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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레카 Oct 22. 2023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이제는..

저는 엄청난 사람입니다. 

자신감이 넘치거든요. 

자존감도 높습니다. 

세상에 제가 이루지 못할 일은 없었습니다.  

초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만 세웠거든요.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추켜세웁니다. 

주변인들이라 해 봤자 가족 위주이긴 해요. 

딱히 실패해서 좌절감을 맛볼 일도 별로 없었고요. 

실패는 무조건 좋은 경험으로만 생각하는 뻔뻔함도 갖췄었어요. 

얼마나 교만 하나면요. 

직장 일로 제주도에서 몇 년 지낸 적이 있어요.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다녀와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한라산 정상에서 제주 전역을 내려다보기 힘듭니다.

시야가 확보되는 날이 몇 없거든요. 

성판악 코스로 몇 시간째 눈 길을 올랐어요.

너무  맑아서 쨍 한 날 있죠?

오르는 내내 너무 날씨가 좋은 겁니다. 

와 역시 내가 날을 잘 골랐군.

아니나 다를까.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그 능선에서부터 였어요.

서귀포가 한눈에 다 보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게요. 

한라산 정상에서는 대부분 엄청 바람이 많이 불어요.

몸이 휘청거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서귀포가 다 내려다보이는 그 걸 보면서요.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게요?

이 제주를 놀라게 해야겠다. 

내가. 

이제 이  제주 섬을 시작으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넘어 이 대한민국을, 세계 정상에 서야지.

지금 보이는 것처럼 내 발아래 둘 것이다. 

우하하하 하하.

아니 이 얼마나 우스워요.

뭐 풍광이 좋아서 등산의 감동이 벅차서 그럴 수 있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데 진짜 저런 생각을 했다니까요?

그렇다고 뭘로 놀라게 할 건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 이후에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해 본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그렇게 마음만 먹고 끝. 

지금은 저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자고 자대(自高自大) 한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 기억 자체가 창피해요. 

네, 포부가 크고 꿈이 크고  소망이 있는 건 좋아요.

그런데 내실 없이 꿈만  큰 건 위험해요. 

아무것도 없이 어디 감히. 

고백하자면 저는 2-3년후 도망치듯 제주를 떠났습니다. 

왜냐하면요. 

제 감정을 잘 감당하지 못했거든요. 

수신(修身) 도 안되는 사람이었어요. 

슬픈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제주에서 뭘 제대로 시작해볼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나는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걸 알기도 해요.

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있다는 것도요.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살 것인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살 것인가. 

항상 위에서 내려보고 싶었어요. 

20대 때의 저는 참 건방진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에베레스트산이

K2가

칸첸중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백두산도 없는 데서

한라산도 안 올라보고

동네  뒷산이 뭐예요.

겨우 언덕 위에 올라가서는 저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내가 아는 게 다인 줄 알고.

얼마나 더 큰 세상이 있고 

나보다 더더더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고

내가 사실은 찻잔보다 작은 우물에 사는 지도 모르고요.

지금 전 30대를 이제 잘 마무리해야 하는 때입니다. 

제 서른의 이립은 좀 늦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불혹 전에 어렴풋이 저만의 뚜렷한 신념을 세워가고 있는 것을 요즘 들어 느낍니다. 

우연한 기회에 100층 높이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발아래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태평양도요. 

그 광경을 보는 제 마음은 이제 한라산에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더 낮아져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더 열심으로 노력하고

더 겸허해져야겠다 생각했어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무게를 느끼고 

내 생각이 흘러갈 곳을 내다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높은 곳에 가니 갑자기 한라산에서의 철없는 다짐들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원래 모르면 용감하잖아요.

아마도  그때는 몰라서  그랬나 봐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이제는 함부로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똑같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을 통해서 

그때와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아마 한라산에 다시 오르면 그 때와는 다른 더 나은 다짐을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또 하나 깨닫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조레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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