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없습니다. 육아 철학 따윈.
아 이 를 낳 는 다 는 건 쉬 운 일 이 아 니 다 .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출산을 간접적으로라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뭐 그저 임신 10개월(군대 가는거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지 않은가) 배불렀다가 ‘예정일’이라는 날짜 그 즈음에 힘 몇 번 주면 쑥 하고 나오는 줄 안다. 그래 뭐 가끔은 그리 쉽게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어쩔 땐 조금 얄밉기도 하다. 아직도 나에게 출산이란, 엄마라는 이름 하나 받기 위해 목숨을 거는, 고귀한 행위이다. 태어나서 30년 동안 단 한번도 이와 맞먹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던 나는 진통하는 그 긴 시간 동안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만.신.창.이라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더 고통스러운 단어를 내가 알고 있었다면 아마 그 단어가 내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을 것이다.
첫 아이는 첫 아이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엄마들은 출산 전에 겁을 먹는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예전의 그 고통을 아니까 말이다. 임신을 알게 된 그 순간 기쁨도 잠시,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얼른 아이를 만나보고 싶으면서, 동시에 건강한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를 비롯한 수많은 걱정 속에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점점 다가오는 출산 예정일만큼이나 조바심도 걱정도 기쁨도 설레는 마음도 매일같이 커져만 간다. 짧다면 짧을 임신 출산 육아 3년(딱 3년까지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변화였다. 나는 몸도 마음도 생각도 변했다. 뚱뚱해졌고, 세상이 조금 더 두려워졌고, 말도 안 되는 일에도 ‘그래,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하루 별 탈 없이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고, 남들 자는 만큼 자보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 되기도 했다. 밖에서 자기아이 등을 후려치며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를 ‘조금’ 이해하기도 하고, 나를 이렇게나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세상에 쉬운 일 없다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나는 제일 어려웠다.
임신함과 동시에 엄마들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신체의 변화이다. 10개월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이 변화는, 임신 8~10개월쯤에 확 불어나긴 한다. 다른 집 아이는 임신되고 금방 10개월 채워서 어느새 100일떡까지 돌리고 있지만, 내가 겪어보는 그 10개월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그 긴 10개월 동안 내 마음은 언제나 불안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자 삶을 생존케 하는 매우 중요한 감정을 불안이라 했지만, 내 안의 그것은 봄눈 녹듯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임신한 순간부터 우리는 ‘엄마’가 된다. 배 속에 있는, 아직 꾸물거리기는커녕 콩알 만해 잘 보이지도 않는 태아에게 “안녕 아가, 엄마야.” 라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이내 받아들이고 폭풍입덧을 하며 커지는 불편함을 감내한다.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부터는 똑바로 누워 자지도 못해 옆으로 눕고, 방광이 있을 자리가 점점 좁아지면서 매일 밤 자다가도 들락날락, 화장실 가기 바쁘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때 손목을 짚으면 욱신거려 한동안 손목을 주무르고 있어야 하며,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 버겁다.
임신 5개월쯤 태동이 시작되면 이 또한 처음 느껴보는,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지만 심해지면 숨쉬기가 힘들 때도 있다. 좋아하던 커피를 마음껏 못 마셔 종일 머리가 아플 때도 있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광고를 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킨 적도 여러 번. 참는 것은 곧 일상이 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10개월 내내 지속하기에 겪어보면 상당히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친구는 임신 중 한쪽 귀가 잘 안 들렸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 다녀 봐도 별 이상은 없고 그냥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낫게 될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고(실제로 출산 후 귀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는 입덧과 몸이 무거운 것도 힘들었지만, 귀가 안 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산부를 보는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배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야.” 나 또한 이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임신 2개월 차부터 막달까지 내내 입덧하고 있었던 나는 어찌나 이 말이 듣기 싫던지. 입덧이 심해서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을 때라니! 그저 얼른 시간이 지나 남들처럼 한 번에 쑥-낳고 훌훌 가벼운 몸으로 산책로를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육아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한 줄로 요약한 말이라는 걸.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야~ 키워봐라. 그건 네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이상의, 이상이 될 것이니!” 라고 말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마 마음의 준비라도 더 하지 않았을까. 낳자마자 산책로를 뛰어다닐 거라는 미친 상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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