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랑 Jul 18. 2020

엄마와 옥수수

여름이 오면 엄마가 옥수수를 먹는 이유

어른들에게는 옥수수와 감자에 대한 일종의 향수가 있다고 한다. 음식이 귀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거라나  뭐라나. 그 얘기를 들은건 엄마의 단골 옥수수가게 에서였다. 찜통에서 금방 쩌낸 옥수수를 사기 위해 기다리다 한 아주머니와 스몰톡을 했던거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스몰톡은 어렵지 않지만 아직도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친구처럼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 목적이 끝나면 각자의 갈 길을 갈 수 있는지, 나 또한 어른이지만 '더' 어른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쿨하다.


내가 사는 동네의 역 근처 노점상에서는 여름마다 옥수수를 판다. 달달한 인공 첨가물을 넣는 것도 아닌데 늘 옥수수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두평 남짓의 공간은  문전성시다. 그리고 엄마는 4년째 그 가게의 단골 손님이다. 5천원에 네 개, 엄마가 사는 옥수수는 더도 덜도 말고 5천원 어치다. 여름 내내 일주일에 한 두번씩 옥수수를 사는 것, 무료하고 건조할 것이 분명한 엄마의 낙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여름이 찾아왔고 옥수수의 계절 또한 찾아왔다. 햇볕이 잘 드는 엄마의 방,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엄마는 tv 브라운관을 묵묵히 응시하며 옥수수를 먹는다. 그 표정이 비장하기까지 해서 가끔 귀엽기도 하다. 엄마는 맛있어서 옥수수를 먹는걸까? 아니면 살기위해 먹는걸까?


엄마가 여름이 다가오면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지는 무려 10년이 넘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던 9월이 다가오면 밥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엄마는 종종 내게 말했다. 10년 전의 여름이 떠오른다. 그 해는 비가 참 많이 내렸다. 아빠가 대수술을 하던 날이 특히 심했다. 병원 대기실의 돔 모양의 유리 천장에 사나운 빗방울이 야속하게 꽂혔다. 비가와서 아빠가 더 몸이 쑤시겠구나 싶었다.

아빠는 참 고통스럽게 갔다. 살아 남기위해 몸의 장기를 잘라냈지만 전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암세포가 간으로 옮겨가 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빠를 보며 난 참 많이 울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옥수수를 먹는걸까. 난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의 마음속에 아빠가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전 02화 백종원의 야심작 <막이오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