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
손님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누가 저런 말을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또 가게 주인이 왕인 것도 싫어요.
서로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으니 존중하면 좋을 텐데요.
손님은 필요한 물건을, 서비스를 받으니 감사하고.
파는 사람은 돈을 버니 감사하고요.
그냥 적당히 서로가 친절하면 좋겠어요.
가끔 가는 카페가 있어요.
흔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이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에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갑니다.
방문하는 주로 시간대는 일정하진 않고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선 기분이 좋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눈을 맞추고 인사해 주거든요.
앳된 청년이 아주 싹싹합니다.
요즘은 주문을 대부분 키오스크로 합니다.
이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부탁드려요~"
주문과 동시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러고는 금세 향기로운 음료를 건네줍니다.
"음료 나왔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또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보통은 이 모든 과정이 5분 안에 끝나요.
그렇다고 학습된 AI처럼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고 영혼 없는 말투가 아니에요.
목소리 톤과 표정과 몸짓에서 친절이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습니다.
아침에 가도, 오후에 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가끔 다른 사람이 있을 때가 있어요.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묘한 정적이 흐릅니다.
밝게 인사하는 그 청년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그럴 땐 괜히 아쉽습니다.
그도 그럴게요.
가게에 들어가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카운터 너머에 분명 사람이 있는데도요.
아래에 둔 시선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향해있어요.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주문 들어가는 소리,
영수증 출력되는 소리만 나요.
다른 손님이 있는 경우가 아니고는
그냥 음료만 내어줍니다.
카운터에 음료 올려두고는 가든지 말든지 신경 안 씁니다.
어쩌다 뭘 묻거나 말을 걸면요.
무안할 정도로 퉁명스럽습니다.
늘 화가 나 있는 목소리랄까요.
전 그냥 눈치껏 내가 주문한 음료를 받아 가면 돼요.
그래서 보통 서로 아무 말 없이 음료만 주고받아요.
늘 그렇습니다.
어떤 날만 유독 그러는 건 아니에요.
저도 나가면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안 해요.
되돌아오는 소리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먼저 인사해야지 합니다.
근데 마음속으로만 해요.
그냥 그 분위기 있잖아요.
아무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고요함....
그래서 그 사람만 있으면 다른 가게를 갑니다.
저한테만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딱히 제게 잘못한 것도 없고요.
원래 성격이 그런 분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제가 뭘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겨우 몇 천 원짜리 커피 한 잔 사면서 뭘 따지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청년이 있으면 커피를 사고 싶은데
그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게 됩니다.
저는 당연히 그 청년이 가게 주인인 줄 알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그 청년과 그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게 됐어요.
아.. 그런데 청년은 아르바이트였습니다.
퉁명한 그 사람이 사장이더라고요.
제가 사회경험을 해보니까요.
"친절"이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친절한 건 DNA에 새겨져서 나오나 봐.
사장이라고 다 친절한 것도 아니고 알바라고 다 불친절한 것도 아니야. 교육으로도 한계가 있어.
친절한 건 무조건 타고나야 하는 거야.
사람들이랑 함께 일해보니까요.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있어요.
반대로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분위기를 늘 활기차게 띄우는 사람이 있고
나타나기만 해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의 태도가 아우라가 많은 것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저도 저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요.
"친절"은 타고나는 걸까요?
아니면 배우는 걸까요?
제 생각처럼 아예 DNA에 새겨져서 나오는 게 맞을까요?
오늘도 그 가게를 지나쳤습니다.
덕분에 저는 친절이라는 것을 주제로 글을 쓰고요.
요즘 그 청년이 자주 안 보입니다.
사장님만 계시면 아마 그 가게를 지나치기만 하겠죠.
그러다가 아예 가지 않을 것 같아요.
손님이 왕일 필요는 없습니다.
주인이 왕 될 필요도 없고요.
저는 서로가 필요한 걸 주고받는 행위에서 적당한 예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하게 친절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게 느낄 만큼의 교감도 없는 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서비스업에서 점점 사람이 사라지고 있어요.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죠.
오늘 아침 출근길엔 제법 짙은 가을이 느껴졌어요.
뺨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거든요.
그래서 문득 사람과 사람이 쳐다보며 인사하며 나누는
그 작은 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직원들이 오기 전에 청소하려 해요.
지난 금요일에 못했거든요.
청소가 끝나면 웃는 얼굴로 직원들을 환영해야겠어요.
오늘은 친절하고 싶은 조레카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