있는 연화는 여전히 축 늘어진 채 누워있었다.
영천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힘겹게 눈을 뜨는 연화.
망치를 든 채 괴기한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영천을 피해 화장실 구석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연화에게 다가온 영천이 물었다.
"살고 싶어?"
영천의 물음에 연화가 대답했다.
"살... 려... 주세요..."
"잘 안 들려 크게 얘기해 봐..."
연화는 더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연화의 목소리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웃어대는 영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영천이 웃어댔다.
그리곤 영천이 웃으며 말했다.
"안 들리잖아? 살고 싶지 않은가 봐?"
"제발..."
연화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영천은 연화를 뺨을 때렸다.
또다시 화장실 구석으로 쓰러지는 연화.
그런 연화를 내려다보는 영천.
씩 미소를 지으며 영천이 연화에게 물었다.
"아직도 말할 기운이 있네 이거... 이렇게 살아서 뭐 해? 그냥 죽자? 어?"
"..."
영천이 쥐고 있던 망치로 연화의 이곳저곳을 찔러대며 말했다.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살아서 뭐 해? 어? 지금도 곧 죽을 거 같은데?"
"제발 살려..."
"와 진짜 죽기 싫은가 보네? 그러게 왜 야밤에 싸 돌아다녀~ 그러니까 이렇게 나 같은 놈 만나서 죽는 거잖아?"
"아이가..."
"아이?"
"아이가 아파요... 열이... 그래서 약국에 가느라..."
아이의 이야기에 동정심은커녕 더욱더 크게 웃는 영천이었다.
그리곤 이내 정색을 하며 연화에게 말했다.
"아이만 불쌍하네... 엄마를 이제 못 보니까..."
"제발..."
"재발! 제발! 제발 좀 그만해... 씨발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제발 살려주세요... 당신도 아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순간 영천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도 아이가 있을 거 아니냐는 연화의 말에 민감해진 것이다.
그러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영천.
영천은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영천은 연화에게 말했다.
"내 아들은 죽었어... 어떤 미친 새끼 차에 치여서 말이야... 씨발 근데 네가 내 아들 얘기를 해? 어? 잘 됐다. 나도 어차피 내 아들 못 보니까... 너도 이제 니 자식 그만 봐 이 년아..."
"미안해요... 제발..."
"미안? 아냐 미안해하지 마. 그냥 죽어 씨발!"
영천은 들고 있던 망치로 연화의 머리를 내려쳤다.
힘없이 쓰러지는 연화.
화장실은 피로 난자 되었고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연화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는 영천의 모습이 보였다.
영천의 표정에는 슬픔이 보이기도 했고 희열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곤 이내 손에서 망치를 놓치는 영천.
정신을 차린 듯 겁에 질려서 화장실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침대 구석에 쳐 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영천.
그 옆으로 소연과 지수가 다가와 앉았다.
영천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영천의 얼굴 바로 앞에 연화가 얼굴을 들이댄다.
그리고 영천에게 연화가 말했다.
"내가 세 번째구나? 앞으로 나도 같이 다니겠네?"
영천이 연화를 보고 씩 웃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천이 무언가를 들고 힘겹게 자취방에서 나왔다.
영천이 들고 나온 것은 커다란 여행가방.
그 여행가방은 피가 묻은 것인지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영천이 여행가방을 끌고 힘겹게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가는 소연, 지수, 연화.
점점 영천과 함께 그들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영철의 목소리.
"나의 죄책감은 오늘 또 무거워져 간다... 이 세명은 날 또 쫓아다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