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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07. 2024

무주를 다시 생각한다

― 날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무주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나는 최근에 무주와 부산에 다녀왔다. 그리고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서 나의 삶에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나는 이제 오직 시인으로만 살아가기로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 나는 우선 윤동주 시인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살아있는 시인과 함께 동행하면 더욱 좋겠지만 우선 윤동주 시인부터 또 다시 만나 나 자신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 윤동주 시인을 선택했다. 


물론 다른 좋은 시인들도 많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윤동주 시인은 생전에 등단을 하지 못한 시인이다. 겨우 죽어서 비로소 가족과 친구들과 정지용 시인에 의해 발탁이 되어 뒤늦게 시인이 된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 자신이 끊임없이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습작에 전념했던 문학청년이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과 조국 그리고 이상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시를 쓰고자 했던 시인이다. 따라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를 쓰려는 나에게 잘 맞는 시인이라는 생각에서 윤동주 시인과 먼저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도 나와 함께 동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우선 윤동주 시인이 남긴 시와 산문의 텍스트를 공유하려고 한다. 일종의 교과서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제공하는 교재가 작고 희미한 등대가 되면 좋겠다. 작은 등불이라도 함께 들고 함께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의 저작권법에 의하면 사후 70년 이후에는 그 효력이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윤동주 시인이 우리들에게 남겨준 시와 산문을 등불 삼아서 윤동주 시인이 가고자 했던 의미 있는 세상으로 우리 함께 갈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강산 6월 14일 오후 9:47 무주에서


나는 어제 무주에 왔다. 제주에서 청주공항으로 왔다. 청주공항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무주로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버스를 이용했다. 무주터미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무주덕유산리조트로 왔다. 회사 방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한다.


나는 나의 수술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하여 1987년에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했다. 3년만 근무하면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입사했다. 3년만 돈을 벌고 문학에 전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획했던 3년이 37년이 되고 말았다. 이제 6월 30일이면 그 생활이 끝이 난다. 7월 1일부터는 드디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2년의 임금피크 기간이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될 것이다.


나의 생활은 어쩌면 투망 속 물고기였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위하여 무주에 왔다. 나는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덕유산에 왔다. 그때까지 나는 높은 산을 오를 수 없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였다. 그래서 나는 계단을 잘 오를 수 없었고 산에도 올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서 덕유산 정상에 올랐다. 장수면장 아들 홍이표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고추밭을 보며 <길이 있는 풍경> 시를 쓰고 친구들과 함께 덕유산에 올랐다. 덕유산 정상에서 본 그날의 구름을 잊을 수 없다.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양떼구름을 잊을 수 없다.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 양떼구름을 잊을 수 없다.


이번에 나는 무주에 대하여 조금 알았다. 무주의 덕유산과 반딧불이와 최북미술관과 김환태문학관을 알았다. 무주(茂朱)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조선 태종 14년(1414), 전국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옛 신라와 백제의 영역이었던 무풍과 주계를 합병하면서 두 고을의 첫 글자를 따서 무주(茂朱)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쓰는 고을주(州) 대신 붉을 주(朱)를 쓴다.


내일 갈 예정인 구천동, 33경 중의 제1경이 바로 나제통문(羅濟通門)이란다. 이 이름 역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굴(屈)이 생기기 전에 석모산(石帽山)에는 무풍면과 설천면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 개발 등을 위해 굴을 뚫었다고 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한다.


이 굴(窟)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의 언어와 풍습이 서로 다른데 옛 신라 지역인 동쪽(무풍면)은 경상권 방언을 쓰고 풍습도 경상권을 따르며, 옛 백제 지역인 서쪽(설천면)은 전라권 방언을 쓰며 전라권과 충청권의 생활 풍습을 따른다고 한다.


나는 이곳 아름다운 무주에서 새로운 나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투망 위로 튀어 오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투망이 나를 완전히 가두기 전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강산 2017년 6월 13일  ·             


30년 전 나는 제주도에 처음 왔었다

오규원 교수님이랑 수학여행 왔었다

한라산 어디쯤에서 저 사진을 찍었다

자유롭게 풀어놓은 소들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저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20년 전 나는 제주도에 정착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강산 2017년 6월 13일 11 경운기

강산 2017년 6월 13일  10 밥상

강산 6월 13일 오전 7:06  오랜만에 나간다

강산 6월 13일 오후 6:57  하늘에서 생각한다

강산 6월 14일 오전 3:48  투망 속 물고기처럼

강산 6월 14일 오전 11:10  무주 덕유산 리조트

강산 6월 14일 오후 9:47  무주에서

강산 6월 16일 오전 6:58   나제통문(羅濟通門)

강산 6월 16일 오후 4:22  성심당 

강산 6월 17일 오전 4:34  으능정이 

강산 6월 17일 오전 4:57  으능정이 

홍일표 6월 17일 오전 5:25  · 

『문학사상』 『시인수첩』이 휴간하였다. 그동안 여러 문제가 있긴 했지만 50년 넘게 이어 온 『문학사상』의 휴간은 뜻밖이다.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이 빛바랜 탓인지 휴간 소식에도 문단은 의외로 조용하다. 문청 시절 즐겨 봤고, 등단 후에는 여러 차례 발표 기회를 가졌던 잡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니 많이 아쉽다. 이상의 초상을 표지로 했던 『문학사상』 창간호에 대한 기억과 잡지 초창기에 매호 실렸던 어어령 평론가의 권두언을 시처럼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https://youtu.be/LnyGz_QALH4?si=0I45XZ_wt5lrDXE-

https://youtu.be/bn7flqrWTsI?si=fpbYw14kHcj8nozz

https://youtu.be/zxa4xmJtO3s?si=wge-BbbsNU_Y1dFx

https://youtu.be/1fnrsO-Zo2I?si=jRV3m0Q2-fUjSXdM


카카오맵 (kakao.com)



::: The Best Choice - Deogyusanresort ::: (mdysres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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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덕유산 리조트 : 네이버 검색 (naver.com)

길 찾기 - 네이버 지도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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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2WXBIKbbZI?si=DXxtz5GlSSopkdrT

https://youtu.be/DR76fHbgNpE?si=i49xS-T5hzmGeE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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