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편
초등 고학년 공부에 대해 선배 언니들이 건네준 애정 어린 조언을 참고해, 주요 과목(국어, 수학, 과학, 영어 : 12~15화 참조)의 공부 방법을 점검한 저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 결론을 들은 언니들은 "선행도 없이 어쩌려고 그래?"라며 거듭 조언을 건넸습니다. 그래도 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단 주변에 비교할만한 또래 아이가 없어 현실감이 떨어졌던 데다, 아이 아빠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의 판단이 모두 옳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착각으로 아이는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되긴 했지만요.
지금은 제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0~15년 전보다 훨씬 더 과도한 선행의 올가미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조금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른바 '초등 의대반'이나 '영재반' 같은 경우 학교 교육과정보다 14배나 빠른 선행을 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있습니다. 정말 '사교육 정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출처 : "초5가 고2 수학 배워... 학원 '초등의대반', 선행교육 선 넘었다", 2024. 7. 1.).
다행히 제 아이는 엄마 아빠의 초긍정 마인드와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려는 태도 덕분에, 그런 환경에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등시절에는 선행 없이, 현행 학습만으로 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만의 몇 가지 작은 특이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예습조차 하지 않고 학교에 갔기 때문에 아이는 수업에 온전히 집중했습니다. 학교 수업만이 유일한 배움의 기회였으니,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가르쳐주시는 지식을 습득하고 체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아이의 그런 태도를 눈여겨보시고 예뻐해 주셨습니다.
또, 학원을 다니지 않아, 또래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교 후에는 저와 함께 장을 보거나 책을 읽는 등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아빠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린 시절 습득해 두면 좋은 '인생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관념 가르치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처럼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주식 계좌를 개설해 주거나, 청약 저축을 넣어주는 등 먼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그럴 여유도, 그만큼의 경제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소소하게 '집안일 돕고 용돈 벌기' 정도를 통해 돈의 가치를 깨우치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제 아이가 했던 용돈 벌이는 주로 수건 개기, 아빠 구두 닦기, 현관 신발 정리 같은 일들이었고, 가끔 분리수거를 돕거나 장 보는 일을 도와주는 것 같은 이벤트성 활동도 있었습니다. 이런 '집안일 돕고 용돈 벌기'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용돈 쓸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절실함이 부족해 다소 수동적으로 변해갔고, 점점 마치 제가 용돈을 주고 싶어서 만든 활동처럼 변질되어 갔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너무 무관심한 것도, 돈에 얽매이거나 모든 것을 돈과 연결시키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균형을 잡아주려 노력했으나, 적절한 선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빠는 좀 달랐습니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된 뒤에도 학습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았지만, 아빠만의 기준으로 아이에게 '인생 교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관념 역시, 자신만의 기준인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모토로 아이를 대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된 후부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서는 아빠를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만 했습니다. 집안일 돕기를 통해 번 용돈을 쓰는 경우라도, 아빠 판단에 '고가'라면, 왜 사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PPT를 만들어 발표할 정도로까지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페이퍼에 '사야 하는 이유 3가지 적어오기', 혹은 '그 물건을 샀을 때의 장점과 단점 5가지 정리하기' 같은 미션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빠의 이런 요구가 아이에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빠의 방식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이가 이유 3가지를 생각할 때 곁에서 도움을 주었고, 장단점 5가지를 정리할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이런 아빠의 경제 교육으로 아이는 분명 돈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렴풋이나마 '돈'과 '소비'를 이해하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바람직한 '경제관'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아이가 대학원에 진학하며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덕분에 가성비를 따지는 성향을 갖게 되었고, 돈과 적정한 선을 지키면서 경제 공부에도 관심을 가지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이점도 있었습니다.
첫째,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 국어 시간에 배운 디베이트 실력을 총 동원하며 논거를 찾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덕분에 토론을 잘하는 아이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둘째, 아빠에게 설명과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발표 능력도 향상되었습니다. 처음 미션을 받았을 때, 장황하게 이유를 설명하던 아이에게 아빠는 '두괄식으로 말하기'를 시켰습니다. 핵심부터 말하고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은, 발표를 명확하게 하고 이해를 쉽게 하는 방식이라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국어 과목 공부 방식을 점검하면서, 아이의 발표력은 아빠와의 일상 덕분이라고 언급한(12화 참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아빠의 경제 교육이 현명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가지고 싶고, 사고 싶은 물건마다 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니,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배우게 되는 건 아닌지, 또 "왜 나는 물건 하나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가?"라는 욕구불만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남자아이여서인지, 혹은 과묵한 편이어서인지, 아이는 단 한 번도 불만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아빠의 방식이 힘은 들지만 강압적이지는 않았기에 아이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엄마인 저는 알지 못하는 남자들만의 묵묵한 신뢰가 있었던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아이는 물건 하나를 구입할 때마다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지, 구매한 물건을 더욱 가치 있게 잘 사용했습니다. 그중에는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유행했던 PC 게임, 마인크래프트 정품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빠를 설득하고, 각서까지 작성하며 구입한 이 게임 프로그램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자발적 깍두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물여덟 번째 고슴도치 시선] 저희 집에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산타할아버지가 매년 다녀가셨습니다. 특히,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하는 고가의 물건은, 아이 아빠가 산타할아버지를 이용해 허용해 주곤 했습니다. 저희는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런 노력 덕분인지 아이도 꽤 늦게까지 산타를 믿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믿는 건가?'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습니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작년에 선물해 주신 거야.”라며 선물로 받은 '과학실험키트'를 자랑했습니다. 부엌에서 간식을 준비하던 저는 '드디어 오늘, 산타 할아버지의 환상이 깨지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아이 친구들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아, 그래? 산타 선물이구나. 좋겠다.”
이 사건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날 집에 놀러 왔던 다섯 명의 아이들 모두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던 걸까요? 아니면 워낙 평소 제 아이가 엉뚱한 말을 잘해서 그냥 넘어간 걸까요? 그렇다면, 제 아이는 정말로 그 당시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 걸까요? 아니면, 저희가 아이의 철저한 계획에 속은 걸까요?
이처럼, 제 아이에게는 순수하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엄마는 깍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