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새학기의 아름다운 풍경

저경력 교사 3월 생존기

by 뚜비뚜바

1. 얘들아 실은 내가 너희보다 더 떨려.


아이들이 서로와 선생님의 간을 보는, 1년 중 가장 조용한 3월 첫 날. 아이들의 긴장한 얼굴이 역력하다.


종이 치면 자리에 바로 앉아서 조용히 선생님을 기다리는 진풍경은 이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3월 둘째 주만 되어도 이 모습은 마치 전생처럼 까마득해진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이름 석자 알려주고 30명 아이들과 번호 교환 후, 입학식을 시청하라고 안내 한다.


실제로 다음 날부터 애 하나가 늦잠으로 조회 시간에 교실에 없으니 전화할 일은 꼭 생긴다.



2. 선생님 반만 아직 안 내셨어요.


수업 하나씩 끝내고 자리로 와서 메신저를 켜보면 쪽지가 계속 쌓여있다.

'분명 1시간 전에 다 처리했는데, 왜 또 쌓여있는거죠?'

조사, 통계, 동의서, 확인, 학부모 총회 준비, 학생 상담 일정 등등 3월의 업무는 끝도 없다.


당장 필요한 봉사 도우미들 뽑아서 명단 제출하고, 임시 반장을 뽑는다. 특수반 아이도 하나가 있어서 특수선생님께 특이사항 문의해 놓고, 수업 들어가서 오리엔테이션하고, 종례까지 끝내고 아이들 보내고 교무실에 뻗어있는데, 우리 반 학급함에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강실태조사 가정통신문.


‘아 저게 제일 중요한 건데...망했네?’

더불어, 3월 한 달 동안 내가 받은 쪽지들의 대부분이 “선생님 반만 아직 안 내셨어요.”로 시작했다.



3. 이 일,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왜 이 모양이지.' 라고 자기 비하를 하며 교무실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 뜯고 있으면,

“쌤, 너무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거 아냐? 나 경력 많아도 항상 틀려.”

“25년 차인 나도 3월은 적응이 안돼.”

라고 한마디씩 건네신다. 그런 말들이 분명 위로는 되지만, 그래도 자꾸 드는 생각은,


‘저기.. 제가 왜 여기에 있는거죠? 나는 누구죠?’



4. 반인 반수


각 반에 들어가서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너희들의 과목 성취도 수준과 소개 등을 쓰라고 종이를 준다. 마지막 칸에는 나는 오랜 휴직 끝에 학교로 돌아와서 적응의 시간이 좀 필요하니 나에게 학교 적응 팁을 좀 달라고 덧붙였다. 다 걷고 나서 읽어보니,

“선생님들이 대체로 친절하시니, 금방 적응되실 거예요.”

“점심 시간에 운동장 산책을 좀 해보세요.”라며 제법 어른스러운 응원 섞인 조언의 말을 써낸 아이들이 한 반에 두어명씩 있다.


신규 시절 남중에서 서열 싸움 한답시고 3월 한달 내내 서로 싸워대는 모습을 보며

‘여기는 정글이다. 너희는 짐승이구나. 하하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저런 글들을 읽으니 제법 사람다운 생각을 하는 모습이 의젓하고 기특하다.


결론은 반인반수.



5. 이미지 메이킹


첫 날 아이들에게 받은 설문지를 읽어보니 ‘선생님의 첫 인상은?’ 이라는 질문에 ‘친절해 보인다.’가 가장 많았다. 이것은 칭찬이 아니다. ‘수업이 소란스러워 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신규 때 부장 선생님께서 우스갯소리로

‘한 번 날 잡고 쓰레기통을 창문 밖으로 던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봐. 그럼 애들이 절대 함부로 못할 걸.’ 하셨는데 그만큼 교사의 이미지는 학교에서의 생존과 큰 관계가 있어 보인다.

한 시트콤에서 교사가 무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짙은 스모키 화장과 가죽 자켓을 입었던 것은 나같은 저경력 교사가 생각해 낼 만 한 아주 훌륭한 레퍼런스라고 생각한다.


지옥 같은 3월을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니, 벚꽃이 예쁘게 피기 시작한다. 4월에는 좀 나을까요? 제발 낫다고 해주세요!

keyword
이전 01화40대 햇병아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