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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by 도담


저녁 6시 퇴근 후 나를 위한 쉼의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면 6시 30분쯤.

늘 지하 3층에 주차를 했는데 오늘은 지하 2층에 주차를 했다.

'내일 아침 지하 2층이야! 지하 2층!'

속으로 생각하며 현관문에 지하 2층이라고 표시하는 스티커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일 년 넘게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곧 이사 가니 이사 가는 아파트 현관문에는 만들어볼까?

여기 살면서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가 '아! 지하 2층!' 하며 계단을 뛰어오른 게 몇 번 된다.


집에 들어오면 컴컴하지만 포근하고 온기가 있다.

부엌의 불을 켜고 크리스마스트리의 전원을 켠다. 더 포근해지지.

밖에서 입었던 옷을 벗고 올여름 시장에서 구입한 얇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목이 아파서 어릴 적 엄마가 나한테 했듯이 하얀 손수건을 목에 둘렀다.

양말을 신고 머리를 질끈 묶고 앞머리에 실핀을 하나 꽂는다.

귀걸이를 서랍에 넣고 아이폰워치는 충전기 위에 둔다.


집에 오면 바로 씻는 날이 대다수였는데 요즘은 배가 너무 고파서 손 씻고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먹을게 마땅치 않다. 냉동실도 열어봤다. 팬트리를 열어서 컵국수를 꺼냈다. 컵국수뚜껑엔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정수기에 따뜻한 물을 부어 잠시 둔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살펴보고 내 방, 아이방에서 세탁할 것을 꺼내온다. 세탁기를 돌린다.

국수를 먹는다. 역시 짜다. 이렇게 간편하게 먹는 음식들은 짜거나 맵 거나하다.

나 혼자 산다를 켜고 국수를 마저 먹었다. 먹었지만 배가 허전하다. 먹을 게 없다. 사실 냉장고에는 어제 배달온 사과가 있으나 깎기가 싫다. '저렇게 과일을 버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수유의자에 앉은 나는 일어날 수가 없다. 추워서 소파 위에 놓여있는 이불을 덮고 나 혼자 산다를 마저 본다. 잠이 들었다.


요즘 퇴근 후 집에 오면 잠깐 잠이 든다. 그리고 곧 깬다. 휴대폰을 본다. 딸에게 전화하여 위치를 묻는다. 어서 오라고 이야기하고 잠을 더 청해 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딸의 위치를 확인한다. 버스를 타고 오고 있다. 유튜브를 티브이로 본다. 유튜브 속에 개그맨들이 웃지만 나는 웃기지가 않다. 뭐가 웃긴 거지.? 다른 채널로 돌렸다. 다큐멘터리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사는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 잠깐 집중했지만 재미가 없다.


띡띡띡~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래 부르며 딸이 들어온다. 오늘은 뭔가 즐거운 일이 있는지 활짝 웃으며 노래와 춤을 춘다. 무릎까지 오는 까만 패딩과 까만 책가방이 키가 작은 딸에게는 무거워 보인다. 기타를 들고 와서 유튜브를 보며 연습하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나는 집중도 되지 않는 티브이에 눈이 가있지만 귀는 기타 소리를 듣고 있다. 밥 주까?라고 묻지만 보통 대다수의 날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친구들과 게임방에서 먹었거나 아니면 지금 배가 고프지 않으니 조금 있다가 먹겠다는 사춘기의 신호다.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배민을 뒤적댄다. 음식 사진들이 넘쳐나지만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달달구리 커피에서 멈췄다가 '아니야, 집에 커피도 있지.'라고 넘긴다. 피자도 소화가 안 될 것 같고 면음식 들도. 내가 음식사진을 보고도 맛있어 보인다라고 못 느끼는 것은 내가 음식을 먹고 체한 날이 많아서 저 음식을 먹으면 체하지.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도 오늘은 달달구리 빵이 먹고 싶다. 어플을 껐다 켰다 하다가 파리바게트에서 초코롤케이크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띵동 하는 소리도 없이 현관문 앞에 배달됐다는 문자가 온다. 세상이 너무 편리하고 좋다. 나처럼 다니는 것 안 좋아하고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은 사람에게 배달앱은 최고다.


롤케이크와 샌드위치 크로와상을 시켰다. 사실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와 크로와상이었지만. 밥 먹지 않겠다던 딸이 샌드위치에 소스뿌리고 크로와상엔 크림치즈 바르고 롤케이크는 큼직하게 잘라서 먹었다. 역시 밥이 먹고 싶지 않았던 거지. 맛있는 게 먹고 싶은 거지?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서 건조기로 옮긴다. 나는 세탁이 끝난 세탁물도 좋고. 건조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세탁물은 더 좋다. 옷은 '깨끗해야 된다'는 생각이 늘 있어서 자주자주 세탁한다. 내 즐거움이다. 작은 세탁기가 고생이 많다. 10년 넘게 쓴 세탁기 문이 고장이 났다. 하도 열었다 닫아서일까. 열었는데도 툭 닫힌다. 머리를 부딪친 적이 몇 번 있다. 이사 갈 때 얘를 처분하고 큰 세탁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불빨래도 신나게 할 수 있지.


샤워를 하고 스킨로션을 바르고 아이크림을 바른다. 남들은 크림도 듬뿍 바르던데 나는 얼굴에 크림을 바르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얼굴에 주름이 빨리 가는 걸까? 눈 끝에 눈밑에 팔자주름에 이마주름까지. 나는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있다.


소파에 움푹 들어간 부분에 몸을 넣고 브런치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거나 내가 구입한 책을 펼친다.

오늘은 내가 구입한 '나이 드는 몸 돌보는 법. 완경 전에 알아야 할 체력. 시간. 돈 준비가이드'를 펼쳤다.

책 모서리를 꼽쳐뒀던 부분의 글.

돈 모으는 것만 힘든 줄 알았는데, 제대로 쓰는 것도 만만찮게 어렵다. 특히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건 더욱 그렇다. 나에게 잘해주기. 당연한 건데도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눈치 보고 몸 사리다 온 우주에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나이 드는 몸 돌보는 법 중에-



나를 위해 온전히 쓴다는 것.

너무 당연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죽을 날이 가까울수록

다른 우선순위에 나를 양보한다.




나의 오후 6시 이후의 시간.

늘 같은 패턴의 조용한 저녁을 맞이한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청소를 하고

깨끗이 씻고

책을 보고

주식도 보고

글도 쓰고

러닝머신도 뛰고

커피도 한잔 마신다.

딸이랑 이야기도 잠깐 한다.

그리고 잠이 든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나에겐 행복이다.

온전히 내가 쉬고 충전하는 시간.


이렇게 사는 삶도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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