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상담
어제 대체 몇 시까지 깨있었던 건지 모르지만, 주방 바닥에서 일어나니 아침 여섯시 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계처럼 출근시간에 깨는구나. 바닥에 아이패드가 보였다.
“하아…”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팀장님께 오늘 몸이 안좋아 연차를 쓰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아이패드를 꺼내 보았다. 지금 아내가 있는 곳은 새벽 네 시 반. 그곳 시간으로 상대와 새벽 한시 반부터 세시까지 영상통화를 했구나. 그리고 얼굴 봐서 좋았다며 자러 간다는 내용과 하트 이모티콘.
휴대폰을 꺼내 둘의 대화내용을 사진 찍다가 너무 길어서 동영상 촬영으로 바꾸고 대화내용을 내리면서 전부 녹화했다.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더러워도 너무 더럽다.
네이버에 접속하여 가장 가까운 이혼 전문 변호사를 몇 군데 찾아보고 그 중에 승소사례가 많은 몇 군데를 추렸다. 소독 물티슈를 꺼내 캐리어를 닦고, 출장 다녀온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렸다. 몸이라도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뭐라도 해야했다. 시리얼과 우유를 꺼내 먹고 반쯤 먹었을 때 화장실에 가서 게워냈다.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 식탁으로 가서 커피는 괜찮겠지 하며 커피를 타 의자에 앉으니 소파가 보였다.
‘저 소파 바꾼지 1년도 안됐는데..‘
다시 물티슈를 찾아 소파로 향했다. 그 남자가 어디에 앉았고 어떻게 여기서 관계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더러워진 것은 빨리 치워야 했다. 체감상 한 시간을 넘게 소파를 닦은 것 같다. 너무 많이 닦아서 천들이 다 젖어버렸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그냥 버릴까 고민했다.
시간을 보니 아홉시.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던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했고 다행히 오전에 시간이 비어 있다하여 열 시 반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이고 평소에도 지나다니는 거리였는데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거워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려 도착했다.
[XXX 법률 사무소]
입구에 붙어있는 간판을 한참 쳐다보았다. 내가 살면서 이런 곳에 올 줄이야.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리셉션의 직원이 오늘 열 시 반에 상담 예약하신 분이 맞냐며 이름을 물어보았고 맞다고 대답하자 상담실로 안내했다. "커피랑 녹차 중에 무엇을 드릴까요?" 라는 말에 뭘 마실지 고민하는 내가 우스워 실소가 나왔다.
“그냥 차가운 물로 부탁 드려요.”
물을 마시니까 조금 시원해졌다. 곧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변호사분이 들어오셔서 자기 소개를 간략히 하시고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셨다.
“아내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말을 뱉자마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가 알게 된 경위와 카카오톡 내용을 촬영한 것들을 보여드렸다.
“증거가 확실하네요. 음.. 이혼을 하실 건가요?”
이상하게 섣불리 “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지? 당연히 이혼 해야지. 어떻게 이걸 알고도 이혼을 안 하면 바보아니야?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변호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괜찮아요. 보통 상담 오시는 분들의 상황은 크게 두 경우예요. 이혼을 확고히 결심하고 찾아오시거나, 배신감에 이혼하겠다고 바로 달려오시는 분들. 의뢰인 분의 경우는 후자인데, 마음 아프시겠지만 잠깐이라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지금 아내가 해외에 있다 하셨으니 돌아오시면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리고 마음이 결정되면 그 때 다시 뵙는 걸로 하시죠.”
그런가? 그게 맞나? 나는 지금 홧김에 온 건가? 혼란스러웠지만 적어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최소한 아내랑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했다. 변호사는 그 외에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고 이후 리셉션에서 상담비를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오늘따라 집이 낯설다. 이따가 저녁 시간에 아이랑 영상통화를 하고, 아내랑 잠깐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서 손을 닦는데
“카톡. 카톡.”
아, 아이패드가 아직 켜있구나. 역시나 그 남자한테서 온 카톡이다.
[에어비앤비 예약한닷! 청소비 안 아깝게 자기랑 난리(?)칠거야.]
하하.. ㅅI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