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서가 20장이라고요?

by 김다지


인테리어의 이응도 모르던 나는, 인테리어를 벼락치기로 공부하던 시점에서 두 번째 업체와의 미팅을 잡았다.


일단 예산이 중요했기에, 첫 번째 만난 업체처럼 모든 업체들이 1억이 넘는 견적을 준다면 인테리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찌됐건, 첫 번째 업체처럼 견적을 어바웃하게 주는 업체와는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두 번째 업체 선정은, 견적서를 꼼꼼하게 주기로 유명한 곳으로 했다.


지역 카페에서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는 그 곳은, 모두가 입을 모아 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사기당할 일이 없다고들 했다. 가장 빨리 미팅할 수 있는 날짜를 받아, 평일 저녁에 미팅을 했다.


두 번째 업체에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실장이 우리를 맞았다.


미리 준비해놓은 화면에는 아파트 도면이 띄워져 있었고, 노트북 앞에 앉은 실장은

굉장히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물었다.




“자, 그럼 현관부터 시작할게요. 현관은 어떻게 하실거죠?”

나는 동공지진이 왔다. 현관을 뭘 어떻게 하겠냐는 건지, 뭘 물어보는 건지도 감이 안 왔다.

“네? 뭘…. 뭘 어떻게 할 거냔 거죠?”

실장은 갑자기 맥빠진 얼굴을 하며 물었다.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실 건지 생각해보셨나요?”

“아…. 네. 생각했어요. 도배랑 바닥을 할 거고요. 주방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일랜드를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현관은…. 사실 현관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제가 인테리어가 처음이라서요.”

“아…. 네. 일단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사태파악을 마친 실장은 모니터에서 도면 파일을 치우고 VR로 볼 수 있는 우리집을 띄웠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보이는 현관을 클릭한 후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시작하듯 물었다.

“이 현관이 고객님네 현관입니다. 맞죠? 이 현관을 재사용을 하실 건지, 아니면 문에 필름만 붙이실 건지,

아니면 전체 철거를 하시고 다시 세팅을 하실 건지를 묻는 겁니다.”

“아, 그렇구나. 네네…. 사실 제가 현관은 정말 생각을 안해봐서요. 문에 필름만 붙이는 건, 괜찮을까요?

인테리어 예산이 별로 없어서 최소로 하고 싶거든요."

“실례가 안된다면 예산을 여쭤봐도 될까요?”

“맥시멈으로 5천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고치진 않을 생각이고요. 비용이 최대한 덜 나오는 방향으로 하고 싶어요.”


나의 말에 실장은 문을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문이 자세히 보시면 그냥 민자문이 아니라 모양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것도 겹겹이 겹쳐진 모양으로요. 이런 경우에는 필름을 붙이기가 까다롭습니다. 또 보시면 한쪽은 하얀색인데 한쪽은 검은 색이라 검은색 문에 화이트 톤의 필름을 붙이면 밑색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문을 교체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한쪽은 문을 교체하시고 한쪽은 필름을 하는 걸로 견적을 드릴까요?”

“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명쾌하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주는 실장에게 대번에 신뢰가 갔다.

드디어 현관을 벗어나 집안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바닥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선호하는 마루가 있으신가요?”

“선호하는 마루는 없습니다. 동화마루가 좀 저렴하고 괜찮다던데 저는 꼭 정사각 아니어도 되고요. 커다란 직사각이면 될 것 같아요.” 공부해온 걸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엇다.

“타일형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드형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의 멍한 표정에 실장은 급하게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에 시공한 마루가 요즘 많이들 시공하는 구정마루의 젠이거든요. 600에 600사이즈. 이런 마루들을 타일형 강마루라고 하고요. 일반적으로 나무색을 띄는, 고객님께서 흔히 봐온 마루가 우드형 강마루고요."

“그 두 마루가…. 차이가 있을까요?”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미팅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정말 많은 걸 순식간에, 마치 3시간짜리 인테리어 족집게 과외를 받은 듯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밤 9시가 되가는 시간까지 계약이 성사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이토록 길고 딥한 상담을 하는 실장이 안쓰럽기도 했다. 미팅을 마치고 그는, 견적서를 받아보려면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고생하셨다고 진심을 다해 인사를 하고, 업체를 나오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내 마음 같았다.


대체 뭐가 이렇게 많고 복잡한건지, 난 얼마나 뭘 더 알아봐야 하는 건지 내 선택으로 몇 백만원의 견적이 왔다갔다하니, 그냥 대충 넘어갈 수도 없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늘어갔다.



여전히 난 너무 막막했고, 실은 너무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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