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에서 구조된 다섯 개 중 ‘힘찬’의 입양처 이동 날이었다. 이동 전에 피터, 숯댕 돌봄을 마쳐야 해서 부랴부랴 움직인 아침.
청량리행 지하철에서 기절했고 깨고 나니 이상했다. 종점인 청량리역에서 내리지 못했다. 청소 노동자분이 곧 있으면 다시 청량리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요즘은 계속 너울 위에서 휩쓸리는 기분이다.
나는 배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옆레인에서 일으키는 물보라로 입이나 코로 물이 들어온다. 내가 아무리 물을 마시지 않으려 발버둥을 쳐도, 양옆에서 일으키는 물보라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천장만 바라보면서, 물이 입과 코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며 간다. 일렁이는 물이 꼴깍꼴깍 침범한다.
자는 숯댕을 처음 봤다. 죽은 건 아니었다. 그냥 깊이 잠이 든 것이었다.
돌봄은 늘 죽음 아니면 실종이라는 끝이 있다. 하나 둘 그렇게. 죽어있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먹어둔다.
한 밤 중 도살장 트럭에서 굴러 떨어진 돼지를 발견한 이가 있었다. 그는 핫팩과 담요로 겨울밤 돼지 곁을 지켰다. 구조할 이가 올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불고기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에 어떤 불편함이 있었을 텐데, 그걸 치우고 돌본 그가 궁금했고, 돼지가 걱정됐다.
돼지가 갈 수 있는 곳은 국내에 몇 곳 없다. 그가 개였다면 가능성은 더 다양해질 것이고, 인간이었다면 간단해진다. 119를 부르면 된다. 병원비가 있든 없든 나중일이다.
살아있는 집돼지가 ‘유실물’처럼 길에 놓여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기적이 일어났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마 누구도 못했을 것이다. 동자연 블로그에 따르면, “감염 위험을 고려해” 죽임 당했으니까.
그 돼지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이소에 가서 물건을 계속 담았다. 가장 쉬운 일은 돈을 쓰는 일이니까. 별로 필요도 없는 물건을 담고 또 담았다. 오만 얼마가 나왔다. 다이소에서 오만 원이라니. 돈도 없으면서. 사 온 물건을 우르르 쏟아 포장을 뜯었다.
배영을 할 때, 차라리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물을 덜 먹는다. 괜히 나아가겠다고 팔을 돌리면 내가 일으킨 물보라에 내가 되려 물을 먹는다. 그냥 둥둥. 가만히 떠있기만 하면 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