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때 누가 구두 신죠? 저요!
니조 성 다음 관광지는 니시키 시장이었다. ‘교토의 부엌’이라는 별명을 가진 니시키 시장은 니조 성으로부터 애매한 거리에 있다. 걷기만 좀 멀지만 버스를 타고 가기엔 대중교통 요금이 아까운 정도. 한국같이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한 나라였다면 당장 버스를 탔겠지만 일본의 버스 요금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 않는가. 다리가 많이 퉁퉁 부었지만 30분 정도 더 걷는다고 해서 큰일이 날 것 같진 않아 걷기로 했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후회했다. 진짜 발이 너무 아팠다. 길가 의자에 앉아 구두를 잠시 벗어 발 상태를 확인했는데, 엄지발가락과 새끼발가락, 그리고 발뒤꿈치까지 부르트고 피가 나고 벗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입은 스타킹에 피가 묻어 이미 굳은 상태였다. 아직 도착하려면 20분은 넘게 걸어야 했는데, 이미 버스가 다니지 않은 길로 들어선 상태라 돌아가는 것도 그것대로 손해였다.
원래대로라면 브런치를 먹을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 니시키 시장을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발바닥과 쓰린 통증에 온 정신이 팔려서 구경은 생각도 못 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얼른 브런치 카페를 찾아서 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정작 보려던 니시키 시장은 일단 뭐든 먹은 다음에 다녀오기로 하고 브런치를 먹으려 들른 이노다 커피로 들어갔다. 이곳은 오랜 전통을 가진 커피 체인점으로, 니시키 시장 근처에 있는 지점은 살롱 점이었다. 이름은 단순하게 무슨 무슨 커피라고 지어져 있지만 살롱이라는 지점 명이 말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굉장히 격조 높았다. 카페라기보다는 확실히 살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에 더 맞았다.
1층에는 베이커리와 테이블이 있었고 2층에도 테이블이 있었다. 이노다 커피에서 주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커다란 유리창과 마주할 수 있다. 2층 역시 그 커다란 유리창을 향해 자리가 있어서 유리창 너머 풍경을 지켜보는 맛도 쏠쏠했다. 내가 방문한 시간대는 이노다 커피의 아침 주문 시간이 딱 끝날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리가 많아 2층에 털썩 앉았다. 종업원이 내가 시킨 것들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라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문한 샌드위치와 레몬에이드가 나왔다! 겉으로만 보면 살짝 평범한 비주얼에 내용물도 글로만 보면 튀진 않는다. 샌드위치 구성은 햄, 오이, 마요네즈가 전부였고 감자 샐러드가 함께 나왔다. 레몬에이드도 탄산이 많이 보이는 것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던가. 단순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샌드위치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아무리 내가 샌드위치를 먹을 때 다리가 너무 아파서 쉬고 있을 때라고 생각해도 이런 조합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 마요네즈 말고 다른 특별한 소스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게다가 손이 제법 작은 내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였지만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다음에 이노다 커피 다른 지점을 방문한다면 1층 베이커리와 브렉퍼스트 메뉴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레몬에이드! 다른 프렌차이즈 레몬에이드는 정말 꽝이라면 레몬에이드 가루가 씹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곳은 상큼하게 터지는 탄산과 레몬의 그 신맛과 단맛이 조화롭게 섞인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레몬에이드 안에 든 자그마한 체리도 눈에 귀여웠다.
나름 천천히 먹는다고 먹어봤지만 지쳐서 부은 발과 굶주렸던 배 탓에 브런치는 30분이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귀국행 비행기는 오후 6시 즈음이고 아직 12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 더 쉬고 니시키 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발이 너무 아팠다. 효율적인 동선이 아니라 버리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남은 시간을 발이 아파서 대충 보고 돌아가느니 시간이 들더라도 제대로 돌아다니고 싶었다. 비록 그 덕에 니시키 시장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넘어갔지만, 교토역에서 가까운 곳이니 다음 교토 여행에서 좀 더 자세하게 둘러보기로 하며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