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을 찾아라
지난 한 주가량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더욱 연약해진 나이기에 아픔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잡힌 발목에 무력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병원이나 약에 의탁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이 통증은 애매하다. 엄청나게 나를 괴롭히면서 불편하게 만드는 정도는 아니다. 마치 나를 놀리듯 적절하게 아픔의 농도를 조절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임에도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다.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에도 써보고자 한다. 지난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볼 이야기들을 고심해 본다. 문득 아픔의 순간을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에 유사한 파편의 흔적이 끌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어있던 먼지조각들을 훌훌 불어버리고 열어보고자 한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순간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맛이다.
글을 쓰면서 지난 것들을 쓰다 보니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사건들을 떠올렸고 우선적으로 작성하였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아차 순서의 흐름을 놓치고 간 것들이 꽤나 있다. 이번에는 이야기할 것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점은 이직을 하기 전 직장에서였다. 약간의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나에게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부점장의 신혼여행을 갔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앞서도 썼던 에피소드들 속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당히 평화로웠다. 인력에 공백에 돌아가는 로테이션 및 업무의 분담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다들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인상을 찌부리기 도보 다는 웃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사건 사고도 없이 이어져갔는데 딱 하나의 순간이 오점으로 일어났었다. 하필 그곳에 내가 있었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출근을 하고 업무를 보면서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적당히 고객들이 매장에 차지해 있었고 돌아가는 업무의 물레방아도 유기적으로 가동되었다. 그런데 이런 잔잔한 물결을 깨뜨리는 순간이 예기치핞게 치고 들어왔다. 당시 나는 카운터에서 고객들이 가지고 온 도서들을 매입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웅성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스탭에게 잠시 카운터를 맡기고 소리의 근원지로 향해가 보았다. 성인 남자가 쓰러져있었고 머리와 얼굴 사이로 피가 고여있었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이지 파악해지기 전에 일단 쓰러진 고객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였다. 괜찮으신지 물어보았는데 가까이 가니 알코올향이 코끝을 찔렀다. 반응이 없어 스탭을 불러 고객을 일으켜 사무실로 데리고 가려 시도했다.
하나 둘 신호와 함께 힘을 주어 부축을 하였다. 사무실로 한발 한발 다다랐을쯤 의식이 희미했던 남성이 정신을 차리면서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상황을 파악하였다. 다시 한번 고객에게 괜찮으신지 물어보니 다리에 힘을 주면서 정신을 차렸다. 본인의 몸상태가 크게 이상이 없다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에 고인 피가 전혀 괜찮은 모습이 아니었기에 스탭에게 사무실로 잠시 데리고 가 앉아서 휴식을 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이 있는지 파악하였다. 근처에 있던 손님들과 스태프들이 완벽히 모든 순간을 본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이야기를 하였다. 비틀비틀 거리는 모습을 보았고 평대형 매대에서 도서를 보다가 갑자기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못 가누는 모습이었다고 하였다. 일이 커짐에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멍했다.
아직 출근 전이었던 선임매니저에게 연락을 하였고 다친 고객의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다. 본인도 이러한 상황을 처음이라 일단 잠시 기다려주면 확인해 보고 연락 주겠다 하였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무실에서 나온 다친 고객이 괜찮다며 돌아간다고 한 것이었다. 왠지 이대로 보내는 것은 아니고 상태가 육안상으로 보기에도 아닌 것 같아 붙잡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내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할 방법을 공유받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객을 붙잡고 있는 것이 불편했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다 땀이 지속적으로 흘러내렸다. 다시 연락을 해야 할까 아님 그냥 보내는 게 나은 건가 고민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이 두통을 주었다. 다행히 선임매니저의 공유가 그리 뒤늦지 않게 도착하였다. 일단 회사에서 들어가 있는 상해보험이 있기에 사후처리를 진행하면 되니 고객을 데리고 병원을 가기를 지시하였다.
인근 가장 가까운 병원을 휴대폰으로 검색한 뒤 고객을 데리고 매장을 나섰다. 택시를 잡고 일단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였다. 5분 정도 공백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다 병원 앞에 도착하였다. 응글실에 가서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머리에 피가 났기에 혹여나 크게 몸에 피해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초조한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매장에서 일어난 상황이기에 걱정이 들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일단 진단은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단순한 찰과상 외에는 몸에 이상은 안보였다. 일단 진료비를 계산하였고 고객을 부축하며 나왔다. 여전히 술냄새가 코를 찌르는 게 느껴졌다. 횡설수설하지만 괜찮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일단 고객에게 내 연락처를 주고 차후 이상이 있음 언제든 연락을 하여라고 하였다. 택시를 타는 곳으로 가서 배웅을 해드리고 쌓여있던 긴장감이 풀렸다.
매장으로 돌아와 사고상황을 CCTV로 확인하였다. 목격자들의 말처럼 매장에서 비틀비틀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평대형 매대 쪽으로 가는 순간 스텝이 꼬여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피가 흘러내린 모습이 보였다. 고객에게 술냄새가 난 것을 보면 아마 음주로 인한 사고가 아닌가 싶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여 정리하여 메일로 보고하였다.
처음이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나름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객도 병원에서 큰 부상이 없다고 진단하였기에 다행이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인제 사후처리인 보험처리 상황에 대한 부분을 기다렸다. 메일로 보고하였지만 재차 다시 상황에 대해 나에게 확인하였다. 그러면서 뒤에 나온 이야기는 조금 불쾌하였다. 나는 일단 과실이 누구에 있는 것을 떠나 사람이 다친 것에 책임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위에서 나온 소리들은 고객이 딴 소리하지 못할 증거를 채집해라 술 취한 모습인 거 같다는 것을 목격자들에게 증거를 받아놓아라 등등의 지시를 하였다.
물론 과실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술에 취했는 것 같다는 보고에 일어난 결과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활요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매대에 모서리가 넘어지면 다치기 십상인 부분도 있고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근데 그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상대방의 과실을 부각하려 함이 씁쓸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 힘도 없었고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도 없었다. 매장으로 돌아와 잠시 업무를 보다 잠깐 외부에 나갔다 오겠다한뒤 밖으로 나왔다.
인근에 위치한 다이소에 가서 모서리 보호대를 사 왔다. 매장으로 다시 돌아와 평대 매대에 모든 모서리에 부착하였다. 왠지 나라도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지 않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다행히도 고객에게 연락은 없었다.평온한 일상을 깼던 사고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회사의 일처리 방식에 실망감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일을 하다 다쳐도 나의 과실을 찾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대로 다치지 말자라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