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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지구에선 둥글게 살자

탄자니아 - 잔지바르(Zanzibar)

by 다온 Oct 26. 2021


보츠와나는 3학기 방학이 한 달 정도로 길어요.

10일 정도 되는 1, 2학기 방학하곤 대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지더군요.

장거리 노선까진 아니더라도 남아프리카를 벗어날 의지가 드디어 생기던걸요?

이 방학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일정이 더 자유로웠다면 더 위쪽, 그러니까 유럽까지 뻗어갈 생각까지 있었습니다만

파견 원칙상 보츠와나발 항공기를 타고 귀국하게 되어있어

어딜 가든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까지 되돌아올 여정까지 고려해야 했어요.


모든 걸 다할 순 없어.

나중으로 미뤘을 때 기회비용이 가장 큰일이 뭘까.


선택은 의외로 간단했어요.

이 지역 유일의 저가항공인 망고(Mango)에 잔지바르 직항 노선이 있는 거예요.

4시간이 채 안 걸리고, 성수기를 피해 싼 날짜를 골랐더니 왕복 30만 원이 안되더라고요.

오, 시간도 비용도 장소도 완벽해!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이런 식으로도 찾을 수 있군.

 

잔지바르행은 비행이 오전 일찍이라 별 수 없이 조벅에서 1박을 해야 했어요.

제가 돈은 없어도 시간은 좀 있으니 전날 버스로 조벅에 들어갔죠.

아침이 되어 드디어 망고에 올랐고

어느덧 비행기 창문 아래로는 짙푸른 바다 한가운데 에메랄드빛 섬이 보이더군요.


오, 잔지바르!

네가 바로 인도양의 진주라지?

 

저는 평소 카드 한 장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

현금을 요하는 곳에 대한 불편함을 더 크게 느껴요.

한국에서 출발한 여정이었다면 그래도 달러 얼마쯤은 챙겨 왔을 텐데

근처 나라에서 바로 온 거라 현금 한 푼 없이 그냥 왔지 뭐예요.

근데 세계 어느 공항에나 ATM이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죠.

단, 도착비자라면 결제방법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미그레이션은 통과해야 하니까요.

탄자니아는 그게 50달러이고 카드결제가 가능해요.

저는 입국장을 나가자마자 현금인출기부터 찾았어요.

수수료가 비싸서 웬만하면 한 번에 인출하고 싶었지만 보관 문제를 떠나,

물가도 모르고 환율 계산도 안되고 화폐 숫자가 커서 감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둔 대략의 정보들을 가지고 돈도 대략 얼마를 뽑았습니다.

배낭 경력 초반에는 일정도 촘촘히 짜고 지출 기록이나 일기도 꼼꼼히 썼는데

이젠 여러모로 자신감이 생긴 거죠.


드디어 택시를 타고 잔지바르의 중심지인 스톤타운(Stonetown)에 진입합니다.  

그 옛날 노예시장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숙소 예약 앱에 1위로 올라있던 게스트하우스로 갔는데 사장님이 젊은 일본 남자분이었어요.

저는 이틀을 묵었는데 인턴 같은 일본인 직원과 현지인 직원과 함께 셋이서 시장에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스톤타운엔 일식당도 간간이 보이네요.

역사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섬은 중국이 아닌 일본의 영향력이 큰 듯합니다.

아프리카 어딜 가나 사람들이 '니하오'라고 하는데 여긴 '곤니찌와'라고 하는 게 되게 특이했어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능귀(Nungwi)로 떠나는 날,

전 날 숙소에서 만난 영국인이 본인도 거길 간다고 같이 가겠냐고 묻더라고요.

택시비도 이미 지불했으니 그냥 타라면서요.

저는 좋다며 흔쾌히 동승했어요.

공짜에 부담 갖는 편이라 보답 거리를 계속 찾았는데 한사코 거절하더라고요.

어차피 가는 길이고, 본인 동생이 혼자 여행한다 해도 누군가 분명 선의를 베풀어줬을 거라나요?

나중에 보니 저와 동갑이었고, 저를 한참 어리게 보고 도와주고 싶었나 봐요.

그는 런던 금융가에서 일하는데 휴가철 아니면 돈 쓸 시간도 없다더군요.


능귀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바다색은 천연 에메랄드빛으로 너무나 예뻤지만

입소문에 비해 저는 별 감흥이 안 와서 1박만 했어요.

여긴 게스트하우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관광지라 기본 가격대가 있는 편인데 그중 싼 곳을 골랐거든요,

오토바이 여행 중 만났다는 부부가 호스트였는데

스페인 출신 아내분과 잔지바르 출신 남편의 사랑이 철철 넘치는 곳이었어요.

아내분의 나이가 아주 훨씬 더 많았고요.


이제 파제(Paje)로 갑니다.

저는 여기서 택시비를 한 번 더 아낍니다.

그 영국인도 그리로 가는 스케줄이었고 본인 숙소에서 택시를 이미 예약했더라고요.

탈 거면 타라길래 그렇게 했습니다.

파제에서는 그가 추천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어요.

바다 바로 앞에 있는데 가격도 괜찮았거든요.

이번엔 같은 숙소였는데 체크인 후 그를 다시 보지 못했죠.

하루밖에 시간없다더니 잘 놀다가 런던으로 갔겠지 싶습니다.

 

파제는 카이트서핑(Kite Surfing)의 성지예요.

바다 위를 가르는 형형색색의 서퍼들이 장관을 이루죠.

서핑 업체도 여러 개고 초보를 위한 일대일 강좌도 있으니

돈만 내면 저도 저 바다 위를 호령해볼 수 있었는데

물이 무섭고 해양스포츠에도 관심 없고 무엇보다 저 뜨거운 자외선에 압도당해

뭔가를 새로 배울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파제는요, 정말 바다밖에 없는 곳이에요.

즉,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바다를 바라보는 것뿐이었어요.

제 스타일상 이곳도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죠.


그러나 파제에서 저는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원래 잔지바르 일정이 총일주일이었는데

파제에서만 3주를 머물게 된 거예요.

아주 몹시도 자발적으로요.

비행기는 추가 요금을 내고 두 번이나 연장 신청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뭐가 그리 좋았던 걸까요.

저는 이제껏 30여 국에 가봤는데요,

제게 해외여행은 쉼보다 세계 탐험의 시간이었어요.

한국에서 내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한 사람인데

뭐하러 돈 들여 외국까지 가서 쉬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한가하지도, 경제적 여유가 많은 사람도 아니고요.

그저, 호기심과 용기 한 스푼에 모든 걸 바친 거라 말하고 싶네요.

그래서 저는 늘 바쁘게 돌아다니는 편입니다.

분명 피곤한 감은 있지만 뿌듯함이 더 중요해요.

러던 제게 아주 기념비적인 일이 잔지바르에서 생깁니다.

바로, 휴양이란 걸 하게  것이죠.

네, 파제는 제 생애 첫 '휴양지'입니.

그러려고 간 게 아닌데 며칠 지내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고,

나중엔 '놓치고 싶지 않은'감정이 되어버려 계속 붙들기로 한 겁니다.



저는 바다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낮에 태양이 작렬하는 걸 보고

저녁에 해지는 걸 보고

밤에 달이 바다를 환히 비추는 걸 보았어요.

하루가 시작되고 이어지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그 온전한 자연의 흐름을 순순히 따라가 본 겁니다.

 

우선, 정면을 바라보면 180도 이상이 바다인데요

저는 지구가 둥글다는 걸 여기서 처음 눈으로 확인했어요.

지평선 너머 양쪽으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둥그런 타원이에요.

남들은 이미 이런 걸 다 알고 살아온 걸까요?

혹시 나만 이제야 알고 호들갑 떠는 건 아닌지..

작고 복작대는 싸우쓰 코리아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광경 앞에

정말 저는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


바닷물은 또 어떻고요.

얕고 따뜻하고 에메랄드빛이에요.

바닥은 말랑말랑한 하얀 점토라 바다색을 더 아름답게 해 주고 맨발로도 다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수영을 못하는 저도 충분히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말 그대로, 손 짚고 헤엄기가 가능하거든요.

두 손으 보드라운 진흙 위를 걷고 두 다리는 수영하듯 첨벙거리는 모습이 남들 보기엔 웃겼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도 아니고 당시 제 옆엔 아무도 없었어요.

보츠와나에 사는 동안 얼굴에 잡티가 많이 올라와 예민했는데도

그늘에 앉아 가만있지만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라도 이 바다를 만끽하고 싶었고, 그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됐어요.  


그리고 여긴 일 년만의 귀국을 앞둔 제 마음을 추스르기에 알맞은 곳이었어요.

본 게임 전 최종 숨 고르기를 하는 심정이었죠.

하루의 목표는 오직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뿐이었어요.

'다 이루었다'는 아니더라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정도는 되었을 거예요.

내가 만났던 사람들, 거닐었던 공간들,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요.

'언제 이런 날이 다시 올까, 이런 바다 앞에 언제 다시 서게 될까' 하는 감상도 진했어요.

지내는 내내 한국인 관광객을 한 명도 못 봤다는 것 또한

아주 커다란 거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삶이 그렇게 밀도 있을 필요도 없는데 왜 그리 꽉꽉 채우려 했나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비단 행 일정만 빡빡했던 게 아니라

인생에 있어 어슬렁거리며 널브러진 시간이 용납되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이미 지나가버린 그때들에도 내가 파제 해변에서 했던 것처럼

좀 더 생각을 비우고, 입꼬리를 올리고, 움켜쥔 손을 펴고, 어깨 긴장을 풀었었다면

삶을 더 아름답게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걸 과거에 대한 후회라고 칭하진 않겠어요.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생의 모든 희로애락은

우리를 점점 더 나은 인격체로 만들어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장치 같아요.

둥근 지구와 푸른 바다를 눈앞에서 똑똑히, 그것도 오랫동안 지켜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잔지바르에 가고 싶냐고요?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굳이 그런 일을 고대하진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원 없이' 있다 왔거든요.

그리고 이런 식의 휴양을 위한 출타는 앞으로도 한참 동안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원웨이 티켓이잖아요.

다음엔 다른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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