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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Mar 19. 2024

D-10 마음의 상처가 굳어버릴 때, 트라우마

강한 사람이 되려는, 나의 스물여섯 이야기



  심각하지는 않은, 다소 작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소심하던 내가 유일하게 활동적이던 곳이 노래방이었다. 친구들과도 자주 갔었고, 어머니와 둘이서 성주에 있는 '궁'노래방을 심심치 않게 가곤 했었다. 난 성격과는 별개로 춤추고 노래하기를 원하던 아이였다. 어린이집 다닐 때엔 구절초반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서울로 보내면 좋겠다고 말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오랜 시간 뒤에야 내가 예술 관련 대학으로 진학할 때가 되고 나서 그 사실을 알려주셨다.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좋아했다고.


  그런 내게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일이 생겼다. 가뜩이나 소심해서 친구들 앞에서 수줍음을 타던 나는 아주 많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나는 마이크를 잡는 것에 부끄러움을 타진 않았다. 그때가 아직도 기억나구나. 전학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친구의 한 마디.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와~ 니 노래 XX 못하노~" 그 친구의 폭소는 나의 절규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나는 10년동안 노래방은 무슨, 누군가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타인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하는 것에 큰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좋아하던 것조차 하지 못하게 되고 친구에게 상처받은 나는 세상이 무서워졌다.



  마음에 작은 상처가 생기는 순간은 아프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며 당시의 고통은 사라지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 같다. 손등에 작은 스크래치 하나 긁혔다고 가정해보자. 당시에 따끔하게 아프다가, 아물고 나면 딱지가 올라온다. 가렵다. 가렵다고 긁으면 상처가 덧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딱지가 달랑거리며 또 다시 잠깐 아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피부가 트게 된다. 어찌 저찌하여 결국은 낫지만, 흉터가 남을 수 있다. 그게 상처란 것이다.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면 아프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생채기가 작은 지, 큰 지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다. 가려워서 긁었더니 덧나기도 하는 것처럼, 문득 문득 그때의 상처가 가려울 때가 있다. 긁어도 그다지 시원하지도 않다. 시간이 지난 뒤 내 마음에는 흉터가 남아있다.

  흉터는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왜 다쳤는 지 떠오른다. 그런데 한 곳에 흉터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그 상처의 이야기를 까먹은 채 그저 아파하기도 한다.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마음의 일부가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나의 노래 트라우마는 10년이 지난 23살 때 처음으로 아물기 시작할 수 있었다. 주변 이들이 도와주었다. 연기를 배우는 전공 수업이라면 피할 수 없는 '특기-노래' 레슨 때마다 손에 땀이 흐르고 바들바들 떠는 내게 3년만에 처음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 그때 울먹였던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물어준 어른께 트라우마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의 불안이 원인인 걸 파악하신 교수님께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해주셨다. 그리고 점점 깨달았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했었고, 여전히 노래를 즐겨 부르고 싶다는 걸. 스스로를 불쌍히 여긴 나는 그렇게 조금씩 오랜 두려움에서 풀렸던 것 같다.


  26살,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고 두려워하는 것들이 무언지 살펴보는 나. D-10 트라우마의 종지부를 찍고자 노래 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다. Full버전은 D-챌린지가 끝나고 여유가 생길 때 올릴 예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내가 노래 영상을 올리려는 과정에서 딱히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오랜 트라우마의 온점을 찍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사뭇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낄 때는 한없이 커다란 돌덩이같았지만, 막상 그것이 작은 슬라임이란 걸 깨닫고 나니 내 손으로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보드랍고 말랑하던 두려움이 오히려 귀엽게 보인다. 앞으로 더 큰 두려움들을 마주하며 살 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좋겠다. 내 마음의 악력이 두려움의 강도보다 더 강하면 좋겠다. 그 힘의 근육이 아주 조금씩, 1mm일지라도 생겨나고 있길 바라며.




From.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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