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거짓말
“왜,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아내는 약간 화가 난 상태다. 하긴 여행갔다와서 피곤해서 자고 싶을 텐데 남편이 할 말 있다고 앉혔으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 가 아니라, 그 남자와 한참 카톡할 시간인데 방해해서 화가 난거겠지.
“일단 그 날부터 이야기하자. 당신 코엑스에 세미나 간 날. 그거 끝나고 회식하고 온다면서 왜 종로에 갔어?”
“뭔 상관? 자기 상식에는 이해가 안가서 궁금한 거야?”
“팀장님이랑 지하철 타고 갔다며. 내 상식이라 기에는 거래처 사람들 포함하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왜 거기까지 움직여? 코엑스 근처에 신논현, 강남, 역삼, 선릉 먹을 곳들이 투성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 사람들의 맥락을 모르니까.”
말을 안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지, 어차피 거짓말인데 무슨 맥락이 있다는 거지?
“뭔 데 그게?”
“미팅한 연구원들이 둘인데, 굳이 거기 가자고 하더라구 거기 사수가. 그 사람은 차를 가져왔는데 자기 술 안마셔도 되니까 마음 편하게 다른데 가서 먹자고 해서 차 타고 갔어. 알고 보니 자기 부사수랑 데이트하고 싶었던 거지. 그러니까 이 사람 둘은 뭔가 썸이 있는 거야.”
뻔뻔하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나도 지금 나이가 서른 중반이라, 난 인간관계가 좁긴 한데 알게 모르게 많이 알거든 결국 사회생활 하고 하다 보면? 네가 말했으면 해서 그냥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하는거야. 팀장 없었잖아.”
아내는 잠깐 멈칫하더니 먼저 그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 있었다니까. 왜 팀장이 없었다고 하는데 계속!? 팀장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결론적으로 뭐야. 그 남자랑 상관이 있다는 거야?”
나왔다 아내의 버릇. 아내는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을 때 화를 낸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중요해?”
“지난 주부터 걔 얘기를 하길래. 걔가 의심이 되서 그런 거야 아니면 뭔가 자기가 내 뒷조사라도 하고 뭔가 확인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자기가 원하는 얘기가 뭔지 명확하게 얘기하면 내가 그냥 얘기할게.”
“그래, 거기 맛있지 그 가게?”
“어딘지 알아?
“익선동 간 거 아니야? ㅇㅇㅇ 가게.”
“맞아. 어떻게 알았는데? 이야기해봐, 되게 신나 보여 자기.”
자꾸 거짓말을 하려는 아내의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까 서론을 깔았잖아.”
“”그 가게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있었어? 누구? 누군데? 고깃집에 누가 있었는데?”
“너네 원형테이블 자리에 앉았잖아.”
“자기 친구가 봤대?”
이제는 아내도 웃었다. 어이가 없네.
“후련하니?”
“아니 뜨끔해서.”
“걸리니까 후련하냐고.”
“후련하지 않아. 사실 오늘 약간 예상했어. 오늘 뭔가 ‘자기가 그냥 이런 얘기를 하는 거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뭔가 거짓말을 해서,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그걸 떠나서 거짓말을 해가지고 얘기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었지, 내 입장에서는. 자기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역시 빌지 않는구나..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누구랑 있었던 건지도 그럼 대충 알겠네. 예상하는 거겠네”
“어. 그 남자. 이제 걸렸고, 어떻게 하고 싶어?”
“자기한테 물어보고 싶어.”
이혼을 결심하며 하루 종일 오늘 할 대화의 내용에 대해 시뮬레이션 했다. 당연히 아내가 부인하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 예상했고 스스로 고백할 수 있게 유도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나을 수도 있지만,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미안하다고 빌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빌었을 때 어떻게 할 지는 시뮬레이션 하지 않았다. 그 때는 끝을 내든 용서하든 정말 마음 가는 대로 해야겠다 생각했으니.
“그래 니들 둘이 거기서 술을 마실 수 있어. 무슨 이유가 됐든 그냥 식사할 수 있다고 쳐. 직장 동기 시모상 말야. 난 자기가 그 날 가서 도와주고 애도 봐주고 하다가 조금 늦게 올 수 있다고 생각은 했어.”
“친척분들이 지방에서 올라왔거든 그래서, 숙소를 잡아줬어.”
“본인이 지방에 출장 간 것도 아니고, 장례식장도 같은 서울이고, 아니는 처갓집에서 자기로 했고 남편은 해외 출장 가있고. ‘어떻게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 수가 있지?’ 라고 생각했을거야. 솔직히 그날은 몰랐어. 자기가 집 왔다해서 통화하는데 유독 들리는 소리가 조용했지만 몰랐지. 그런데 다음 날 자기가 두 장의 사진을 보냈는데 느낌이 쎄해.”
“다음 날 아니야. 그날 밤에 보냈지.”
저런 디테일이 왜 중요할까 너한테는. 어떻게든 말꼬리 하나라도 잡고 본질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일까.
“아, 그 날은 몰랐어. 다음 날 보는데 느낌이 쎄했어. 장모님이 애 데리고 병원 갔다 오시면 나한테 사진 이렇게 보냈는데? 다음 날 자기한테 물어보니까 한 사진은 장모님이 보낸 거고 다른 사진은 본인이 찍은거래. 자기랑 장모님 둘 다 삼성을 쓰는데, 모델이 다르잖아?”
“사진이 흐릿하니 뭐니 하면서 원본을 보내라 한 거는 그냥 헛소리였네?”
“그냥 띄운 거야 이상해서.”
“나 넘어간 거네?”
“어. 이미 익선동에서 둘이 데이트한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확신했지 사진은 전부 장모님이 찍으신 거구나.”
“하아..”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응 둘 다 제대로 봤네. 맞아 두 번 다 거짓말한 거야.”
“어디서 잤어?
“대림”
“누구랑 잤어?”
“같이 간 건 맞아.”
“누구랑 잤냐고.”
“잤냐는 게, 같은 공간에 있었냐는 걸 물어보는 거지?”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게 보였다.
“일단 들어간 것부터 얘기해보자. 누구랑 들어갔어? 좀 더 대답하기 쉬운 것부터 물어 볼게. 대림 어디서 잤어? 이건 대답하기 쉽잖아. 대림에 그 사람 집이있다, 모텔을 갔다 여관에 갔다 아니면 방 빌려주는 그런데 갔다. 그냥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
아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늘 자기랑 대화를 하면 솔직히 걸릴 것 같다는 느낌 80%? 20%는 아닐 수도 있겠다. 그리고 걸렸다고 해도 끝까지 잡아 뗄까? 아니라고 할까? 그 생각도 했어.”
“얘기해.”
“이혼할 거야? 그것부터 알고 싶어서.”
“내가 물어본 거 먼저 말 해. 그만 간 봐.”
“간 보는 거 아니야.”
“이미 충분히 나는, 다 알면서도 참고 아까 너한테 내가 다시 널 예뻐하고 예전 마음처럼 사랑하면 너도 그 마음 다시 시작할 수 있겠냐고 물어 봤었잖아. 난 속이 문드러져 가면서 참았어. 그만 나 기만하고 얘기해줘.”
아내가 망설이며 물었다.
“핸드폰 녹음하고 있어?”
식탁 위에 두었던 휴대폰을 들어 보여주었다. 당연히 녹음은 켜 있지 않았다. 옆의 의자에 올려둔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자기가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다 말할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