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 4
나는 식당에서 반찬 리필을 요청할 때 이모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편이다. ‘이모님, 어묵 반찬 조금 더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이런 나의 어법에 문제 제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물었는데 ‘안 되겠는데요’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냥 ‘더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맞다라는 의견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상대에게 결정권을 주는 어법이 상대의 행동을 이끌어 내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주실 수 있을까요?’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행동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을 상대에게 부여하는 표현이다. 즉, ‘나의 부탁을 들어줄 권리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고 결정해서 행동해주세요’인 것이다. 이런 표현으로 요청을 받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 들까? ‘나에게 결정권을 주었으니 내가 마음대로 정하면 되겠군’ 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고객이 나에게 결정권을 주네. 더 잘해야겠군’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나의 경험상 지금까지 이렇게 말했을 때, ‘싫은데요’라고 말한 이모님은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결정권을 부여하는 어법이 실제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 판단할 수 있다.
나의 경험에서 확인된 방식, 결정권을 상대에게 주는 방식은 상대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자극하는 심리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나의 경험과 비슷한 맥락의 연구가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요청할 때 동사보다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그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도와주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도우미가 되어주세요’라고 요청할 때 실제로 도움받을 가능성이 3분의 1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투표를 독려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투표합시다’보다는 ‘투표자가 되어주세요’라고 요청할 때 투표율이 15% 늘었다고 한다. 이런 표현은 행동을 정체성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정체성을 부여받을 경우 그에 맞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지는 법이다. 자신의 행동을 바람직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본성적으로 자율성을 갈구한다. 자율성이 부여된 경우와 그렇지 않 경우, 일에 대한 만족도, 조직만족도, 몰입정도 등 모든 것이 달라진다. 당연히 자율성이 부여되었을 때 만족도와 몰입정도가 크다. ‘해주실 수 있을까요?’는 단순히 결정권만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대우하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수행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부탁이고 요청이지만 그것을 들어줄 결정권을 요청받은 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큰 거래나 설득이 필요한 경우는 좀 더 정교한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대화에서는 이 방법의 효과가 크다. 그리고 이 자율성은 정체성과도 연결되어있다. 스스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느낄 때, 일에서의 성과와 만족감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원리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도 단순한 '할 일'이 아닌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회사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A부장은 이렇게 업무지시를 한다. ‘최대리님, 이번주까지 사업계획서를 파워포인트 1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주세요.’라고. 반면, B부장은 이렇게 업무지시를 한다. ‘최대리님, 이번 주 금요일 5시에 대표님께 지금 진행중인 사업계획 관련한 보고가 필요합니다. 그 때 잘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 세심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두 업무지시 방법 중에서 어느 방법이 좋은 결과물을 얻는데 더 효과적일까? 최대리의 업무역량, 부장의 관리역량 등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업무지시에 사용된 표현만 놓고 보면 B부장의 업무지시 방식이 더 좋은 결과물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의 목표 ‘이번 주말까지 보고서 작성’이 아닌 일의 목적 ‘대표님께 보고필요’를 전달하여 업무를 부여받은 최대리로 하여금 더 능동적인 수행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요청할 때 구체적인 목표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일의 목적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일을 요청받은 자가 자율적으로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의 목적이 전달될 경우 수행자의 정체성도 확실해진다. 보고서 작성자가 아니라 사업보고를 함께 준비하는 자로의 정체성이 부여되어 수행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일의 목적이 전달되지 않을 경우 지시자가 업무지시를 한 목적과 다른 방향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왜’ 해야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만 신경쓰느라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업무를 지시할 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 일을 요청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번거럽다. 구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 전달이 되어야지 자율성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목적을 알리지 않고 목표만 부여하면 달리는 방향과 속도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적당히 과한 설명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더라도, 소통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설명을 조금 더 덧붙여보자.
‘이모님, 이 집 어묵이 정말 맛있네요. 제가 벌써 다 먹었어요. 혹시 조금만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