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나는 소란스러운 게 싫다. 그래서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는 곳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달리 항상 반대로 발길이 향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에 있어도 항상 굴곡점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한 번의 이직과 세 번의 오픈 그리고 세 번의 지역이동은 그 범주에 해당되는 것 같다. 정적이고 그리 변화와 새로운 출발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겪고 반복을 했다. 시간을 버티다 보니 그래도 일정 부분은 익숙해지는 것 같은 것들도 있다.
드물지만 그러한 형태의 사건들 중 하나는 오픈인 것 같다. 서울에서 교육을 마치고 오랜 공백이 짙게 머금고 있는 공간인 집과 마주하였다. 고요하고 적막하지만 그래도 반갑고 나의 향기가 아련하게 느껴졌다. 별것 없는 짐들을 풀고 진정한 출발선에 설 준비를 한다. 오픈이라는 것을 본의 아니게 세 번이나 해보았다. 뭔가 설레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 상당히 고민과 스트레스가 오는 양가적인 형태의 시간이다.
하얀 백지에서 그린다는 점에서 의욕이 충만함을 마주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서는 이런저런 의견의 충돌과 고된 육체노동이 한숨이 나온다. 일단 오픈 전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내부의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고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변수에 의한 딜레이로 인해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러기에 좁은 공간에서 동선이 서로 꼬이기도 부딪히기도 하면서 짜증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더불어 여름의 강렬한 이미지를 녹일 장치가 없었다. 내부 공사가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에어컨도 이에 포함되었다. 오픈과정에서 매장에 입고될 책들이 약 4만 권 정도가 되었다. 박스 형태로 포장되어 작업차량을 통해 매일 실려왔다. 하나의 박스에 약 20권 정도의 책이 담겨오고 생각보다 무게가 있어 상하차를 하는 과정에서 체력소모도 있었다. 거기다 건물의 엘리베이터의 사용에도 제한이 있어 운반에 힘이 들었다.
그렇게 받아온 박스들은 해체하여 분류를 나누어 정리하여 서가에 진열해야 했다. 이후에 그것들을 PDA라는 스캔을 하는 기기를 통해 찍어주어야 한다. 이 작업이 이루어져야 검색 PC에서 조회가 되기에 누락되지 않게 잘 스캔해야 한다. 다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이 일련의 과정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였다. 마냥 고시원을 벗어났고 내 매장이 생겼다는 기분에 빠져 신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일그러진 얼굴들에 오픈을 어서 기다리게 된다.
중고서점에서 경험한 것들이 있어 나에게 느껴지는 피로감은 덜했지만 나 또한 오픈이 처음이라 긴장감이 들었다. 모든 출발이 중요하다는 것들은 여러 이들로부터 듣기도 했고 삶에서 느꼈기에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까만 먼지에 콜록거리면서 때가 묻고 땀들이 삐질 삐질 났지만 괜찮았다. 나는 완성된 기성품만을 보고 그 속에서 일해왔는데 그 과정이 하나하나 겪으며 마주하니 커다란 믿음이 생겨났다. 나는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나의 시간은 빛날 거라는 것들이 가슴에 박혔다.
막연하게 흩어져있던 퍼즐 피스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가니 얼추 그림의 형태가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내가 알고 있던 매장이라는 정의에 맞아떨어지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타이트하게 짜인 일정 속에 늦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가졌지만 그런 불안을 가진 나를 한심하게 비웃듯 보란 듯 오픈날은 바뀌지 않고 찾아왔다. 개시 1시간 전 유니폼을 입고 완성된 공간에 누락된 것은 없는지 이리저리 훎어본다. 재깍재깍 시계 추가 흐르고 첫 오픈이 이루어졌다.
고객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이리저리 공간들을 감상한다. 그들에게 이곳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면서 좋은 첫인상이었으면 했다. 어느새 직원보다 고객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시점에 뭔가 희열이 찾아왔다. 교육과정부터 오픈 작업까지 일련에 내 뜻 하지 않은 일들을 망각하게 되었고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의 이 과정을 해냈다는 것에 보람이 느껴졌다. 긴장을 하며 이리저리 보낸 시간들이 흘러 기대에 충족한 성적은 아니지만 마감을 하였다. 사실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은 그리 없었음에 다들 얼굴들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아마도 한마음으로 이 공간의 새 출발이 잘되기를 바랐기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집중을 하였던 것 같다. 정산을 마무리하고 쳐다본 동료들의 표정에는 안도와 함께 기쁨의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적어도 이 순간 뭔가 개인적인 관계의 굴레를 벗어나 끈끈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오픈은 참 힘들고 괴롭다. 그래서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한다고 말을 내뱉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맞이하면 나는 불타오르고 열정적이게 변한다. 그러기에 나는 보기 드물게도 새로운 것들 중 투덜거리며 아니라지만 좋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