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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Jun 12. 2024

[5일 차] 회자정리

I Shot the Sheriff - 레게의 아버지, 밥 말리

2023년 5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21.6km


  순례 중 처음으로 화창한 아침을 맞이했다. 하늘에 시퍼런 물감을 가득 뿌린 모습이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눈이 시릴 정도다. 미세먼지가 자주 끼는 서울에서는 드물게 맛볼 날이다. 며칠간 우중 행군한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아 발걸음이 가볍다. Life goes up and down.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인생이란 이런가 보다. 매 순간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란 걸 다시 한번 되새겼다.


  누나와 내가 순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부지런한 출발 준비다. 같은 방을 머물렀던 이탈리아에서 온 장년 남성 둘과 할머니 두 분은 동이 틀 무렵부터 짐을 꾸려 일찌감치 떠났다. 어제 도움을 주었던 아주머니와 우리 남매만 달랑 남았다. 다른 사람을 눈치 볼 필요가 없어 편하게 짐을 정리했다. 바지런함으로 어디 내놔도 꿀릴 일 없는 한민족이건만 아직까진 출발이 가장 늦은 편이다.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지만 아침에 조급해지지 않기 위해 내일부터는 기상 시간을 좀 더 당겨볼 작정이다.


  아주머니와 아침을 같이 하기로 했다. 행장을 꾸린 후에 공용 주방에 내려갔다. 아주머니는 진즉에 아침을 준비해 우릴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리 내놓은 신라면과 삶은 달걀, 비빔장에 우리가 꺼낸 빵과 주스로 든든한 조찬을 함께 했다. 아주머니와 굳이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순례 중에 여느 한국 사람을 만나던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섣불리 다가서는 불찰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다. 그녀는 종갓집 종손 막내며느리에 얼마 전까지 프랑스에서 여행 가이드를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유방암 수술을 받아 완치한 이후로 더 이상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돈을 벌 때마다 서울에 아파트를 사둔 덕분에 이제는 여유 있는 인생을 즐기는 중이라 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로 부엔 까미노를 격려하며 쿨하게 헤어졌다. 우리의 순례길에서 아주머니와의 만남은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는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아마 내 누님은 파드레스 레파라디레스 알베르게에서 기대하지 못한 그녀의 친절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푸엔테 라이나를 지나는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여왕의 다리에서 포즈를 취한다. 로마네스크 풍으로 지어진 여왕의 다리는 여섯 개의 아치가 있다-사실 일곱 개의 아치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는 매립되어 여섯 개만 보인다-. 11세기 나바라 지방을 다스렸던 산초 3세의 왕비였던 도나 마요르 왕비가 강을 건너다 종종 물에 빠져 희생되는 순례자들을 위해 다리를 지어 기부했다고 전해진다. 순례자들에게는 최고의 자선이었다. 곱디고운 사연만큼이나 아름다운 외관을 뽐내니 저마다 사진을 남긴다. 오늘은 마녜루와 시라우끼, 로르까를 가는 동안 고개를 세 개 넘는다. 하지만 푸엔테 라 레이나와 고도 차이는 최대 백오십 미터에 불과하다. 고개 세 개를 누적해 봐야 해발 사백 미터 정도다. 그리 어렵지 않다. 마녜루를 가는 길에 미국 아이오와에서 온 여성 순례자를 만났다. 보기에도 무거울 정도로 커다란 배낭에 헐렁한 통바지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이 분도 레온까지 가는 동안 자주 만났다. 낯이 익어 지나칠 때마다 웃음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위 : 자전거로 순례하는 전직 가이드 아주머니와 여왕의 다리,  아래 : 미국 아이오와에서 왔다는 순례자, 마녜루로 가는 언덕길


  골프 라운딩을 하거나 능선 종주를 할 때 종종 뒤돌아 지나온 코스를 돌아본다. 가야 할 목적지로만 집중했던 시선을 뒤로 돌리면 색다른 감흥이 분무 퍼지듯 퍼져 나온다. 피레네 산맥을 넘거나 팜플로나를 벗어나 시골길을 걸을 때도 가끔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가슴속에 신선한 자극이 일었다. 한국 사회는 치열한 입시경쟁과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한 질주를 요구한다. 설령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도 도태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아 넣는다. 이런 사회에서 옆과 뒤를 둘러본다는 건 극소수만 누릴 남 부러울 호사이겠다 그게 아니라면 각자도생이란 미혹에서 벗어나 욕심을 거둔 이들만의 유유자적일 것이다. 남보다 앞서거나 뒤처진 이들을 밟고 올라서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노래다. 


‘네가 올라있는 그들은 너의 사랑, 이제 내려와 모두 함께 노래 불러. 네가 추구하던 세상에 허황된 것 허공에 쌓여진 시기와 질투의 탑일 뿐’


  따라오는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선두로 내딛거나 남을 끌어내려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우치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내 곁을 걷는 이들과 뒤처진 사람들, 끝내 자포자기한 낙오자들을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사회는 단지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자본주의는 적자생존이 미덕인 사회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중산층에서 밀려난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저항이 커질 것은 불 보듯 자명하다. 이를 잘 표현한 명곡이 있다. John Cougar Mellencamp의 ‘Pink houses(439위)’이다. 이 노래는 목 좋은 사거리에 위치한 핑크하우스가 도로 건설을 이유로 강제 수용당해 집을 잃게 된 어느 흑인의 좌절을 이야기한다. 핑크하우스는 천구백사오십 년대 미국에서 저렴하게 통나무로 지어 핑크빛 페인트로 칠한 집을 뜻한다. 노래는 미국에 더 이상 서민들을 위한 핑크하우스가 없는 현실을 빗대었다. 존 쿠거는 미국을 열렬히 사랑한 애국자이자 전쟁을 반대하며 노동자를 외면하는 정치판을 비판한 깨어있는 가수였다.


  시라우키를 좀 지나자 구릉지 언덕에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있다. 문득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나바라 지방의 시골 마을들이 대부분 평지가 아닌 언덕이나 자그마한 산 위에 위치했다는 사실이다. 마을 입구 주변에 성을 쌓거나 석축으로 지은 집을 성벽처럼 둘러 세웠다. 아마 외적을 경계하고 방어하기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한성 백제 시대에 지어진 몽촌토성을 보는 듯하다. 마을의 독특한 외양이 마음을 끌어 잡아 언덕을 다 내려와서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저 멀리서 여성 순례자들이 소풍 나온냥 신이 나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동네 산책 나온듯한 가벼운 옷차림이 눈을 끌었다. 누구인지 궁금해 눈에 힘주어 자세히 쳐다봤다. 아뿔싸 수비리에서 악연을 맺은 사 총사들이다. 발걸음이 빨랐던 그녀들은 어느덧 평지로 내려와 우리를 따라잡았다. 적당한 틈에 말 붙여 그날의 오해를 풀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녀들은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외면하며 지나친다. 그녀들은 오해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 걸 제외하곤 딱히 내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상대방을 무시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위 : 시라우키 전경과 마을 카페, 가운데 : 시라우키 인근 구릉지 마을과 4 총사, 아래 : 지친 순례자에게 휴식을 주는 쉼터


  사 총사들은 날씬한 몸매에 어디에 빠지지 않을 외모를 지녔다. 직업이 정말 모델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순간 The Stooges의 ‘ I wanna be your dog(438위)’를 떠올렸다. 그녀들의 행태로 봐선 남자들을 예쁘장한 자신들이 끌고 다니는 애완견 정도로 여길 거라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내가 너무 과잉 반응했던 것 같다. 수비리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먼저 다가서서 오해를 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Nirvana는 ‘Come as you are(445위)’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단,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경향에 맞추고 내 친구로서 말이다. 익히 아는 사이에서 일순간의 오해와 사건으로 틀어졌다면야 누군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서기를 바랄 수 있다. 나와 사 총사도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를 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는 서로가 안면부지의 이방인일 뿐이니 정말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면 남이 그러길 바라서는 안 되었다. 스스로가 먼저 나서야 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사 총사로 인해 상한 기분이 점차 풀렸다. 음악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명약이 분명했다.


Nirvana - Come As You Are(1991년, 445위)


  로르카를 지나는 중에 한국인 남성 순례자를 만났다. 맨 몸에 짐 하나 없다. 등산 스틱 하나에 샌들만 달랑  신은 채로 친구 만나러 사십 킬로미터를 걸을 예정이란다. 걷다가 필요해지면 그때 배낭을 살 예정이라 했다.  뭔가 빠질세라 바리바리 가득 담아 온 내 낯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때로는 욕심과 두려움을 버리고 무모해 보일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도전해 보는 싶은 갈망이 아주 쪼금 일었다. 아직도 나를 비우지 못했다. 


  새벽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꿈을 꿨다. 생뚱맞았지만 재미있었다. 마징가 제트와 건담이 일대일로 대결하는 내용이었다. 마징가 제트는 거대로봇물의 출범을 알리는 대표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이었다. 기동전사 건담은 건담 사가를 이루는 방대한 세계관을 갖는 슈퍼 로봇 시리즈다. 마니아들은 마징가 제트와 건담 중 누가 더 센 지를 두고 끝없는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런 호기심이 ‘슈퍼로봇대전’이라는 턴제 방식의 RPG 게임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제원과 장착된 무기 성능으로만 보면 최신 하이테크가 적용된 건담이 무난히 이기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마징가 제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마징가 제트의 광자력 파워를 견뎌내기에 퍼스트 건담이 너무 무기력했다. 기동전사의 강력한 빔 사벨과 라이플 건도 마신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꿈속에서 슈퍼로봇에게는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레게의 세계는 꿈속 슈퍼로봇 대전과 다르다. 레게 장르를 영미권 팝 시장에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은 프레드릭 히버트다. 그는 툿츠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Pressure drop’(446위)’을 발표했다. 그는 레게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자메이카 레게뮤지션의 자존심을 지키려 부단히 애썼다. 스스로를 옥죄어 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했다. Pressure drop의 가사는 착한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한 이들에게 압박이 가해진다는 내용이다. 업이 행하는 복수 내지 정의라 할 수 있다. 레게를 처음 소개한 프레드릭 히버트가 레게의 어머니였다면 레게를 전 세계로 유행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밥 말리는 레게의 아버지라 칭할만하다. 선배를 넘어선 청출어람이다. Bob Marley & The Whailers의 I shot the sheriff(443위)는 밥 말리의 베스트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이 던지는 직접적인 메시지는 피임과 산아제한 철폐이다. 노래에 등장하는 보안관은 화자에게 씨를 뿌리면 태아가 태어나기 전에 바로 죽이라고 강요한다. 피임을 권하는 의사를 빗댄 것이다. 자메이가 속담을 따온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Every day the bucket a-go a well, I mean one day the bottom a-go drop out(매일 물동이로 우물을 퍼내면,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난다).’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보면 산아제한이 저출산으로 이어져 결국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취업난과 극심한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공포스러운 좌절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저출산을 불러왔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의 경쟁이 완화되면 먼 훗날 다시 출산율을 회복할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입증되기 전까지 다들 암담한 미래를 그릴 것이라 몹시 씁쓸하다. 올해 초 개봉한 '밥 말리 : 원 러브(2024)'에서 밥 말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영국군 장교 출신인 백인 아버지에 콤플렉스를 가졌던 걸로 그려졌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보안관으로 그려 총을 쏘는 걸로 뿌리 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탈피하려 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Bob Marley and The Whailers - I Shot The Sheriff (1973년, 443위)


  예정대로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에스테야 공립 알베르게는 어제 숙소보다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낫다. 그런데 우리가 머문 1층 숙소는 옆건물의 벽을 튼 마련한 곳이었다. 원래 한 건물이 아니라 그런지 박공형 천장 귀퉁이와 벽 사이에 틈이 꽤 벌어졌다. 저녁에 꽤 쌀쌀한데 거센 바람의 한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간신히 비바람만 피해 비박한 느낌이다. 감기 몸살을 면한 게 다행이었다. 순례 체험을 제대로 하고 싶어 가급적 규모가 큰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 계획이었다. 하지만 컨디션 관리를 위해 어지간하면 상태 양호한 사립 알베르게로 예약하기로 다짐했다. 석식은 평점이 높은 레스토랑에서 오늘의 메뉴를 선택했다. 푸짐하게 나와 원 없이 배부르게 먹었다.


위 : 쉼터에서 오르카로 향하는 길, 가운데 : 에스테야, 아래 : 숙소 내부와 저녁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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