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툴렀던 시간
결혼 초, 나는 남편에게서 기대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내 이야기를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인데, 남편은 내가 없는 일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했고,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결혼을 시작하며 동시에 임신을 했던 그 시기엔 더 그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한 집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이해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성인이지만,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은 늘 어수선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다.
게다가 결혼은 둘만의 결합이 아니라 양가 가족의 만남이기도 하니 어려움은 더 깊어졌다.
시댁과 거리는 멀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만날 때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말들이 오갔다.
좋은 말을 나누어도 부족한 그 시간이, 왜 그리 지적과 핀잔으로 채워졌을까.
한 번쯤은 마음 편하게 웃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인 내가 부족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다면 조금은 더 너그럽게 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과 달리, 시어머니의 말은 늘 직설적이었고, 때로는 친정엄마까지 언급하며 나를 난처하게 하곤 했다.
시누이가 덧붙이는 말은 그 상황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성향의 문제인가 싶었다.
나는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더 잘해주고 싶어지고, 천천히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더 무서운 건,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들이 상처를 준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그 말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으면,
오히려 내가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결국 애쓰는 사람이 더 많이 상처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혼생활 14년 동안 시댁과의 갈등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온화하고 평범한 시댁은 현실에서는 쉽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무리 성격이 둥글고 좋은 며느리라도, 시댁에서 건네는 직설적인 말 앞에서는 마음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처음의 서운함과 억울함만 쌓아두기보다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