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좋아하는 마음은 귀한 마음이다’라고 쓰다 보니 스스로 ‘이건 지적 허영심에 불과해’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게 움직이는 OTT 드라마, 유튜브 쇼츠가 대중의 전두엽을 건들어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시대에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쓰인 짧은 글 ‘시’는 얼마나 심심한 존재인가?
그러나 허영심이나마 시를 좋아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시가 얼마나 우리 삶의 진실을 엑기스처럼 담고 있는지를. 좋은 시가 잊히지 않고 계속 기억 속에서 말을 거는 건 그 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 낭송은 ‘종이 위에 박힌 검은 글자’인 시를 생생하게 살려 주고 또 스스로 낭송할 때에는 그 의미가 피부 속으로 스며 들어가도록 한다. 그런데 시 낭송이라는 세계가 따로 견고하게 존재한다는 건 장편 소설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읽고 알았다.
브런치 작가인 이숲오 작가님이 쓰신 장편 소설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이제 막 ‘시 낭송’의 세계로 들어선 소년이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노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가는 내용이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라 읽으면서 놀라면서도 재미있었다.
작가는 책 속에서 시 낭송을 이렇게 정의한다. ‘낭송을 할 때에는 낭송하는 이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네. 시어들은 이야기들을 걸치는 옷걸이 같은 거지. 바닥에 흩트려진 옷들을 가지런히 걸어 온전하게 보이게 하는 도구가 된다네... 내 이야기니 누가 봐도 진정성이 우연의 조각들을 진실의 필연이라 여기고 그들도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내 만끽하는 거지.’
즉 낭송자는 시를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싣고 청중은 낭송하는 시를 들으면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내고 즐기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 외에도 시 낭송을 하는 것에 대한 깊은 철학적 얘기들이 소설 속에 많이 들어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아 가는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소설은 그런 ‘시낭송’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인의 입을 통해 훨씬 더 많이 우리의 인생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전달한다.
‘개연성이라는 틀에 갇히면 안 된다네. 세상은 결코 필연이 당연한 듯 각각의 연결 고리가 견고할 것 같아 보이나, 그렇지가 않아.’
‘낭송으로부터 나를 구해내기 위해 평생을 고민했어. 나의 존재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삶을 잘 사는 것처럼 힘겨웠지. 어쩌면 한 편의 시를 읊듯이 살아낸다면 결코 실패한 삶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 속에 나온 이런 지혜들은 작가의 고민이 얼마나 깊고 통찰력이 큰 가를 보여준다. 소설이 ‘시낭송’에 대한 얘기를 빌어 우리 삶의 일반적인 지혜와 의미를 전해 주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에 못지 아니 그보다 더 큰 감동 포인트는 소설이 시적인 문장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작가 자신이 시를 써서 그런지 소설의 문장들이 시적인 표현과 관찰력, 그리고 감수성으로 이루어졌다. 스토리형 글을 쓰는 데만 익숙해져 있어 시적인 문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부러운 점이다.
시적인 문장으로 소설을 써서 유명한 이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한강 작가이다. 시적인 문장을 쓰려면 오랜 기간 고민과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 문장은 독자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듯한 기능을 한다. 이 숲오 작가의 이런 능력이 부러워지는 지점이다.
인생의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얻고 싶고 그리고 시적인 문장으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유튜브 쇼츠로 뇌의 전두엽만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깊은 힘을 얻고 싶다면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좋은 힘의 제공소가 될 것이다.
* 원래는 이숲오 작가님의 12번째 북토크에 참석하려고 예약을 했는데 급한 사정이 생겨 참석하기 못해 이렇게 리뷰만이라도 올립니다. 오늘 크리스마스이기도 한데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즐거운 성탄! 행복한 연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