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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May 25. 2024

[3일 차] 순례자의 먹거리

On the Road Again -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길을 나서자

2023년 5월 13일 수리비 – 팜플로나 20.4km


  해외여행을 할 때 각자 기호에 따라 원하는 식자재를 챙겨 간다. 그래도 볶은고추장이나 김치류, 김 등은 모두가 빼놓지 않을 기호식품일 것이다. 배낭무게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하는 우리는 다 포기하고 라면수프와 동결 건조한 블록국만 몇 봉씩 준비해 갔다. 날씨가 끄물끄물하거나 비를 맞았을 때 컨디션을 끌어올리기에 적당해서다. 현지에서 구한 라면이나 스파게티면에 수프만 넣어 끌이면 된다. 부피를 차지하지 않으며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수비리에서 머문 리오 아르가는 주방이 오픈돼 있어 간단한 취사가 가능하다. 


  오늘 아침거리는 스파게티 라면이다. 스파게티는 어제 문제의 사 총사를 만났던 발렌틴 바 옆에 위치한 마트에서 구입했다. 떠날 차비를 마친 다음 이 층 주방에 올라갔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 두 팀이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팀은 부부였고 다른 팀은 친구지간인 여성 순례자 둘이다. 순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국 사람들만 있는 건 처음이었다. 약간 어색한 인사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아직 우기라 그런지 아침이 제법 쌀쌀하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금방 몸이 따뜻해진다. 아쉬운 건 면발이다. 약간 설익은 맛이랄까? 누나에게 몇 분 끓였는지 물었다. 라면 조리법대로 사 분 정도 끓였다고 한다. 겉봉지에 적힌 권장 조리시간은 구 분인데. 좀 더 삶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국물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어 만족했다.


  라면은 정크푸드다. 하지만 각성제처럼 처진 몸과 기운 잃은 입맛을 돋우는데 적당하다. 그래서 순례를 준비할 때 어디에서 라면을 사 먹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 두었다. 당초 계획 여덟아홉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틈틈이 기력을 찾기에 충분하다 여겼다. 준비해 간 라면수프 말고도 한국 라면을 팔거나 먹을 수 있는 곳이 다섯 군데가 넘는다. 프랑스 루트 중간중간마다 보급기지가 있다. 이쯤 되면 라면을 즐기는 한국인 순례자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라면 먹방 기행이나 다름없다. 수비리에서 어설픈 대로 라면 시늉을 냈다면 팜플로나에서는 오리엔탈 마트에서 제대로 된 한국 라면을 구할 수 있다. 알베르게에서 취사가 가능해 끓여 먹을 수 있다. 날이 궂지만 라면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 까미노를 걸을 분량에서 한 걸음도  떼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메뉴 한 끼가 온몸을 고양시킨다. 순례와 먹거리는 떼놓으래야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삼십일 이상 반나절 넘게 무거운 짐을 메고 땀 흘려 걸어야 하는 고행자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까미노를 걷는 현대판 수행자들은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비워 자연과 동화하기 위해 바쁜 도시 일상에서 탈출했다. 이들은 까미노 위에서 오욕칠정의 욕망과 감정을 벗어던지려 하겠지만 식욕과 수면욕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놓기 힘든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인으로서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기행은 곧 다양한 스페인 음식을 접하는 식도락 여정이기도 하다. 점심은 현지에서 대표적인 스트리트 푸드로 알려진 보카디요와 토르티야를 선택했다. 아직 스페인어로 정식 메뉴를 주문하는 게 익숙지 않은 탓도 있지만 워낙 많이 알려진 간편식이라 부담 없었다.


  수비리로부터 라라소냐까지 초반 오륙 킬로미터는 이틀간 보았단 풍경과 비슷했다. 특별한 감흥이 일어날 게 없었다. 에스키로츠를 지날 무렵 어느 농가 창고 벽을 가득 메운 그래피티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바스크 지역 방문을 환영한다는 내용인데 ‘문화를 느낌’이라 적힌 한글이 반가웠다. 이역만리에서 우리 글자를 만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로츠를 지나 사발딜까에 들어서자 어느새 풍광이 바뀌었다. 순례길 바로 옆으로 광활한 밀밭이 이어졌다. 두렁길에는 꽃양귀비가 새빨갛게 만개했다. 사발딜카의 끝자락에 위치한 바스크 바베큐장을 지나 아를레타 산 허리에 들어섰다. 왼편으로 계곡이 길게 늘어서있고 그 아래로 무성한 숲이 자리 잡았다. 부지불식간에 흐린 날씨가 물러나 뭉게구름 사이로 시퍼런 하늘이 높이 서있다. 아롱지는 햇살이 도화꽃 흩날리듯 주변을 수놓았다. 한 폭의 산수절경화가 펼쳐진 듯했다. 그늘을 찾기 어려운 산길을 오르내리다 잠시 숨을 고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점심을 예정한 비야바에 당도한다. 


  비야바! 북부 스페인에서 처음 맞이한 도회지 인근 마을이다. 옅은 자주색 보도블록 위로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논다. 주말을 맞은 주민들이 여유로운 휴일 오후를 즐긴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감이 가는 장면이다. 많아야 열 살 언저리일 아이들이 술래잡기에 여념이 없다. 뭐가 신났는지 깔깔대며 서로 잡으려 쫓아 달린다. 천진난만한 모습이 좋았다. 환한 얼굴 어디에도 공부에 찌든 모습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삼사 학년이면 사춘기를 겪는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중학생이 되면 훈육하는 엄마를 한 손으로 막아선다. 너무 흔한 일이라 이제 놀랍지 않다. 


  부모세대에 반항하는 행동은 세상 어디나 다 똑같은 것 같다. 종전 후 미국의 전성기였던 육십 년대를 이끈 G.I 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베이비 붐 세대 간의 갈등이 우리 세태와 유사하다. 부모 자식 간의 첨예한 갈등을 노래한 Cheap Trick의 ‘Surrender(465위)’ 에서 칩 트릭은 청소년들에게 자신들과 너무나 다르며 이상하기까지 한 부모를 설득하지 말고 웬만하면 그냥 져주라 조언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기성세대에 반항해 그들의 권위의식과 독선에 저항하는 청춘들을 그릴 수 있다. The Stooges의  'Search and destroy(468위)'가 그렇다. 노래 제목은 군사용어에서 따왔다. 작전에서 철수할 때 주변을 탐색하여 주위를 파괴하며 후퇴한다는 뜻이다. 현대판 청야 전술에 가깝다. 가사에 네이팜탄, 핵무기, 방사선 같은 무기들을 나열하며 베트남전을 이끈 권력자를 비꼰다. 록밴드는 음악이란 엔터테인먼트 산업 정점에 서있는 자들의 돈만 되면 쓰레기도 팔 수 있다는 독선과 위선을 전쟁에 비유해 은유적으로 비판했다.

    

그래피티 벽화와 산티아고에서 만난 길냥이, 사발딜카의 밀밭길


  적당한 식당을 찾아 주위를 둘러본다. 시에스타에 들어갈 시간이라 바로 앞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다. 손님이 두어 명 있는 바에 들어가 보카디요와 토르티야를 주문했다. 보카디요(Bocadillo)는 스페인식 샌드위치이다. 우리가 익숙한 샌드위치는 네모난 식빵을 사용하는데 스페인에서는 바게트나 기다란 빵을 반으로 갈라 취양에 따라 고기, 하몽, 야채, 치즈 등을 넣어 먹는다. 프랜차이즈 서브마린 샌드위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나는 평소 빵이나 과자와 같은 스낵류를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단맛 나는 건 더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밀가루 음식 중 유일하게 면종류를 즐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국물이라도 면만 들어 있으면 어지간해서 사양치 않고 잘 먹는다. 그런데 보카디요는 빵 자체가 달지 않고 적당히 딱딱해 씹는 질감이 제법 괜찮다. 게다가 취향에 어긋나지 않은 샌드위치 소에 올리브 유와 발사믹 식초가 곁들여져 입맛을 한층 돋워 준다. 입이 짧은 내가 충분히 맛있게 먹을 만했다. 토르티야는 스페인식 오믈렛이다. 계란 오믈렛에 감자와 양파를 잘게 썰어 위에 바질이나 파슬리 등을 뿌려 오븐에서 구워낸 음식이다. 말로만 듣던 토르티야를 첫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음~~ 딱 내 스타일인데!’ 한 입에 둘 다 만족스러웠다. 이 두 메뉴는 이후 우리 남매가 즐겨 찾는 브런치 메뉴로 간택되었다.


아를레타 산길과 비야바 마을 전경, Bar를 이용하는 주민과 보카디요/토르티야


  비야바를 지나면서부터는 도심이 이어진다. 주말 오후가 되자 나들이하는 가족들이 종종 보인다. 팜플로나 직전의 신시가지 아레스의 번화가를 지나 구시가지인 성문이 지척에 다다랐다. 마른 해자가 성을 둘러쌓았다.  해자와 중세풍의 성곽에서 나바라주의 주도 팜플로나가 겪었을 중세 이후 천년의 영욕이 다가선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순례객이 성을 향해 내 앞으로 지나는 모습에 이채롭다. 자전거 순례자를 처음 봤다. 성문이 가까워자 구글지도가 바로 이백여 미터 앞에 숙소가 있다고 안내를 한다. 어딜 봐도 숙소가 있을 만한 곳이 보이질 않는다. 지도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어 여러 번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반신반의하며 헤맬 것을 각오한 채 성문에 들어섰다. 여전히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도로 양편으로 건물들이 늘어서 있을 뿐 알베르게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성문에 가까운 건물로 다가섰다. 그제야 숙소가 보였다. 건물 일 층 문에 떡하니 애태우던 숙소명이 적혀 있었다. 


  다시 한번 내 특유의 의심병을 탓해야 했다. 사무엘 존슨은 의심은 무용한 고통이라 했다. 의심이야말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망상을 하게 한다. 행동을 제약하고 가능성을 훼손하는 원흉이다. 토마스 오트웨인의 말처럼 단지 겁쟁이가 지닌 미덕에 불과한 것이다. 살면서 그간 불필요한 의심 덕분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좌절, 심적인 위축을 얻었던가? 앞으로 남은 여정에서는 보이는 대로 믿고 불필요한 의심을 하지 말자고 재차 다짐을 했다. 오늘 묵을 숙소 카사 이바롤라는 캡슐형 침대가 있는 알베르게다. 숙소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캡슐형 침대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저녁은 예정대로 아시안 마트에서 장 본 라면에 볶음밥과 과일로 풍성한 만찬을 즐겼다.


팜플로나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해자, 성문을 지난 초입 거리에 소재한 캡술형 알베르게 카사 이바롤라


  오늘 들어야 할 몫의 명곡들은 곡 하나를 제외하고는 난생처음 듣는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한 번쯤 곱씹어볼 만했다. 그중 어느 걸 꼽아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 ‘Respect yourself(462위)’는 오랜 세월 억압받은 흑인들의 자의식과 인권을 고무하는 내용이다. 경쟁과 도태를 당연시하는 요즘 우리네 풍조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별을 고하는 연인을 설득, 회유하면서 원망하며 이별을 막으려 애쓴 화자가 결국 이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상처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Standing in the shadows of love(464위)’는 젊은 시절의 빛바랜 추억을 되새겨 준다. 그 당시에는 헤어진 상처가 무척 쓰라렸다. 아픈 만큼 건드리지 않아 오랫동안 시달렸는데 그 상처에 소금을 툴툴 뿌려 쓰린 고통을 극기하는 현명함이 필요했던 것 같다. 순례의 의미를 환기시켜 줄 만한 노래들도 있다. ‘Free man in paris(470위)’는 제목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가 애용하는 인터넷 닉네임이 Freeman이기에 그랬다. 화자는 파리에서 자유인이 되어 구속감에서 벗어나 살아 있음을 느낀다. 파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기꺼이 초대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미래를 강요하는 부담도 없다. 일만 없다면 내일 파리로 가고 싶다며 읊조린다. 파리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바꿔도 비슷한 의미로 다가선다.


  고심 끝에 두 곡을 선정했다. 500대 명곡이 갖는 음악사적인 지식이 짧은 내게는 익숙한 멜로디에 손이 갔다. Del Shannon의 ‘Runaway(466위)’을 선정한 이유다. 빗속에서 떠나는 여인에게 왜 헤어지려 하는지 물어보는 내용이다. 내 곁을 떠나려는 옛 친구에게 이유도 묻지 않고 돌아섰던 오래전 그 순간이 떠올랐다.


Del Shannon -  Runaway(1961년, 466위)


  또 한 곡은 Willie Nelson의 ‘On the road again(471위)’이다. 이제 순례에 나선 지 불과 삼 일째이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언제인가는 산티아고에 닿을 것이다. 노란색 화살표가 끝나면 걸음을 멈추고 까미노를 떠나야 한다. 결국 서울로 돌아와 삶의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차안의 문턱을 넘어 피안을 향하다 발걸음을 되돌려 이 언덕으로 돌아와야 한다. 바라밀다로 가는 순례는 일장춘몽의 짧은 꿈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이 언덕의 길이 새로이 시작되면 예전처럼 투자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게 자명하이다. 그렇지만 넬슨이 노래했듯이 나의 길은 투자의 세계로 다시 떠나야 하는 데 있다. 지인들과 투자 아이디어를 토론하며 즐겁게 투자하는 것. 그것이 내게 남겨질 까미노다.


Willie Nelson - On the Road Again(1980년, 47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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