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대화
그날 밤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고 엄마랑 이야기하게 바꿔달라고 해서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우습게도 보자 마자 분노와 서운함이 올라와 눈물이 흘렀다.
“아 왜.”
남편이 갑자기 울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만도 할 텐데 차가운 반응에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것이 느껴졌다.
“재밌어?”
“여행? 어 재밌어.”
“아니 지금 사는 게 재밌냐고.”
아내의 인생이 확 찡그려졌다.
“왜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래? 아무튼 애랑 통화했으니까 됐지? 끊는다 씻을 거야.”
아내는 정말로 통화를 바로 종료해버렸다. 조금이라도 찔린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씻는다는 아내는 아이패드로 보니 아이는 외할머니랑 자러 갔고 아내는 그 남자와 보이스톡을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둘의 통화는 끝났다. 그리고 조금 뒤, 아이패드에서 로그아웃이 되었다.
서운함 보다 분노가 커졌다. 내 마음 속 무게 추는 점점 이혼으로 넘어가면서도, 여행에서 돌아와 직접 얘기하면 잘못했다고 사과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놓지 못했다. 이 바보 같은 마음은 거의 일 년간 이어졌다.
컴퓨터를 켜서 이혼에 대해 검색했다. 크게 세 가지 타입의 이혼이 있었다.
1) 협의 이혼:
부부가 재산, 양육권에 대해서 합의를 하면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일정 기간의 숙려일을 가지고 그 후에도 이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라면 이혼하는 방식. 차후 어떤 사유로 이혼했는지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른다. 이혼 완료 후 혼인관계 증명서를 떼면 날짜 뒤에 (협의 이혼) 이라고 표기된다고 한다.
2) 조정 이혼:
양 측이 이혼 자체에는 합의했으나 재산, 양육권에 합의가 안될 경우 변호사를 선임하여 서로 요구사항에 대해서 변호사들이 대리인으로서 의뢰인의 요구를 받아 상대측 변호사와 조정하고 이혼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숙려기간이 없어 가장 빠르게 끝나는 방식이고 변호사들이 제출한 조정안에 판사가 최종 승인만 하는 방식으로 내용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있다. 혼인관계 증명서에는 날짜 뒤에 재판상 이혼 (조정) 이라고 나온다.
3) 재판 이혼:
상대와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겠다 싶을 때 (불륜, 도박, 학대, 혹은 그 외의 이유들) 진행하는 방식으로 지금 내 입장에 대입해보면 나는 원고, 아내는 피고. 재산, 양육권에 대해 양측에서 진술하고 판사가 최종 결정을 하며 혼인 관계 증명서에는 날짜 뒤에 재판상 이혼이 나온다.
어차피 이혼한다면 난 합의나 조정이혼은 할 생각이 없었다. 이혼 후 아내가 지금의 남자가 아닌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 성격상 분명 내 탓에 이혼을 했다고 할 것이고 협의이혼이나 조정이혼을 해버리면 상대 남자는 그 말을 믿을 테니까.
물론 조정이혼에도 제일 상단에 “ㅇㅇ의 외도 사유로 이혼한다.”라는 문구를 삽입요청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게 상대 변호사와 조정이 될 지 모르겠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걸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소송을 해서 이혼하면 상대 남자가 혼인관계 증명서를 요청했을 때, 재판상 이혼인 것을 확인하고 판결문을 아내에게 보여달라 하면 아내가 바람핀 것을 알겠지. 그래도 그들이 결혼한다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난 최소한의 주홍글씨를 새기고자 소송 이혼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돌아왔을 때, 내가 카톡 내용을 통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밝히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 재판일까지 나는 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아이의 양육권이 나에게 올 지, 아내에게 갈 지 모르지만 아내에게 갔을 때를 대비해 이 사람의 모든 걸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는 약한 마음과 혹시라도 항소하면 그 때 확실한 증거로 제출하려는 악한 마음으로 끝까지 남겨두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아내의 민 낯을 제대로 봤으니.
아내가 여행가기 전 강남에서 고객사와 미팅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종로에 간 적이 있고 나는 그 내용을 친구를 통해 알았다. 아내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 거기부터 가보자.
마침 다음 날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고 아내와 아이는 다다음날 돌아오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 날이 최적이었다. 회식은 1차만 참여하고 일이 있어 먼저 간다 말씀드리고 종로 3가로 향했다. CCTV를 보여달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서 뭐라고 하지?
도착한 고깃집은 영업 중인 시간이어서 편의점으로 발을 돌렸다.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사서 다시 가게 앞으로 가고, 가계의 폐점시간까지 기다렸다. 모든 손님이 나가고 직원들이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매니저를 찾았다. 평소 웨이팅이 있는 가게고 크지 않았다. 친구에게 들어 뻔히 어디 앉았는지도 알았다.
“해당 날짜 CCTV를 보고 싶으시다구요? 왜요? 혹시 물건 잃어버리신 게 있나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접수된 게 없는데요.”
상대는 방어적으로 나왔고 당연했다. 어떡하지. 거듭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사실을 밝혔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여기서 술을 마셨는데 부인하고 있다. 이혼할 거라서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죄송합니다. 법원의 명령서를 보여주시거나 경찰분을 대동하지 않는다면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긴 누가 ‘네 보여드릴게요.’ 하겠는가. 예상했지만 당연한 결과였고 “아닙니다. 가게 입장 이해합니다.” 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차라리 자백을 받자.
다다음날 아내가 돌아왔고 드디어 퇴근하고 아내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는 큰 일을 보고 있었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며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아빠 이거 싱가폴 응가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싱가폴에서 먹은 게 응가로 나왔으니까 싱가폴 응가지~ 아빠 처음보지?”
“하하하 그러네 싱가폴 응가네!”
아이의 생각은 참 재밌구나. 이 밝은 아이를 두고 이혼을 해야 한다니.. 다시 이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 들어갔다.
“오늘 애 내가 재울게. 그리고 재우고 나서 이야기 좀 하자.”
“이야기? 할 말 없는데?”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그래 지금은 참자. 아이도 앞에 있고 아내가 사과할 지도 모르니까.
“내가 있으니까 해.”
“하.. 알았어.”
그렇게 아이를 재우고 나오자 뚱한 표정의 아내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뭔 데 할 말이.”
식탁에서 이야기하자고 하여 둘 다 앉았고 나는 술을 꺼냈다. 도저히 맨 정신에 대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준비한 대로, 지금은 쓰지 않는 구형 폰을 옆의 의자 위에 슬쩍 올려두고 내 휴대폰은 식탁에 두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이다. 아내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보며 기도했다.
‘제발 솔직하게 말해줘. 용서를 빌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