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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리얼리스트 Sep 05. 2021

계절은 어김없이

9월이다.

무수한 약속들이 잊히고, 깨어지고,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계절은 어김없다.

요 며칠 푸른 하늘이 가을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여름을 잘 이겨냈다는 위로처럼 나를 반긴다.

어느 틈엔가 마구 들뜨던 나의 자아는 한결 차분해지고, 겸손해졌다.


아버지 병환으로 오래 연락 없이 만나지도 못했던 삼촌을 세 번 만났는데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그렇듯이

어제 본 듯 스스럼이 없다. 삼촌은 할아버지가 되셨고, 호리호리하고, 크게만 느껴졌는데 살짝 굽으시고, 살도 붙었고, 착한 눈빛을 지닌, 약간 쓸쓸해 보이는 노인이 되셨다.

나만 만나면 좋으셔서 둘이 병원에서 만나 밥을 먹고 나면, 반주를 하거나, 차를 마시고 전철역에 모셔드린다.


어제는 점심을 무려 네 시간 먹었다. 마침 손님이 없어서 망정이지 눈치가 보였을 법도 하다. 나도 집에서 작업할 게 있었는데 그냥 헤어질 수가 없어서, 밥 먹고, 막걸리 마시고, 백종원 샐러드 빵 하나씩 사들고 헤어졌다.


아름답지만 눈물겹다. 푸른 하늘이 그렇고,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 그렇고, 세월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나는 갑자기 내 감성의 반 이상이 슬픔이 돼버렸다.

슬픔이 반이상 덮어지자, 이제 슬픔이 담담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에만 낯설고, 생경하지, 뭔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이윽고 담담해진다.

담담을 넘어 허망해지기도 하지만, 허망함은 허망함대로 받아들이자.


오늘도 맑게 개었다.

계절은 어김없다, 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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