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뜨거운 여름날에는밤낮없이매미들의 우렁찬 떼합창이 펼쳐집니다. 제발 그만 좀 울어라 싶다가도 땅속에서 수년을 애벌레로 살다가 정작 성충이 되어서는 며칠 못 살고 허망하게 죽는매미의 인생이딱하기도 해요. 한시라도 빨리 짝을 만나길빌어주는 수밖에요.
매미를 가까이에서 보신 적 있으세요? 곤충치고는 몸집이 꽤 큽니다. 큰 날개를 펼쳐도 그리 높이 날지않아요. 자기가 태어난 나무를 크게 벗어나지도않습니다.게다가 나무에 주둥이를 꽂은 채 큰 덩치로 태평하게 맴맴 울면 천적에게 쉽게 들키지 않을까요?
벌처럼 벌침이 있는 것도 아니요, 사슴벌레처럼 큰 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장수풍뎅이처럼 뿔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미에게는 이렇다 할 무기가 없습니다. 대벌레처럼 위장술을 부릴 줄도 모르고 노린재처럼 고약한 냄새로 적을 쫓아낼 줄도 몰라요. 자기 보호 능력이 매미에게는 없습니다. 외골격도 너무나 얇아서 천적의 주둥이만 살짝 스쳐도 매미는 쉽게 바스러지고 말 거예요. 이처럼 마땅한 방어력이 없는 매미인데 어째서 멸종되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은 걸까요?
매미는 지금으로부터 3.6억 년 전 지구에 등장했습니다. 공룡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전이죠. 공룡이 지구를 지배할 적에도 매미는 울었고 공룡이 멸종된 뒤에도 매미는울었어요.여러 다양한 종의흥망성쇠 속에서 매미는 살기 위해진화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수학'이 바로 매미를 지금껏 살아남게 한 힘입니다.
매미의 필살기는 수학
지구에 사는 매미는3000여 종에 달합니다. 매미는 일생의 대부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는데요. 짝짓기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를 매미의 수명이라 하면, 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매미의 수명은 보통 5년, 7년입니다.북아메리카에서식하는 주기매미는 13년, 17년인데요. 우리는 이 수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5,7,13,17의 특별함을 혹시 눈치채셨을까요? 매미의 선택을 받은 이 수들은 모두 '소수'입니다.
매미의 생애 주기는 소수
소수라면 당연히소수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수학 용어에 소수는'소수(小數)'와 '소수(素數)'두 가지가있기에 이를 구분해서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소수는 한자로 작을 소 小, 셀 수 數를 사용하는데요. 0과 1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수를 말해요.
* 출처 : 속뜻사전
분수 중에서 분모가 10,100,1000인 분수는 소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1/10은 0.1로, 5/100는 0.05로, 36/1000는 0.036로 말이죠. 분수로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 복잡해서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소수라는 개념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오늘 자세히 알아볼 소수는 바로 두 번째 소수입니다.둘 다 소수라고 표기하지만 발음은 달라요. 첫 번째 소수는 소~수라고 부드럽게, 두 번째 소수는 짧고 강하게 솟수라고 발음합니다.
매미가 사랑한 소수(素數)는어떤 수일까요?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수예요.약수가 딱 두 개뿐이죠.매미의 생애 주기인 5,7,13,17이모두 소수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에요. 매미의 사연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소수의 개념부터 알아야 합니다.
소수의 한자를 살펴보면 본디 소 素, 셀 수 數 입니다. '본디의 수'라는 뜻이에요.
* 출처 : 속뜻사전
영어로는 소수가prime number인데요. prime이'중요한, 기본적인'이라는 뜻의 형용사니까 프라임넘버는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굉장히 중요한 수라는 건 알 수 있어요.
* 출처 : Collins maths dictionary
소수는 prime number 기본이 되면서도 아주 중요한 수
단어뜻을 파헤쳐보니 소수는 한자와 영어의 의미가 같아요.'기본이 되면서도 아주 중요한 수'라는 뜻입니다.왜 소수가 수의 기본일까요?1보다 큰 자연수는 소수 아니면 합성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합성수 역시 소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중학교 때 배운 소인수분해가 바로 소수의 곱입니다.
소수? 합성수? 소인수분해? 어렴풋이 들어본 기억은 나지만 뭔지는 잘 모르겠다고요? 괜찮아요. 우리 하나씩 풀어보기로 해요. 알고 나면 그리 어렵지 않거든요.
11이라는 수를 봅시다. 11을 나눌 수 있는 수는 1과 11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1은 소수예요.
12는 어떤가요? 12를 분해해 봅시다. 수형도를 그려볼게요. 나눌 수 없을 때까지 쪼개주면 돼요. 그게 바로 소인수분해입니다.
12를 소인수분해하면 4×3=2²×3입니다.12는 소수 2와 3의 곱으로 이뤄진 합성수예요.
15도 볼까요? 15를 소인수분해하면 3×5에요. 이처럼 합성수는 소수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어요.
이번엔 30을 분해해 보겠습니다. 30은 딱 봐도 소수는 아니죠. 나눌 수 있는 수가 많습니다.
30은 6×5 이니까 2×3×5입니다. 소수 2와 3과 5의 곱으로 이뤄진 합성수예요.
81은 소수일까요, 합성수일까요? 홀수라서 소수라고 생각하셨다면 잘못짚으셨어요.
9×9=81이니까 81은 3×3×3×3 즉 3⁴입니다.81은 소수 3의 곱으로 이뤄진 합성수예요.
좀 더 큰 수 100으로 해볼게요.
100은 10×10이고 이를 또 분해하면 2×5×2×5=2²×5²입니다. 소수 2와 5의 곱으로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100 역시 합성수입니다.
해본 김에 더 큰 수에 도전해 봅시다. 이번엔 900입니다. 우리 큰 수 앞에서 쫄지 맙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니까요.
900
=9×100
=3×3×10×10
=3×3×2×5×2×5
=2²×3²×5²
아니 이렇게 단정할 수가. 900처럼 큰 수도 분해해 보니 결국 소수 2와 3과 5의 곱으로 이뤄져 있군요.
소수가 수의 기본이라는 게 이제야 납득이 됩니다. 자연수는 '소수'이거나 '소수의 곱'이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그런데 소수인지 아닌지를 찾으려면 매번 수를 일일이 다 분해해야만 합니까? 이건 너무 번거롭잖아요.소수를 찾는 쉬운 방법은 없을까요? 정해진 수의 범위 안에서 소수를 가려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2300년 전 고대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발견했어요. 마치 체에다 수를 치듯이 소수를 걸러낸다고 해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라고 합니다.
*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1부터 100까지의 수 중에서 소수는 몇 개 있을까요? 소수만 남기고 소수가 아닌 수들은 싹 다 걸러봅시다.
(1) 1은 제외
일단 1은 소수도 합성수도 아니니까 과감히 지웁니다.
(2) 2의 배수 제거
다음 수 2는 소수니까 남기고 2의 배수들은 다 없앨게요.
2를 약수로 가진 수들을 지우니까 벌써 절반이 걸러졌어요.
(3) 3의 배수 제거
3은 소수니까 그대로 두고 3의 배수들을 다 제거합니다.
4의 배수를 지우려고 보니 이미 다 지워져 있군요. 4의 배수는 2의 배수이기도 해서 제거됐습니다.
(4) 5의 배수 제거
다음 차례는 5입니다. 5는 소수니까 살리고 5의 배수는 모두 버리겠습니다.
6의 배수 역시 2의 배수와 함께 사라졌으니 생략하고 바로 7로 넘어갑니다.
(5) 7의 배수 제거
7은 소수니까 건져내고 7의 배수는 다 체 아래로내보냅니다.이미 많이 지워져서 추가로 지울 건 별로 없네요.
8의 배수 역시 2의 배수 없앨 때 같이 제거됐어요. 9의 배수는 3의 배수와 함께 모두 지워졌고요. 10의 배수도 2의 배수 배수라서 진작 다 없어졌군요. 11의 배수는 11×2, 11×3, 11×5..... 라서 2의 배수, 3의 배수, 5의 배수와 함께 이미 걸러졌습니다.
이제 체에 걸러진 수들을 보세요.
끝까지 살아남은 이 수들이 바로 소수입니다. 1과 자신 외에는 소수를그 어떤 수로도 분해할 수 없어요.도도하면서 고고한 수입니다. 1부터 100 사이에는 25개뿐이에요.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소수는 뭘까요? 아직 아무도 몰라요. 소수 찾기는 현재도 진행형이거든요. 수가 무한하듯 소수도 무한합니다. 천지가 개벽해도 가장 큰 소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큰 소수를 찾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2018년까지 알려진 소수 중 가장 큰 소수는 무려 2400만 자리 이상의 수라고 합니다.
과학자가 원자를 흥미로워하는 것처럼 수학자는 소수에 관심이 많습니다. 원자가 이 우주의 기본 요소인 것처럼 소수는 수의 기본 요소니까요.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아주 먼 은하와 거대한 별을 찾아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수학자들도 더 큰 소수를 찾기 위해 경쟁해요.
소수는 다른 수로는 절대 나눌 수 없는 수, 다른 수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수입니다. 그렇다면 매미의 생애주기는 왜 하필 소수일까요? 소수가 생존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매미가 소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매미와 소수의 상관관계
매미의 생애주기가 소수인 이유는 천적을 피하기 위함입니다.매미는 천적이 많아요. 방어능력이 없는 매미 입장에서는 천적과 마주칠 확률을 줄이는 게 최선의 전략이에요.대항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죠.
만약 매미의 생애주기가 합성수 6년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매미의 주기가 6년이고 천적의 주기가 2년 또는 3년이라면 매미와 천적은 6년마다 만나고, 주기가 4년인 천적과는 12년마다 만나게 됩니다.
주기가 6년에서 5년으로 1년만 줄었을 뿐인데 천적과 만나는 시간 간격은 도리어 길어집니다. 그 이유는 5가 소수이기 때문이에요.그래서 5이상의 소수가 매미에게는 적당한 주기입니다.천적을 만날 확률을 어떻게든 줄여보자는 게 매미의 생존 전략이에요.
억 겹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매미의 주기는 소수인 경우도 있었고 합성수인 경우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합성수 주기의 매미는 천적에게 잡아먹혀 서서히 도태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소수 주기의 매미만 살아남게된 거죠.
달력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매미는 어떻게 소수의 햇수가 흘렀다는 걸 알고 때맞춰 지상으로 나오는 걸까요? 유충이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먹을 때 수액의 구성 성분으로 시간흐름에 대한 단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그래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지상에 출현합니다.
매미는 소음유발자가 아닌 진화의 승리자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동물이 지구에서 등장과 퇴장을 거듭하는 수억 년 동안 매미는 작은 몸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함부로 다른 종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과 달리 매미는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자기 살길을 모색해 왔어요. 깜깜한땅속에서 소수의 세월을 견디면서요. 지구친화적 동물인 매미가 어쩌면 인간보다더 오래오래 지구에살아남을지도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