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 평온한 기억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를 앞장 세워 찾아뵌 동네어르신들은
" 다 늙은이 이야기는 들어서 뭐 한다나"라고 하셨지만
흔쾌히 이야기 들려주셨다.
잘 들리지 않는 음성,
암호를 대는 듯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녹취록에 담기 위해 듣고 또 듣고,
오래전 이야기를 짐작으로 담았다.
밭두렁에 빨간 고무통
어미는 밭고랑을 따라 풀을 매고
세 살배기 어린애 머리는
오르락내리락 보일락 말락
호미를 든 어미 손이 바빠진다
어여쁜 열여덟 아가씨
마당 밖에 나가보니 신랑감이 왔단다
그날로 새색시, 며느리가 되었다
영감은 먼저 가고
홀로 백발노인이 되었는데
평생 내외하고 살아
그립지도 않다
호롱불을 밝히고
고운 옷을 지어주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노모는
시집가서 9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노라 한다
다라이 가득 굴을 지고
팔십 리 길을 오고 가니
머리에서 김이 나서
죄다 빠져버렸나 보다
바다에서 태어나
물에 빠져 죽고,
떨어져서 죽고,
절구공이에 맞아 죽고,
병에 걸려 죽었다.
어이구 옛날에 산 말을 어떻게 다 한다나
세상이 참 좋아져서 살만할 것 같은데
이제 노구가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평범한 이들이 조용히 살아온 이야기,
알려지지 않을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렇게 누군가는 오늘도 이곳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