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Know What Love Is - 진에에서 벗어나자
2023년 5월 12일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21.4km
아직 쌀쌀한 아침이다. 어제처럼 짐을 꾸려 배낭을 메고 출발하려는 찰나에 이슬비가 흩뿌린다. 우비와 라텍스 비닐장갑을 착용한 다음에 길을 나섰다. 페레그리노스 알베르게 Algergue de Peregrinos 광장 앞 표지판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가 790km라 적혀 있다. 프랑스 루트의 공식 인증거리는 779km. 어제 24km를 걸었으니 755km가 남았을 텐데 의아했다. 자동차 도로 기준이겠지 하며 넘겨버렸다. 이정표 오른편 너른 풀밭에서 어미말과 망아지들은 부산스레 출발하는 순례객들이 안중에 없다. 궤념치 않고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다. 초원을 노니는 말. 내가 상상하던 목가적 풍경 중 한 장면이다.
출발지인 론세스바예스는 해발 952 m, 오늘 목적지인 수비리는 고도 528m다. 가끔 짧은 업힐 구간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부슬비에 땅이 젖은 진창길이 제법 미끄러웠다. 걷기가 수월치 않다. 게다가 에로고개에서 수비리까지 마지막 4km 내리막 암반 길은 맑은 날에도 미끄럽다는 악평이 자자하다. 혹시 모를 낙상을 신경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리로 가는 코스는 전반적으로 앙꼬 없는 찐빵처럼 싱거웠다.
매일 걸은 순례길이 모두 인상적인 건 아니다. 일 년이 지나도 컬러풀한 스냅샵처럼 기억이 뚜렷한 코스가 있다. 반대로 간이 안 밴 음식같이 구간도 많다. 걸었던 장면을 아무리 떠올리려 애써도 끝끝내 흐릿하기만 한 일정들이 부지기수다. 오늘은 후자에 가깝다. 일단 임팩트가 강한 일정 사이에 끼여 어정쩡했다. 우선 우중에 피레네를 넘어야 했던 긴박감이 사라져 허탈했다. 내일 만날 순례길 첫 번째 대도시인 팜플로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앞서 수비리 가는 길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코스 난이도를 매긴다면 5점 만점에 3점이겠다. 어제 나폴레옹 루트나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비하면 구름을 걷는 수준이다.
물론 무색무취한 코스라 해서 순례를 이어가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만난 첫 번째 마을은 헤밍웨이가 묵었다는 부르게테 호텔로 유명하다. 대작가는 이곳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했다고 한다. 목장 울타리을 길동무 삼아 걸는다. 어제 짙은 운무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한 말과 양들이 그 안쪽 지근거리에서 노닌다. 피톤치드가 넘실대는 고즈넉하고 인적이 드문 숲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운치를 불러온다.
론세스바예스엔 알베르게가 하나 밖에 없다. 한 숙소에서 시차를 두고 출발해서일까? 순례객들이 제각기 무리를 이뤄 띄엄띄엄 줄 지은 모습에 미소가 절로 인다. 비로소 까미노에 왔다는 기분이 물씬 들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 까미노에 열중한다. 그중 연세 지긋한 분들이나 노부부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순례길에 남녀노소를 가릴 필요가 있겠냐마는 연로한 순례객들은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걸음걸이가 조금 느릴망정 서로를 챙기며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돌이켜 보니 사십 대까진 길을 나서면 아내 발걸음에 맞춰 의례히 손을 맞잡고 걸었다. 요즘은 신경 쓰지 않으면 손 놓고 걷기 일쑤다. 무의식중에 아내보다 반 보 앞장 걷는 나를 발견한다. 그제서야 미안한 마음에 은근슬쩍 손을 내민다. 나도 모르게 애정이 작아진 걸까? 아내는 시골길을 오래 걷는 걸 즐기지 않는다. 한 두번 제안하는 시늉 끝에 어쩔 수 없다며 혼자 순례를 왔다. 무사히 순례를 마쳐 귀가하면 예전처럼 다정히 손 잡고 산책하리라 다짐한다. 두런두런 신변잡기를 털어 놓으며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7km를 걸어 에스피날 마을에 들어섰다. 첫 번째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나는 까미노 중에 오렌지 주스와 콜라를 주로 마셨다. 노변에 위치한 많은 카페들이 오렌지를 즉석에서 짜준다. 순도 100%짜리다. 가격은 대체로 이삼 유로 수준. 현지 물가로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기준으로는 괜찮은 가격이다. 에스피날로부터 7km 가량 떨어진 린소아인Lintzoain 마을 초입의 카페를 지나쳤다. 또 있겠지 생각했다. 에로Erro 고개를 넘기 전에 쉬려 했는데 카페가 보이질 않는다.
적당히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언덕길이 막 시작되는 주택가 앞에 놓인 기다란 의자에서 쉬고 있다. 얼핏 봐도 덩치 큰 리트리버 두 마리가 연인들에게 먹이를 달라며 꼬리 친다. 우리 남매는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다. 그냥 지나려다 용기를 내 연인 옆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쉬기 적당한 곳이 있으리란 보장이 없거니와 만의 하나 개들이 덤비면 옆에 앉은 청년에게 의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눈방울이 동글동글한 게 무척 순해 보였다. 평소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먹이를 자주 얻어먹어 그런 거 같다. 우리에게도 바짝 다가와 사뭇 살갑게 굴며 먹이 달라 칭얼거린다. 순간 솜털이 돋고 등골이 살짝 오싹해진다. 그래도 겁먹은 티 내지 않고 바게트 몇 조각을 떼어 던져주었다. 게눈 감추듯 입에 털어 넣고는 한참을 더 달라며 우리 주위를 서성인다. 더 줄 게 없어 시선을 돌리자 멀찌 감치 다가오는 순례객들의 인기척에 그쪽으로 꼬리 치며 총총 달려간다. 그제야 마음 편히 남은 사과와 바게트를 주섬주섬 챙겨 먹었다.
허기를 대충 때운 후 조금만 더 쉬자며 시간을 보내는데 물탱크 뒤에서 길냥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걸러 나온다. 집에 두고 온 반려묘 하쿠와 타타 얼굴이 떠오른다. 뭔가 던져 주고 싶은데 길냥이가 먹을만한 게 없다. 녀석은 적당히 거리를 두어 우리와 눈을 한번 맞춘 다음 식빵처럼 앉았다. 잠시 후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나왔던 곳으로 되돌어갔다. 후일담이지만 까미노에서 길냥이들을 많이 만났다. 몇 마리 빼고 다들 건강한 모습이었다. 개중에는 주민들이 보살피는 마당냥이들이 제법 있어 보였다. 드물지만 병에 걸려 기력을 잃은 안타까운 녀석들도 있었다. 까미노의 길냥이들에게 언제나 주님의 평화와 부처님의 자비가 깃들기를 바란다.
세계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고성장하는 일부 후진국들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전반에 걸쳐 경제 성장률이 기조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출산율 저하 역시 세계적인 현상이다. 빈부 양극화와 저성장 사회가 촉발시킨 MZ세대의 좌절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심각하다.
하쿠와 타타, 귀국후 구조한 새끼냥이 이브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남들 보기에 정도이상으로 돌보는 지 모른다. 집사된 입장에서 함께 사는 반려묘를 정성껏 부양하며 동물권을 강조하는 건 인지상정의 일이다. 그러나 내겐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미래 희망을 잃은 청년 세대와 소외계층에 애정과 관심을 기울일 사회적 의무가 있다. 다음 세대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경시하는 동물권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맥락에서 갈등과 좌절에 빠졌던 미국 청소년들을 노래한 록 그룹 Alice Cooper의 ‘I’m eighteen(482위)’이 주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싶다. 투표권이 없고 술도 못 마실 꽃다운 열여덟 살에 징병되어 베트남 전쟁에 끌려간 미국 청소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초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감하기 직전인 우리 사회는 2% 대 성장률에 감지덕지한지 오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청춘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과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사교육비가 부담되어 결혼과 출산을 태업한다. 원인과 결과가 뫼비우스의 띠로 구조화되었다.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이제라도 정부가 제대로 된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숙한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거하여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수비리에 다가설수록 날이 점차 맑아진다. 언덕을 다 내려와 수비리 초입의 다리가 보일 즈음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하늘이 제법 파랗다. 리오 아르가 알베르게Albergue Rio Arga에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발렌틴 바Bar Valentin에 갔다. 구글 평점이 꽤 높기로 소문난 마을 맛집이다. 이 집을 고른 이유가 있다. 한국의 양념치킨과 맛이 비슷하다는 닭봉 튀김을 먹기 위해서다. 순례에 적응하기 바쁠 초반에 입맛 돋워줄 메뉴로 적당하다. 아쉽게도 가게 사정상 며칠간 닭봉 튀김을 제공하지 않는단다. 로스트 치킨과 폭립을 대신 주문했다. 닭봉 튀김을 너무 기대한 탓일까? 주문한 메뉴들은 그럭저럭 평범한 맛이었다. 그래도 음식을 남기는 게 내키지 않았다. 가급적 남기지 말자고 누나에게 강권한 게 화근이었다. 식사를 마친 누나 컨디션이 급작스레 나빠졌다. 지친 와중에 몸에 평소 즐기지 않는 메뉴를 억지로 먹은 탓인거 같다. 저녁을 생략하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에 침대에 누워 있으라 일러두고 맡긴 빨래를 찾아 정리했다. 궂은 일을 동생에게 다 맡기게 되어 불편해진 누나가 부담갖지 않도록 나도 일찍 자리에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는 중에 작은 마찰이 있었다. 일상적인 순례자 행색과 확연히 다른 네 명의 여성 순례자들이 가게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모델처럼 화사한 드레스로 치장했다. 가게 안은 만석이라 자리가 없다. 메뉴를 주문하고선 입구 바깥쪽에 비치한 오크통에 둘러섰다. 주문한 맥주와 와인을 즐기며 왁자지껄 자기들끼리 정담을 나누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입구를 나서는 도중에 동양계 혼혈 여성과 살짝 부딪혔다. 그녀가 얘기에 심취해 몸을 돌리다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그녀와 어깨를 부딪혔다. 가벼운 사과를 기대했다. 웬걸, 내가 마치 일부러 부딪혔다는 듯 불쾌한 시선으로 째려보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해 제대로 말이 안 나왔다. 굳은 표정으로 마주 보다가 어처구니가 없어 그냥 되돌아섰다.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마음 상한 걸 가슴에 새겨 둔 것이다. 정체 모를 사총사와의 악연이라면 악연의 시작이다.
가능하면 업은 쌓지 말아야 한다. 그때 일을 다시 회상해 보니 내가 나서서 먼저 미안하다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오해를 풀 수 있었을 것 같다. 집을 떠나 머나먼 스페인 북부 산간 마을까지 순례를 온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Foreigner의 ‘I want to know what love is(476위)’의 가사는 내가 맞닥트린 상황과 어울렸다.
사람들은 어제 오른 피레네 산처럼 묵직하게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세상을 벗어나기를 원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맛보는 상심과 고통이 가득한 외로운 삶을 바꾸기 위해 멀고 먼 여행을 한다. 자신의 실수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순례객에게 진에를 퍼불 일이 아니었다. 나부터 따뜻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포근한 마음씨를 베풀어야 했다. 이제는 소용없는 후회막급이다. 하드록에서 더 이상 진전을 못해 정체에 빠진 밴드는 결단 끝에 소프트록으로 선회한다. 작심해 만든 이 노래는 밴드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서구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팔십 년대를 대표하는 명곡이다. 1984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미국의 팝스타들이 협연한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의 돌풍에 밀렸다. 포리너로서는 매우 아쉬웠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