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자백
“솔직하게 말할게. 자기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다 말할 게.”
아내는 잠시 숨을 골랐고 나는 그녀가 정말 진실되게 다 말할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대체 원하는 결론이 무엇일까.
“대림에서 잔 거는, 에어비앤비. 자기 말대로야. 그냥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진 거지. 직장 동기의 시모상, 거기에 남편도 없고 애도 처갓집에서 자기로 했고. 그러니까 그냥 그런 나쁜 마음이 들더라고. 나쁜 마음이라고 하는 게 진짜..”
“그 다음은? 상황은 알겠고 그 다음 행동.”
“그래서 거기 대림 에어비앤비에서 잔 거야.”
“누구랑?”
아내는 한숨을 쉬며 “얘기 안하고 싶은데..” 라고 작게 이야기했다.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아.”
“왜 그 사람을 사랑해서?”
이걸 물어본 이유는 차라리 사랑한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충격일 것 같았다.
“사랑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런 느낌이야. 내가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너무 깊은 관계인 것처럼 내 스스로 받아들일 까봐. 그냥 나는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거든 타이밍?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너무 심적으로 외롭고 고독하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된 부분을 걔가 채워준다고 착각한 게 이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누군지 아는데 그 이름 말하기가 어려워? 그게? 진짜 웃기네.”
“말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말을 하는 게 싫다는 거야”
성관계에 대해 물어봤지만 아내는 시인하지 않았다. 둘의 카톡 내용을 통해 와인 마시고 한 번, 다음 날 일어나서 한 번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아는데도 역시 아내는 말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한 다는 것은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지금까지의 대화 만으로도 충분히 이혼 사유임을 알텐데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내가 알던 아내가 맞는 건가. 어차피 계속 부인하는데 이 이야기를 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이혼을 결심한 건 다음 주제니까.
“자,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돌아왔어. 돌아와서 보니까 집이 깨끗하더라. 빨래들은 다 드레스룸에 들어가있고. 매트가 소파 앞에 깔려있네?”
“소파 앞에 깔려 있어서 신기한 거야? 그거 가지고 지금 의심 하는 거야? 그 남자가 여기까지 왔을까봐?”
알고 말하는 거다. 역시 시작부터 의심하냐며 방어하는 구나. 지금부터는 나도 어느 정도 꾸며내어 말해야 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입을 열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 캐리어 풀면서 정리를 했지. 밤에 술 한 잔 하기엔 너무 지친 날이고 주방에 위스키 초콜릿 있잖아. 그거나 한두 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까놨던 게 없네? 자기가 이 초콜릿을 찾아 먹는 스타일이 아닌데 왜 먹었지? 아니 먹을 수 있지. 그런데 한 반 이상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없어.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거야.”
“뭐가?”
“한국시간 금요일 밤, 당신 다음날 아침 출국인데 내가 애 보려고 홈캠 켤 때마다 당신은 안방에 없더라고? 아이 혼자 자고 있고. 태국 시간으로 한 시가 넘어도 자기가 방에 없어. 거실 홈캠은 꺼져있고. 난 이미 종로에서의 상황을 알고 있고 자기가 장례식 간 날 처갓집에 가지 않았 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의심이 증가됐지. 아 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뭘까 하다가, 아 맞다 아파트 CCTV있지?”
아내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CCTV가 ‘띵-N층입니다. 난 옆집 남자 얼굴을 알잖아? 덩치도 알고. 진짜 여기까지 말하기 싫어가지고 그냥 너가 말하길 바랐는데…”
말하면서도 한숨이 계속 나왔다. 네 입으로 진실을 말하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자기야. 아까 내가 너한테 ㅇㅇ(아이 이름) 좋아하냐고 물어봤잖아. 너는 당연하다 했고. 그런데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떻게 엄마가 돼서 그럴 수가 있어?”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게. 잘못했네.”
왜 3인칭처럼 이야기하는 거야? 지금이면 울고빌고 해야 정상 아니야? 화가 솟구쳤다.
“애가 안방에서 자고 있는데 그럴 수가 있어? 남자가 집에 들어와? 아침에 나가? 우리 애는 병’신이야? 우리 이 집 계약하고 리모델링하고 신혼가구 들이고 신혼 생활 보내고 아이 갖고 아이 태어나고 돌잔치 여기서 하고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 살아가는 터전으로 살고 있는데 가족으로! 어떻게 이 집에, 어떻게 이 집에 그 남자를 불러들여? 어떻게 그 친구가 여기 들어올 수 있어? 말해봐.”
아내는 또 침묵했다. 답답함에 앞에 있던 위스키를 한 입에 털어 버리고 새로 따랐다. 그것도 마시고 또 술을 따를 때 아내가 입을 열었다.
“입이 두 개여도 할 말이 없어.”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아이가 눈을 비비면서 나왔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화는 중단이 되었지만 난 오늘 남기고자 하는 증거를 다 수집했으니 더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아내가 속시원하게 자백했다면 몰랐을까 하나하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만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을 꼴을 보고 있자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내는 아이랑 잔다고 하고 들어갔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러 나갔다.
담배를 피는 건지 한숨을 쉬기 위해 담배를 잡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안방 홈캠을 켜보니 역시 아내는 자지 않고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안 봐도 다음 수순은 상대 남자에게 알려주는 거겠지. 발각됐다고.
아내와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그 날은 거실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 암묵적으로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거실에서 아이와 셋이 놀고 있는데 아내의 카톡이 울렸고 휴대폰을 바닥에 둔 상태라 내용이 보였다. 역시 상간남에게서 온 카톡이다.
[진짜 막 나가고 싶네. 전화하자고 할 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