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조용한 새벽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별 달빛 같지도 않은 희끄무레한 빛을 바라보면서 절망의 형태는 참 다양도 하구나 생각하고.
- <책의 말들>, 김겨울
인용구를 읽다가 '우두커니'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아마 제가 오늘 모의고사 감독을 하며 우두커니 서있어야 했기 때문일까요?
우두커니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을 의미하는 부사라고 나옵니다.
일단 제 머릿속의 우두커니는 망부석처럼 '서' 있어야 하는데, 앉아있어도 우두커니라는 데 1차로 놀랐습니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라는 설명도 좀 낯설었는데요. 제가 생각한 우두커니는 넋이 나갔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도 생각도 삶도 너무 복잡하고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별거 아닌 단어인데, 왜 단어 풀이를 보면서 이렇게 실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내 우두커니는 그런 영혼 없는 게 아니야!'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납득할 수 없어서 우두커니의 어원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딱 하나의 글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르완다어 adukana는 소개하다 (to introduce something new)의 뜻이며, 형용사, 부사, 명사 등으로 쓰이는 과거형은 adukanye이다. 한국어 <우두커니>는 르완다어 adukana (to introduce something new)의 과거형 adukany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새로 소개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우두커니>는 새로 온 신입사원처럼 어쩔 줄을 모르고 그냥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멍하니 서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세건 님의 글
https://m.blog.naver.com/hyyimmm/220440892053
너무나 죄송하지만 어원에 대한 글을 보고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두커니의 '우두'는 소 머리의 한자니까 소처럼 우직한 느낌에서 온 게 아닐까? '우두하다' 같은 단어가 혹시 존재하고, ~거니가 붙어 ~커니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모두 틀렸기 때문입니다. (아쉬움과 별개로 어원에 대한 학술적 해석을 존중하는 의미로 글을 인용해서 출처를 밝혔습니다)
이미 있는 단어의 뜻을 바꿀 순 없지만 제 우두커니는 다르다고 주장해보고 싶습니다.
'넋이 나간 듯이' 보이지만 영혼 없거나 비어있는 게 아니고, '가만히' 있지만 머리와 마음은 움직이고 있으며,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무력한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순응하는 것이라고요.
숨을 죽이고 자신을 숨기는 배려이기도 하고, 다음 움직임을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행위이기도 하다고요.
오늘도 저는 아주 우두커니 잘 서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