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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May 22. 2024

자살하는 식물과 꽃말.

시스투스 알비두스

가끔 뉴스나 신문을 보다보면 주변과의 다툼이나 불화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사건들이 가끔 보이는걸 보면 인외마경이라는 단어는 사실 어불성설이 아닌가싶습니다. 인내마경이라고 단어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극히 일부 고지능을 지닌 동물 몇종에서만 보여진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만, 식물도 자살 비슷한것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스투스 알비두스

다소 생소한 이름이죠. 유럽에서는 관상용 꽃으로 꽤나 유명한 식물이라고합니다. 이 식물이 정말 특이한점은 바로 그 아름다운 꽃과는 다른 성질머리때문입니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주변에 다른 꽃들이 빼곡히 들어차는 꼴을 보지못하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가냘프고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공존에 대한 개념이 부족합니다. 요즘 시대에서는 오히려 각광받을 수 있는 까칠한 매력일 수도 있을까요? 세상의 아름다운것들은 모두 깊은 결핍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백설공주 소설 속 미녀는 백설공주 하나뿐인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그녀를 질시한 새어머니 역시 빼어난 미인이었습니다. 거울이 인증한 세계관 내 두번째가는 미인이었죠. 그리스 신화속 여신들은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어딘가 한가지씩은 꼭 비틀려지고 왜곡되어진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시스투스라는 식물 역시 그 아름다움을 파멸로 몰고갈만한 결핍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변이 다른 꽃들로 빽빽히 채워지면 분노조절이 되지않기 시작합니다. 내부에서 휘발하는 기름을 뿜어내기 시작하죠. 남들을 태워버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꽃까지 모두 불태워버려야합니다만, 이 식물에게 주저함이란 없습니다.

이 식물이 가진 치명적인 이기심은 바로 자신의 몸부터 불태우기직전 하는 행동에 있습니다. 온몸에 불을 붙이기전, 불에 강한내성을 지닌 자신의 씨앗을 뱉어내는겁니다. '나'는 불태워지지만 새로운 '나'는 다시 이 곳에서 오연히 홀로 아름다움을 뽐낼것이란 믿음이 이 식물에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특이하고도 이기적이며 아름다운 식물에 대한 꽃말이 나라마다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스투스의 꽃말은 '인기'라고 하는데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타인의 관심을 끌기위한 그 무모함에 대한 예찬이 들어간 꽃말이라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붙여진 이 꽃말이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시스투스 알비두스.
'나는 내일죽겠지'

영어권에서도 꽃말은 비슷합니다. 임박한 죽음과 같은 뜻을 지닌 꽃입니다.

이 꽃은 이기적입니다만, 어느정도는 주어진 삶에 깊이 천착할 필요가 있는 우리 인간에게 약간의 깨달음을 주기도합니다. 어쨌든 이 식물은 자살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을 오롯이 죽이는것이 아닙니다. 불에 강한 또 다른 자신을 잉태하고 내보낸 다음에서야 불길을 뿜어내는것이 그 증거죠. 그 씨앗은 불에 타지않고 남아 다시 살아남습니다. 결국 이 식물은 자살하는 꽃이라고 알려져있지만, 다르게보면 홀로 살아남는법을 알고있는 식물입니다.

살다보면 저도 그렇고 우리 인간들은 가끔 중요한 사실을 한두가지 잊어버릴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할퀴고 진창에 빠트리고 불질러버려도, 잉태할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은 누구도 해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단한 마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견뎌내는 이 하루에 붙어있는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모든것입니다. 근심이 지나가고 나면 내 마음속 나 자신은 다시 그대로 서있습니다. 어떤 바람이 지나가더라도 마음속 품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의 심지는 꺼지지않습니다.

저에게 이 꽃에 대해 설명해주셨던 분은 자대배치를 기다리는 훈련병들에게 강연을 하던 상담사분이셨습니다. 자대를 향해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심란해하던 우리 신병들에게 해주셨던 마지막 말을 여기에 적겠습니다.

'시스투스라는 꽃을 불태울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시스투스 자신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시스투스는 다른 누가 불질러 해할 수 없습니다. 저 식물조차 무엇으로도 불태우지 못할 씨앗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해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들을 함부로 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면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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