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필 Sep 25. 2024

사람을 찾습니다

김두필 초단편소설

어둡고 복잡한 골목 한 허름한 빌라의 집안.

옅게 새어 나오는 LED시계의 빛이 흐릿하게 집안을 비취고 있었다.

그 작은 빛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소주병.

그리고 잔뜩 쌓인 설거지 거리와 배달시키고 남은 음식들.

그 음식들 주위로 날아다니는 파리들.

그리고 들려오는 누군가의 인기척.

그때 파사삿 소리와 함께 주방에 불이 켜졌다.

철규가 주방의 불을 켠 것이다.

그리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철규였다.

철규는 눈곱을 땔 시간도 없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검은 봉투를 하나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철규가 말했다.


"황태, 소주, 사과... 아! 가장 중요한 이거!"


철규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딸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이걸 잊을 뻔했네... 딸기를 참 좋아했는데..."


딸기까지 챙긴 철규은 다시 분주히 움직였다.

철규는 면도를 하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했다.

어딘가 중요한 곳에 가려는 걸까?

최대한 깔끔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전 날 미리 준비했던 옷을 차려입었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그리고 검은색 넥타이.

깔끔하게 넥타이까지 정돈한 철규는 아까 자신이 준비했던 검은색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조용한 새벽.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까지 신은 철규의 모습이 왠지 어두웠다.

무언가 슬퍼 보이는 철규의 표정.

하지만 철규는 이내 담담하게 차에 올랐다.

검정 봉지와 함께 차에 몸을 실은 철규가 말했다.


"얼마만이지? 일 년 만인가"... 그래도 일 년 만이데... 꽃이라도 사가야겠지?"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철규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철규의 차가 출발했고 차는 점점 어두운 새벽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


얼마나 달렸을까? 어두웠던 새벽이 이제는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조용한 새벽만큼 철규의 차 안도 조용했다.

음악은커녕 라디오조차 켜지 않고 철규는 운전에 열중했다.

주변에 달리는 차들도 없었다. 

차 안에 들리는 소리는 차 엔진 소리와 철규의 숨소리뿐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철규의 차가 한 꽃집 앞에 멈췄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려있는 꽃집.

그리고 그 꽃집은 사람을 보기 힘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철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게의 조명은 어둡지만 꽃들이 가게를 밝게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밝음이 철규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꽃집 앞에 차를 세운 철규가 넌지시 말했다.


"그래... 꽃 한 송이 못 사줬었는데..."


그렇게 마음먹은 철규는 차에서 내렸다.

꽃집 앞에서는 아침부터 연희가 분주히 꽃을 정리하고 있었다.

새벽에 꽃이 들어온 걸까?  

꽃들이 더 싱그러워 보였다.

철규가 오는지도 모른 채 연희는 꽃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그때 꽃집에 들어선 철규가 물었다.


"혹시 국화꽃 있나요?"


"아 어서 오세요. 그럼요 있죠."


"그거 한 다발 예쁘게 만들어 주시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연희가 국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이것저것 살펴보고 신중히 국화를 고르는 연희였다.

철규가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는 꽃이지만 연희에게는 아니었다.

연희는 아침에 국화를 사는 손님에게 더 좋은 꽃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국화를 고르며 연희가 철규에게 물었다.


"성묘 가시나 봐요?"


"네... 뭐 성묘 비슷한 거 하러 갑니다."


철규의 대답을 듣던 연희가 마침내 좋은 국화를 찾았는지 꺼내 들었다.

그리곤 철규 앞에 국화꽃을 꺼내 보이며 해맑게 말했다.


"가장 좋은 국화로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네..."


철규가 본 연희는 참 밝았다.

수수한 외모를 가졌으며 밝은 기운을 쏟아냈다.

그녀의 말투 또한 상큼하니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런 연희에게 철규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꽃집에 절어 울리는 여자였으니까 말이다.

연희가 국화로 꽃다발을 만들며 물었다.


"참 좋으시겠어요."


"네?"


"이 꽃은 받으시는 분이요... 그분은... 적어도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도 일 년 만에 가는데요 뭐... 길이나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잘 찾으실 거예요." 


국화로 완성된 꽃다발을 건네며 연희가 말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아주 예쁘게 열심히 만들었어요."


"감사합니다."


꽃을 받은 철규는 연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철규는 꽃집 밖에서 연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신이 가던 길을 바로 가지 않고 꽤나 긴 시간을 연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꽃다발과 연희를 번갈아 보던 철규가 입을 열었다.


"닮았네... 많이 닮았어..."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철규는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났다.

꽃집에서 철규의 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


철규의 차는 꽃을 사고도 꽤나 오랜 시간을 달렸다.

새벽이 아침이 되고 아침이 어느덧 점심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철규의 차는 어느 한적한 산 밑에 도착했다.

철규가 도착한 곳은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그러한 동네의 산이였다.

시골임에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그런 산이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 산길이 제대로 나있지도 않았다.

차 안에서 산을 바라보며 철규가 말했다.


"잘 찾아갈 수 있으려나..."


철규는 꽃다발과 검은 봉지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길이 나있지도 않은 산을 거침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적한 작은 산이지만 철규가 가는 길은 험준했다.

풀은 우거졌고 나뭇가지는 거칠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철규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만 찾아서 올라가고 있었다.

발을 헛 딛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며 산을 올랐다.

철규의 검은 정장은 이미 흙투성이가 되었고 구두는 망가져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던 철규가 한자리에 멈췄다.

그리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긴가 보네. 아니... 여기 맞네..."


자리를 잡은 철규는 그곳에 황태채와 소주, 사과, 딸기 등을 정성스레 차렸다.

그리고 그 옆에 하얀 국화꽃을 정갈하게 놓았다.

철규가 소주를 까 여기저기 뿌려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하늘은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던 철규가 말했다.


"수진아... 오늘 당신 닮은 사람을 봤어... 또 한 번 마음이 두근두근 뛰더라... 나도 날 어쩔 수가 없나 봐. 그동안 미안했고 오늘은... 내 마음 편하자고 이렇게 찾아온 거야. 그러니까 나 이제 마음 편하게 가지고 살게. 잘 있어..."


저 한마디를 하기 위해 철규는 험난한 산길을 올라왔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철규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참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던 철규는 엉망이 된 채로 다시 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자신의 차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보였다.

한 할머니가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규도 할머니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았다.

받은 전단지를 본 철규는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곤 할머니가 보지 못하게 돌아서서 씩 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막 장난을 시작하려는 듯한 미소였다.

그 웃음은 꽤나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철규가 받은 전단지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이수진

-나이 : 30(올해)

-실종일 : 1년 전 9월 12일

*일 년 전 저희 딸아이 핸드폰 신호가 끊긴 곳이 이 산입니다. 아시는 분은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010-****-****


***


철규가 산에서 내려오고 며칠 뒤늦은 밤. 

철규는 수진이 묻혀 있는 산에서 내려왔다.

철규는 검은 우비와 군인들이 맬만한 큰 씰백을 메고 있었다.

내려온 철규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옷을 갈아입고 차 트렁크에 씰백을 내려놓았다.

씰백을 내려놓자 찰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삽과 곡괭이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다 실은 철규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출발한 철규의 차 안에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꽃집을 운영하던 20대 중반의 A 씨가 실종되었습니다. 경찰은 일대 CCTV를 확보에 A 씨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