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림의 단어사전
계획 [명사]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함. 또는 그 내용.
計(꾀할 계) 劃(새길 획) /計(꾀할 계) 畫(그림 화, 가를 획)
나는 J(계획형)이다. MBTI는 경향성에 대한 것이고, 그때그때의 상황이나 답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변하지 않고 수치가 100에 가깝도록 확고한 것이 계획 성향이었다.
J를 말하면 계획을 잘 세우고 딱 떨어지고 이런 느낌을 떠올린다. 하지만 J에 대해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통제형'에 가깝다. 실제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인데도 J형이 나오는 사람들은, 상황에 대해 통제하고, 익숙한 상황을 선호하며 새로운 도전이나 잘 모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유형에 가깝다.
그래서 나쁘게 말하면 이미 세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싫은 건 당연하지만, 자기가 계획을 바꾸는 것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통제하에 계획을 수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나는 (불과 2,3년 전까지의 나조차도) '계획적'이라는 말을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계획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삶의 궤적에서 계획에 따라 진행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해서 잘 되지 않은 부분은 있었지만, 미래 예상하고 그려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고, 그 예상의 범위 내에서 일들이 일어날 때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예측하고 생각해 보는 행위에 더 몰두했다. 일어날 경우의 수를 최대한 생각했다. 물론 그 안에서 생각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해볼 수 있는 예측을 최대한 해봤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 계획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계획을 세운 대로 인생을 빼곡히 쌓아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 스스로의 계획적임이 나의 자랑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가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획에서 안정을 느끼고 계획을 세워보려 하는 성향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계획에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계획'이라는 단어의 가장 핵심어는 '미리 헤아리다'이다. 절차나 방법과 같은 세부적 내용은 계획을 하면서 계속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미리 머릿속에 그린다'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리'라는 말만큼 무섭고, 무의미한 것이 없다.
교사로서 나는 수업 계획, 평가 계획, 업무 계획 등을 세우고 그대로 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일정과 학교 상황에 따라 세부 내용이나 일정들이 변화하기는 하지만 나는 학기 초 세운 큰 틀을 잘 벗어나지는 않는 편이다.
매년 초 세워지는 '학사 일정'등이 학교마다 아주 부득이한 사정 등을 제외하면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쩌면 공공기관이고 국가기반이 되는 시설이기 때문에 그 안정성에 기준을 두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계획형이었던 나에게 꽤나 좋은 장점으로 느껴진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30대 중반으로서 내 개인적 삶의 계획을 되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것이 있나 싶다. 대학 가는 것까지는 대부분이 다 같은 루트를 걸어오게 되니, 그렇다 치고. (물론 요새는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재수 삼수까지 하는 경우가 늘면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대다수의 고등학생이 졸업 후 대학에 가는 루트를 밟는 것 같다)
그 이후부터는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다. 초, 중학교 때 쓴 일기를 모아두고 있는데, 중학교 때 쓴 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10년 후 미래로 26살의 미래를 그려둔 일기이다. 일기 속 나는 26살에 3,4년 차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안정된 삶을 지내고 있었으며, 결혼 후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30살 이전에 아이를 낳는 것이 건강하다는 것을 주워듣고, 30전에 아이 둘을 낳겠다는 꿈을 야무지게 꿨던 기억이 있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일단 26살에 나는 아직 임용 준비생이었다. 한 번에 붙어서 3,4년 차 선생님은 개뿔. 공부의 압박과 우울감으로 생사의 기로를 좀 왔다 갔다 했다. 사실 그때의 일이 잘 기억도 안 난다. 30전에 아이 둘은 개뿔. 35세도 지나 노산의 나이에 접어들어 아이는 하나도 없고, 생겼던 아이도 유산했으니. 계획이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부부교사가 되는 꿈도 꿨는데, 두 번째 남자 친구와 결혼했고 남편은 교사도 아니다. 물론.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 첫 남자친구는 CC로 사범대 친구를 사귀어서 꿈에 다가갔었는데, (나도 서툴고 잘못했던 점이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솔직히 그는 나에게 매우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니 미래 계획을 세우라고 하는데, 미래 계획은 또 어떤가. 노후 계획을 세워도 경제적 투자도 하려고 하지만, 주식 시장도 부동산 시장도 당연히 내 계획에 발맞춰주지 않는다. 부모님의 노후 준비나 우리의 건강 이슈도 우리 계획대로 되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통계에 따라 40~50 정도에는 종류는 모르지만 부부 둘 중 하나는 암에 한 번쯤 걸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계획을 짤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을 잘 세웠다고 해도. '실천'이라는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쉽지 않다. 요즘도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그린 방학 생활 계획표를 지킨 날이 하루라도 있었나 싶다. 개학 3일 전부터 (그래도 계획형이라 3일 전에 시작했다) 방학중 일기를 몰아서 쓰며 끙끙거리던 기억이란..
이렇게까지 생각하면 계획이라는 단어만큼 부질없는 게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은 나쁘게 말하면 '꿈과 희망'의 다른 표현인 게 아닐까? 그렇다고 계획 없이 산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꿈' 없이 사는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목표는 있지만 계획은 없고 그냥 한다'라고 말하면 무책임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계획을 세워도 문제, 안 세워도 문제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계획이 '꿈을 이루기 위한 다짐'을 구체화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운 계획은 당연히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목표만 말하는 것은 '꿈이나 희망'에 가깝지만, 우리가 계획을 세운다고 하면 그 막연한 꿈보다는 조금 더 단계가 있는 것을 떠올린다. 완성된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한 단계가 3단계였던 것에 비해 실제 단계는 100단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부터, 그 몇 칸 안 되는 계단이라도 떠올리고, 그 계단을 올라보겠다는 구체적 다짐으로 가게 해주는 것. 그게 계획이 아닐까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계획의 정의는 '앞으로 할 일의 절차,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작정함. 또는 그 내용.'이었다. 내가 주목했던 '미리 헤아리다' 대신 이제는 '작정함'에 방점을 찍어보려고 한다. 내가 작정했다는 것을 구체화하는 것. 이루겠다는 작정으로 실천으로 옮기기의 바로 직전 단계라고.
나는 행복할 계획이다. 막연하게 행복하고 싶다는 꿈에서 벗어나 행복하기 위한 일들을 하나둘씩 찾아가 보고 있다. (새로운 브런치북이나 매거진 형태로 글쓰기로도 곧 진행할 예정이다.)
꿈으로 끝내지 않고 계획하는 것. 버킷리스트를 써놓는 것만으로 절반 이상을 이룬다는 말처럼. 계획을 일단 세워보면 어떨까.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어떤가. 그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행복했다면 그것도 좋지 아니한가.
게다가. 오늘 역시 '계획대로' 브런치북 연재 글을 발행한다.
'계획대로'되는 일이 하나 없긴 하지만, 큰 틀에서 내 삶은 '계획대로' 행복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