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닦는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어둠을 닦는다
나는 오직 바다 거울만을 닦고 있다
나는 오직 하늘 거울만을 닦고 있다
거울 속으로 잃어버린 고향이 온다
연어의 종착역에서 기적소리 운다
나의 고향 왕산에도 제각이 있었다
나의 고향 마을에도 당골이 있었다
우리 집 뒤에는 쌍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 쌍과부집 뒤에 당골네집이 있었다
당골네와 어머니는 친했고 그의 아들
까다형과 나도 친했으나 문득 죽었다
우리집 앞에는 스님 가족들이 살았다
도림사에 사는 스님 가족들이 살았다
내 친구 김주동이는 스님의 손자였다
주동이 아버지는 이장 손에 죽었었다
주동이집 앞에는 옥자 친구가 살았다
청각 장애 부모님은 교회에서 살았다
옥자네집 옆에 종길이네 집이 있었다
자식교육 가장 헌신한 부모님 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닦는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어둠을 닦는다
― 태백산맥 1-1. 일출 없는 새벽
5
"저그 저...... 술도가집, 아니, 양조장댁 정 사장님......"
젊은 여자는 달빛 아래 드러난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방문 밖으로 내밀며 더듬거렸다. 정하섭은 그녀가 얼결에 술도가집이라고 한 말을 양조장댁으로 고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나 신경쓸 문제였다.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술도가집 또는 술도가 주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호칭을 딱 진저리치며 싫어했다. 자기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아버지는 양조장 정 사장님이란 호칭을 존칭이라고 믿고 있었다. 정하섭은 일찍부터 그런 아버지를 마땅찮아했다.
"이대로 실례해야겠소."
정하섭은 구둣발인 채로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얼른 옆으로 비켜서며 저고리섶을 여몄다. 방문이 닫힌 방안에는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게 진한 어둠이 들어찼다. 정하섭은 그때서야 그녀의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소?"
"......"
"같은 말 두 번씩 하게 하지 마시오."
정하섭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역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두버 잘 안 뵈시는 모양인디, 저 아랫목에 앓아누셨구만요."
그녀의 음성은 잠겨들고 있었다. 정하섭은 비로소 방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까 문구멍을 통해서 들여다보았을 때 어렴풋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누워 있는 윤곽을 확인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정하섭은 그녀의 어머니가 중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동안 그렇게 무반응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태인 모양인데, 어디가 편찮으시오?"
정하섭은 풍악소리에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추는 무당 월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중풍을 맞었구만요."
"중풍을......? 병세는 어느 정도요?"
정하섭은 무당으로서 월녀가 진정 안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귀신춤을 추는 무서운 무당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년시절부터 보아온 어머니보다 잘생긴 여자이기도 했었다.
"사지를 못 쓰고 말도 못허시구만요."
그녀의 기어드는 것 같은 말끝을 따라 가느다란 한숨이 흩어졌다.
"얼마나 됐소?"
"한 서너 달......"
정하섭은 더 물을 말이 없었다. 치료는 어떻게 하느냐, 차도는 있느냐 하는 등속의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이 아닌 입장에서는 필요한 물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해야 할 다급한 일에 쫓기고 있는 상태였다.
"좀 앉읍시다" 하며 정하섭은 먼저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을 더듬어 담뱃갑을 찾았다.
"성냥 좀 주시오."
그녀는 앉으려던 엉거주춤한 자세를 고쳐 윗목으로 옮겨갔다. 어렵지 않게 성냥곽을 찾아 정하섭의 앞에 밀어놓았다. 그 동안 그의 눈도 어둠에 익어 있었다. 그는 몸을 잔뜩 웅크려가지고 성냥을 그어댔다. 그런데도 불빛은 소스라칠 만큼 밝았다. 그는 재빨리 담뱃불을 붙이고 성냥불을 불어 껐다. 그가 담뱃불을 붙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얼굴은 불빛에 남김없이 노출되었고 소화는 그의 당황하는 몸짓에서 그가 왜 밤중에 외딴 자기 집을 찾아들었는지 깨달았다.
정하섭은 두번 세번 거푸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흡연욕구가 굶주림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절실함이라는 것을 그는 비로소 경험하고 있었다. 폐부 깊숙이 빨려들어간 담배연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의식이 아른아른해지고 팔다리의 긴장이 풀려나가는 그 아련하고도 아늑한 편안함.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머리를 벽에 기대고 눈을 내리감은 채 밤새껏 시달려온 초조와 긴장으로부터 놓여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잠시 망각 속에 버려두고 있었다.
"내가 왜 이 밤중에 여길 찾아들었는지 알겠소?"
정하섭은 담배연기로 나른하게 풀려 있는 감정을 애써 거머잡으며 물었다. 그는 비로소 미명 속에서나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처녀무당 소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
소화는 충분히 짐작은 하고 있으면서도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화살처럼 박혀오는 그의 눈길을 피해 고개만 좀더 떨구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요?"
"......"
"또 같은 말 두 번씩 하게 할 거요?"
"예에, 쪼금 알고 있구만요."
그녀는 앉음새를 고치며 얼른 대답했다.
"그게 뭐요. 말해보시오."
"긍께...... 좌, 좌익......"
그녀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가 죄익활동에 미쳐 있다는 것을 읍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아버지 정 사장은 속을 있는 대로 끓이고 살았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정 사장에게 그의 존재는 쳐낼 수도 물리칠 수도 없는 액운이고 횡액이었다.경찰들 앞에서 꼼짝없이 죄인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정 사장으로서는 제일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다. 경찰서장과 맞먹기에도 뭔가 손해보는 것 같은 지체였는데 아들놈이 좌익에 빠져들고부터는 말단 순경들에게까지 굽신거리는 신세가 된 것이 정 사장으로서는 그렇게 분하고 원통할 수가 없었다.
전남 곡성군 삼기면 지명 유래 중에 원등리(院嶝里)가 있다.
원등 1구
의동(義洞) 마을
원등리(院嶝里)는 조선시대 역원제(驛院制) 시행 당시 옛 관리들이 공무로 출장나갈 때 숙식을 해결하던 여관 즉 원(院)이 소재하던 곳이라 하여 ‘원(院)’자와, 그 원(院)이 비등(飛嶝)이라 부르는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여 ‘언덕배기 등(嶝)’자를 취해, ‘원등리(院嶝里)’라 불렀다 전한다.
* 여기에서 나는 비등에 있었다는 여관의 위치를 알고 싶어 졌다. 지도에서 살펴보면 '비등들'과 '비등제'가 나온다. 혹시 그 부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부근에 현재 삼기면사무소가 있다. 혹시 표지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 꼭 한 번 알아보아야겠다.
* 박종길 의견
어렸을 적
주만이 집 옆이
버스 정거장이었고
그 옆이 도가집
그리고 버스정거장 맞은편
6구 쪽에 여관(식당 겸)이 있었지
도가집도 있었고
여관도 있었고
버스 정거장도 있었던 곳이니
조선시대에도 그 부근에 여관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정해 봄
* 나의 답변
그렇것지 잉
초등학교 바로 붙어서
최서임이네 문방구와 세탁소(?)부터
성냥깐
빵집
차부
양복점
기름집....,
도겟집
식당
여관
연쇄점
다방까지
그래도 나름 번화가였으니까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다
마지막 큰 한 방
어머니가 나를 쓰러뜨렸다
나에게 가장 슬픈 글이 있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글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
이 글을 쓰셨을 것이다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서
수건을 입에 물고
어금니가 다 으스러지도록
앙다물고 끝까지 쓰셨을 것이다
나에게 남겨진 유산은
오직 이 유서 한 장
나는 끝내 쓰러졌고
길을 가던 붉은 여우 한 마리
나를 물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나는 그렇게 이어도까지 떠내려와서
삼십 년을 더 살았다
오직 하늘만 보며 살았다
오직 바다만 보며 살았다
위리안치 유배지에서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 한다
스스로 유배자가 되었던 나는
스스로 유배지를 떠나려고 한다
*
세상에서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어머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아마도 병원을 몰래 빠져나오셔서
고향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그 농약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에 쓰셨을 것입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수건을 입에 물고
치아가 다 으스러지도록 입을 앙다물고 쓰신 듯합니다
자식인 저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