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

예그림의 단어사전

by 예그림

오늘은 '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전적 정의를 가져오는 대신 제가 생각하는 의미 요소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사전의 정의랑 좀 다르더라도 제가 깨달은 '참다'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참는 행위는 보통 '무언가를 참다'의 형태로 쓰이고, 그 무언가에 들어갈 수 있는 포괄적인 말을 떠올려보면 크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좋아하는 것을 참기, 싫어하는 것을 참기 둘 중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실 건가요?

일단 제 답은 '좋아하는 것을 참기'입니다. 그게 저에게는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 오랜 화두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꽤나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감자칩, 핸드폰 게임' 정도이지 않을까 싶지만, 둘 다 참아야 한다고 하면 참을 수 있으니까요.. 즐기는 정도인 글쓰기, 산책, 책 읽기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보면, 저는 좋아하는 것을 잘 참는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좋아하는 것들을 잘 포기할 수 있다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것 참기'를 고르긴 했지만, 저는 싫어하는 것도 꽤나 잘 버팁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게 저희 엄마의 지론으로 제 귀에 박혀있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이미 알아버린 어른이니까요.


그러다가 좋아하는 것을 참는 것 vs 싫어하는 것을 참는 것에 대한 제 길고 긴 성찰을 끝내준 것이 있습니다. 뜬금없지만 바로 운동입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참는 것'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이라는 행위야 말로 참을성의 집약체라고 느끼게 되었거든요.

누워 있고 싶은 욕구도 참고, 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도 참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참는 것에 가깝습니다. 힘든 운동을 견디고, 가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을 보면 싫어하는 것도 참아야 합니다.

오늘도 등록한 pt 20회 중에 16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16회나 잘 참아냈음에도 제가 이것을 왜 참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참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참는 게 이 행위인데 말이죠.

운동을 해서 건강해진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솔직히 살도 많이 빠지진 않았습니다. 대신 남은 것은 오늘도 잘 참아냈다는 성취감. 뭔가 좋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 내가 이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지요.

이번 pt는 건강이나 체중 감량이라는 육체적인 가치보다는 제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많이 주었습니다. '참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운동'이 인생에서 떼어놓으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몸만 움직인다고 해서 운동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으니까요.

제가 아마 운동 과정에서 신체적 변화도 없고, 정신적 깨달음도 없었다면 저는 그것을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의미한 반복과 무의미한 소비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니, 체중이 빠지지 않더라도, 여전히 잔병치레에 시달리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찾은 '참다'라는 말의 핵심 의미 요소는 '동기나 이유'입니다. 동기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참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더 나아가 '하다'와 '참다'의 차이 역시 '동기'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한다고 생각하면 하는 것이고, 무언가를 위해서 그것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참는'것이 되니까요.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동기나 이유'가 있어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참다 보면' 동기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말도 일리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즐거워서 시작한 일도 어느 단계를 넘어가면 '참아야만 하는' 부분이 생기고, 싫어하는 일을 참다 보면 동기나 이유, 더 넘어서 즐거움을 찾게 될 수도 있지요.

오늘도 확실한 결론은 '참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잘 참으면,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든 가치 있는 것이 남는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오늘은 지난한 글쓰기 과정을 참아낸 저에게 스스로 칭찬하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수정을 많이 하고 이렇게까지 잘 안 풀리는 글은 오랜만이었거든요. 그래도 참아내니 어쨌든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참아내고 마무리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오늘 하루, 그리고 요즘 잘 참아내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스스로를 칭찬해 주실 수 있길 바랍니다. 후련한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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