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순례자 사무실 봉사자가 출발 당일 정상 부근에 눈이 올 거라 안내했다. 전날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 지트 비데안 주인장도 뢰푀데르 피크의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내려갈 거라 경고했다. 우기의 끝자락에 강설 예보라니.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려는 론세스바예스는 정상보다 오백 미터 가량 낮은 산중 마울이다. 그런데 목적지의 최고 기온이 8도에 그친다는 예보가 있었다. ‘인적 드문 초행길에 눈이라니!’ 살짝 긴장이 일었다. 주인장이 내일 예상되는 코스 컨디션을 설명하겠다며저녁 예약을 권했다. 미리 봐둔 식당에서 만찬을 할 예정이었다. 외식 약속이 있다며 완곡히 거절한 다음에 식사 후 설명만 듣겠다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밤 아홉 시에 일층 응접실로 오란다. 약속시간에 내려갔다. 그런데 웬걸, 정작 주인은 저녁 신청한 투숙객들과 한창 사담을 나누기 바빴다. 응접실에 들어서는 나를 힐끗 보곤 종업원에게 대신 코스를 설명하라 이른 다음 고개를 바로 돌려 이야기 삼매경을 이어갔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들었던 설명과 다른 게 있나 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순간 맥이 빠졌다. 만찬을 신청받으려는 낚시였나 보다. 앞으로도 순례객을 배려하는 듯한 호객을 얼마나 겪을는지.
인천공항과 스키폴 공항 환승 게이트에서 만났던 순례자 김 모 선배가 우연찮게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었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렸다. 김 선배와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출발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궂은날에 조난당할세라 우비와 스패츠로 중무장했다. 영하의 날씨에 손이 젖으면 큰 일이다. 손 시리지 않도록 장갑 위에 라텍스 고무장갑을 덧꼈다. 나폴레옹 코스와 우회길 발카를로스 코스의 분기점을 지나는 언덕을 오르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충분히 예열되어 겉옷을 벗을 겸 길을 멈췄다. 도로변 가정집 차고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우비 안에 껴입은 외피 하나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길을 이어갔다. 누나는 스틱을 처음 사용했다. 걷는 본새가 꽤 어설펐다. 아직 노르딕 워킹 자세가 익숙하지 않은 듯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차츰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누나 앞에서 스틱 쓰는 법을 재차 가르쳐주었다.
물안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이 연이어졌다. 거센 빗자락에 바람마저 세차게 불어제쳤다. 설상가상으로 안개마저 짙게 껴 생생한 녹음이 우거진 피레네 초원을 보기 힘들었다. 걷는 내내 경치 구경은커녕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지만 나폴레옹 루트를 걸을 수 있어 그나마 최악은 면했다며 스스로 위안했다.
한국에서 순례를 준비할 때 나름대로 로망이 몇 개 있었다. 첫째 나폴레옹 길을 걸으며 피레네 절경에 심취하기. 둘째 피레네에서 하루를 머물며 은하수 감상하기. 셋째 콤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끝으로 까미노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와인과 맥주, 커피를 원 없이 즐기기. 마지막 소망은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로 일말의 여지없이 포기해야 했다. 순례길 완주가 너무 뻔한 목표인 만큼 1박 2일의 피레네 산행을 크게 기대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일정 변경과 설마 하는 악천후에 눈에 담기 벅차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포기하게 되어 못내 아쉽던 차였다. 실의에 빠진 나그네에게 신의 가호가 내렸다. 기적이 일어났다. 조금씩 비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자욱했던 운무가 어느새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티끌하나 없이 새파란 하늘과 물기 머금어 초록이 완연해진 언덕 들판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파산 직전에 로또를 맞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소망 하나는 건졌다는 흡족한 마음에 오리손을 향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거짓말 처럼 물러난 비구름과 운무.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이랴!
오리손에 도착할 때까지 해가 쨍하게 났다. 욕심이 났다. 아예 비가 그쳤기를 바랐다. 예정보다 산행이 조금씩 지체되어 론세스바예스에는 일러야 세 시 넘어 떨어질 걸로 예상되었다. 늦어지는 일정이 불안하던 차에 비만 멈춰도 도착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오리손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객들 중 한 분이 예약했어도 세 시까지 가야 노쇼가 되지 않는다고 일러줬다. 처음 듣는 정보라 긴가민가 했지만 조급해졌다. 수차례 알베르게에 전화를 했는데 연결되지 않았다. 만의 하나 예약이 취소되면 다음 마을인 부르게테나 에스피날까지 가야 한다. 초행의 산을 넘어 지친 누나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답답한 나머지 까친연 단톡방에 문의했다. 이미 선결제 예약을 해서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는 안내를 받고서야 안심했다. 순례에 익숙지 않은 초반 여정에 까친연 순례자 단톡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조언을 해주신 분들께 뒤늦게나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한다.
순례 첫날의 관심사는 온통 누나에 쏠렸다. 산행을 거의 경험하지 않은 누나가 비가 쏟아지는 피레네를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다행히 누나가 순례 전에 연습 삼아 매일 십 킬로미터 가량을 꾸준히 걸었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속도가 조금 느릴지언정 기복 없이 꾸준하게 잘 걸었다. 정작 사달은 내게서 일어났다. 날씨걱정, 누나걱정에 과도하게 신경 쓴 때문일까? 다시 쏟아지는 비와 지체된 시간에 불안증이 도진 가운데 오리손을 나서자마자 허벅지에 경미한 근육경련이 일었다. 순간 당황했다. 아직 갈길이 멀다. 십칠 킬로미터 넘게 남은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쥐가 났다. 이제 더 이상 숙소에 늦게 도착하는 게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중에 조난을 당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수개월 동안 순례에 대비해 몸을 만들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아! 삶의 마지막 찰나에 직면하면 지나온 일생이 순식간에 연상된다는 말을 절감했다. 애써 참고 걸었지만 종아리에서 시작해 허벅지 근육이 굳기 시작했다. 무뎌진 내 발걸음에 뒤따라오던 순례객들이 괜찮냐고 묻는다. 웃으면서 괜찮다며 먼저 보냈다. 마침내 대둔근까지 경직되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스팔트 길 옆 수풀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서 가던 누나를 불러도 듣지 못했는지 점차 간격이 벌어져갔다. 에라 모르겠다 급한 대로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그제야 저 멀리서 누나가 돌아봤다. 한참을 되돌아와 걱정 어린 시선으로 괜찮냐고 묻는다. 늦어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가자며 내 속도에 맞춰 걸었다. 다시 일어나 이삼 킬로미터를 걸었을까? 경사진 언덕길 너머 너른 평지가 나왔다. 숨 고르기에 적당한 바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행동식을 먹고 굳은 다리를 풀어볼 요량으로 연신 스트레칭을 했다. 노천이라 비를 피할 수 없었지만 컨디션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두 시간이 좀 지나자 평소처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라이딩에 푹 빠져 산행에 뜸했다지만 산을 제법 잘 탄다는 자부심에 충만했던 내게는 놀라운 충격이었다. 악천후와 조난. 나와 상관없다고 치부했던 달갑잖은 상황이 현실로 다가올 줄이야. 그것도 죽음의 공포를 선사하며! 산티아고 순례를 다룬 영화 ‘The Way(2010년)’의 한 장면이 부지불식간에 떠올랐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렇다. 심한 불화를 겪은 아버지와 아들이 생이별을 했다. 주인공 마틴 쉰은 프랑스 루트 순례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악천후에 조난을 당한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생장 피에르 포흐로 향한다. 아들의 배낭에서 발견한 까미노 안내서를 꺼내 읽는다. 주인공은 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순례길을 나선 까닭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까미노를 시작한다. 조난의 두려움에 뒤이어 순례 여행을 극구 반대했던 아내와 이역만리타국에서 날아올 험한 소식에 황망하실 어머니의 슬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공포를 짓누르자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조난을 당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노래 한 소절을 무작정 불러댔다.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489위)'란 곡이다. 이 노래는 사실 조난 내지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애인과 헤어져 혼자 살게 된 화자는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낯선 상황을 무서워했다. 겁에 질린 그녀는 서서히 자아를 깨달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다시 돌아온 연인이 뒤늦은 사랑을 호소하지만 이를 외면하며 당차게 나는 살아남을 거라 외친다는 내용이다. 박력 있는 가사에 역동적인 리듬이 저절로 힘을 내게 한다. 실직해 경제적으로 곤궁한 나날을 겪던 작곡가 디노가 예전에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 주제곡이 TV에서 흘러나올 걸 보며 앞으로 매사가 잘 될 거라 확신했다. 다시 작곡가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아 이 노래를 작곡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후렴구를 너무나 자연스레 불렀다. 나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되뇌며. 노래 덕분에 자신감이 되살아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공포의 미망에서 벗어나자 남은 순례길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필요 이상의 걱정과 비상사태를 상정하는 마음의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폴레옹 루트를 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산 백운대를 오를 정도의 체력이면 누구나 힘들지 않게 트레킹 할 수 있는 코스다. 천이백칠십 미터의 고도를 이십일 킬로미터에 걸쳐 완만히 지루하게 오르면 된다. 한라산을 등반한 이들은 성판악 코스의 지루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1978, 489위)
티바울트 십자가상 분기점. The Way(2010년)의 주인공 아들은 여기서 길을 잃어 조난당했다.
나폴레옹 루트의 정상인 뢰푀데르 언덕에서 하산할 코스를 다시 확인했다. 대부분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선택하는데 미국인 남녀 순례자들이 왼쪽 아스팔트 길을 고집한다. 포장길이라 편해 보였지만 새로운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숙지했던 샛길로 내려갔다. 다른 순례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리 지어 하산했다. 내리막길 막바지에 성당터가 보였다. 경사진 풀밭을 가로지르는 비포장 지름길이 분명히 나있는데 아무도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앞서 걷던 순례자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지그재그로 이어진 포장길로 들어서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다들 그 뒤를 따라간다. 나 역시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무리를 무작정 뒤따르는 레밍즈가 되어 성당터를 향했다. 공터에 도달할 즈음 미국인 남녀를 다시 만났다. 인생이란 레이스도 이와 같다. 우회길을 멀리 둘러 가거나 설령 뒤쳐지더라도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앞서 간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길 원한다면 막바지 쇼트커트를 선택해야 했던 것처럼 반드시 승부를 봐야 할 때만 인생의 지름길을 과감히 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내가 가진 패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불확실한 패를 한 번 받을 게 아니라 지금 가진 패가 최고 최선의 패라 믿어야 한다.
‘Desperado(494위)’는 미국을 대표하는 락밴드 중 하나인 Eagles의 두 번째 정규앨범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이글스 노래들 중에 호텔 캘리포니아와 더불어 가장 애청하는 곡이다. 호텔 캘리포니아 후반부의 몽환적인 기타 리프의 느낌이 일품이라면 이 노래는 잔잔한 멜로디와 가사에 마음이 간다. 절망에 빠져 죽음마저 불사하는 방랑자가에게 자포자기식의 방황을 멈추고 제 자리로 돌아와 사랑을 찾으라는 내용과 심연의 평화를 주는 운율이 가슴에 사무친다. 물질 만능과 부를 추구하는 다이아몬드 퀸을 고집하지 말고 사랑과 연민을 상징하는 하트 퀸이 네 최선의 패라는 걸 외면하지 말라 한다. 외적 성취에 매달려 목석처럼 감정이 메마른 방랑자에게서 지난날의 내 삶을 반추해 본다. 내 앞에 이미 충분히 좋은 패들이 놓여 있는데 가질 수 없는 더 높은 것들만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건 채울 수 없는 탐욕에서 비롯되는 삶의 좌절과 허탈함이었다. 젊은 시절 탐진치 삼독에 무수히 빠졌었다. 하늘의 명을 깨달을 시기가 이미 절반을 넘은 지 오래, 몇 년 지나면 어떤 말이든 순리에 따라 걸러 들을 수 있을 지금도 과욕에 빠질 때가 있다. 노랫말처럼 이제는 심연에 견고하게 둘러쳐진 벽을 허물고 마음의 문을 열어 비 온 뒤의 무지개를 맞이하고 싶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Eagles - Desperado(1973, 494위)
순례를 다녀온 유투버들이 올린 대다수 첫날 영상들은 생장에서 티바울트 십자가상까지의 촬영 분량이 전체 영상의 칠팔십 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이후 구간은 설렁설렁 대충 찍어 넘겼는데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었다. 걸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생장 피에르 포흐에서 티바울트 십자가상까지 십오 킬로미터 정도 걷는 동안 체력이 상당히 소진되어 남은 예닐곱 킬로미터의 오르막 길에 만사가 귀찮아졌을 게 분명하다. 초반에 페이스를 잘 관리한다면 티바울트 십자가상 분기점에서 뢰푀데르 언덕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게다.
우리 남매는 나폴레옹길 정상에서 눈을 맞지 않았다. 예상보다 일정이 늦어진 탓이다. 앞서간 순례객들이 전하기론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한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다. 론세스바예스에서의 저녁은 예상대로였다. 썩 훌륭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시장기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옆 좌석에 앉은 친구지간으로 세 명의 프랑스 순례자들과 나눈 담소가 그나마 만찬을 빛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