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것들이 있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된다면 엄마처럼 이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것 말이다. 우리 엄마는 연년생인 오빠와 내가 잘못했을 때 매를 드셨다. 제일 처음 엄마에게 매를 맞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6살 때 우리 집는 어느 2층 주택 옆에 조그맣게 딸린 방 2칸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주인집은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었고 그 아이는 우리 오빠와 같은 학교 친구였다. 엄마 아빠의 귀가가 늦어진 어느 날, 주인집 아주머니는 오빠와 나에게 자기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고 우리는 주인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엄마는 우리가 주인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사실에 크게 화를 내며 매를 드셨다. 왜 그날 그리도 맞았는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주인집 아주머니와 전날 뭔가 사이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우리가 주인집 아주머니의 휘황찬란한 반찬에 며칠 굶은 아이들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었을 거라 미리 짐작해서가 아닐까. 그날 밤, 맞아서 울던 나를 안고 엄마는 나보다 더 크게 울었었다. 미안하다면서.
우리가 그 집을 떠나 ‘아파트’라는 곳에 살게 된 게 그로부터 1년 후의 일이다. 주인집 아들과 우리 오빠가 한바탕 싸운 것이 원인이었는데, 그 이유가 서로 자기 집이라고 우겼다는 것. 그때도 엄마는 울었을 것 같다. 체벌하다 보면 본래의 문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폭발하는 감정을 아이에게 다 쏟아버리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는 아이를 붙잡고 울 만큼의 죄책감에 시달리고 만다. 나는 그래서, 내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물론 때리고 싶을 때도 있다. 마냥 떼쓰는 아이의 등짝을 철썩, 한 대 쳐주고 싶을 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때린다고 나아질까?', '때려봤자 내 죄책감만 더 커지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때문.
나는 아이에게‘숫자세기’를 하지 않는다.
"얼른 이리 와. 엄마가 셋까지 셀 거야. 하나, 둘! ㅅ"
우리 엄마는 이렇게 숫자를 셌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엄마는 숫자를 셋까지 세고서도 오지 않는 나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곤 했다. 나는 그냥, 숫자가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겐 숫자를 세지 않고 '기다려줄게.'라 한다.
"네가 왔으면 좋겠어. 엄마는 여기서 기다릴 거야."
기다리다가도 너무 길어지면 안되니까 시계를 보며 여기까지 기다린다고 말한다. 글쎄 . . . 내 아이는
"기다려줄게." 가 싫어지려나? 그 건 모르겠다. 더 크면물어봐야지.
마지막으로 내 아이에게 하지 않는 건 ‘집에서 보자.’다. 내가 밖에서 떼를 쓰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마는 거기서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집에서 보자.’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면 나는 집에 갈 때까지 내 잘못을 잊고 있거나 속으로 '집에 가거나 말거나~' 라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집에 가까워지면 내 마음은 안절부절, 집이 무서워졌다. 아이가 밖에서 잘못을 저지르거나 떼를 쓸 때는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물론 거리 한복판이라면 약간 비껴진 길로 데려가서 아이의 잘못을 주의 시키는 것이 좋다.
우리 아이가 4살 때, 마트에서 카트를 타지도 않고 걷지도 않고 아빠도 아닌, 오로지 엄마에게 안겨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마트의 한 벤치에 앉아 왜 엄마가 안아줄 수 없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뒤틀린 마음을 꾸역꾸역 억누르면서 말이다. 결국 아이가 내 말 을 받아들이고 걷기로 하기까지 20분이 걸렸다. 엄마가 아이에게 한번 안 된다고 한 건 끝까지 안 되는 걸로 지켜주고, 어떤 것이 허용될 때는 다음에도 그만큼 허용이 되게 양육하는 것이 좋다. 엄마 아빠의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가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 안 된다고 했다가 귀찮아서 그냥 '에잇! 그냥 안고 가지 뭐.' 했다가는 '난 조금만 고집부리면 엄마가 다 해 줘.' 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친정엄마의 육아 방식을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지 스스로 반문해보자. 나는 그때 너무 싫었었던 일인데 내 아이라고 좋을 리가 있겠는가. 엄마 스스로 자신의 양육 태도가 어떤지 잘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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