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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Sep 25. 2021

죽기 전 까지는 살아야 한다.

마늘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병동 A.

나는 이곳에 며칠 전 들어왔다.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치료가 돼서 격리시설, 혹은 병동을 나가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점점 상태가 좋지 않아 져 더 고위 진료 시설로 이송이 되었다, 지금 온 곳은 대학 종합병원의 한 병동, 아마 이다음에 내가 다시 어딘가로 가게 된다면 그건 집 아니면 중환자실이 될 것이다. 저녁에 이곳에 도착한 나는 무척 힘들었다. 이유는 그간 머물렀던 격리시설의 좋지 않던 환경과 식욕부진 정도랄까. 나는 이전 격리시설에서 심신이 무척 힘들었고 그래서 이 병동에 도착하자마자 조금도 생각할 것 없이 내 자리이다 싶은 곳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머리는 무척 어지러웠고 간호사가 하는 말도 하나도 안 들어왔다. 병동에 대한 브리핑도 하고 앞으로의 절차, 씨씨티비가 있으니 옷은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체온과 혈압, 엑스레이 등을 잴 것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그 또한 당시에는 꿈같은 기억일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는데, 어디선가.

"마스크 써야지. 우리 병동에서는 무조건 마스크 써야 해."

사실 나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내 침대에 누워버렸었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랴부랴 근처에 보이는 마스크를 잡아서 일단 썼다.

"마스크를 써야 해요. 우리 병동에서는 다름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돼요."

맞는 말이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공공시설에서, 특히나 이런 병원에서는 더욱더 지켜져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켜져야한다. 과연 누가 이런 옳은 말을 했을지 궁금해서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기운이 허락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바로 잠이 든 채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도 전날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병원이, 병동 주는 안정감 같은 거랄까, 특유의 그런 느낌이 있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아직 몸에 열도 있고 기침도 심하게 하고 해서 샤워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가볍게 씻은 뒤에 깨끗한 옷으로 함복을 했다.

"그렇지, 씻어야지. 깨끗하게 씻어야지 빨리 낫는다구."

어제와 같은 목소리다. 우리 병동에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환자가 있다. 하지만 약 하루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나는 이 아저씨의 목소리밖에 못 들었다. 슬쩍 목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나보다 겨우 열 살 남 짓 많을까 하는, 사람은 좋게 생겼지만 여기저기 간섭 잘할 것 같은 한 아저씨가 서서 허리를 양 손으로 잡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제 2주 차야. 병동에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건강해야 해. 음식은 남김없이 먹고, 작은 공간이지만 운동 꾸준히 해야 하고, 잘 씻어야 해."

나는 그의 짧은 듯 긴 한 마디에 바로 지쳐버렸고 그래서 바로 다시 침대에 누워 나의 상황에 대해 곱씹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잘 나와요. 뜨거운 물로 몸도 지지고 변기나 그 외 등등 화장실도 깨끗하게 소독하고 참 좋습니다. 해보세요."

그는 그의 앞 쪽 침대에 앉아있던 백발의 아저씨께 샤워를 극진하게 권했다. 내가 아까 흘깃 본 백발의 아저씨는 아마도 우리 병동에서는 가장 나이도 많아 보였고 그래서일까 몸도 안 좋아 보였다. 심지어 산소호흡기와 링거까지 끼고 돌아다니시는 분이었다. 왠지 활기찬 A 씨의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백발의 아저씨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셔 샤워를 시작했다. 이 삼 일간은 몸에 열도 있었다고 했고 기침도 심하셔서 그런지 오래간만에 샤워를 한다고 하는 백발 아저씨의 샤워하는 소리는 밖에서 듣기만 해도 개운한 느낌이었다.

"어허이, 시원하다. 시원하다. 시원해. 어허이."

그리고 이어서 조용필 씨의 걷고 싶다 라는 노래까지 불렀다.


"이런 날이 있지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내 곁에 있구나 네가 나의 빛이구나

멀리도 와주었다 나의 사랑아

고단한 나의 걸음이 언제나 돌아오던

고요함으로 사랑한다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아마 나뿐이 아니라 병동에 있는 모두가 그 아저씨의 기분이 좋아진 것에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우리의 감정을 아는 듯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어이, 시원하다. 정말 시원하다."

며 머리를 탈탈 털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간섭하기 좋아하는 A 씨는,

"것 봐요. 건강한 거, 건강해지는 거 별 거 없다니까요. 잘 씻고, 적당히 운동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웃고."

백발 아저씨는 자신의 상쾌한 상태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A 씨에게 가볍게 목례를 마쳤고 이후 병동에 있는 우리들 역시 자기 치유에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밤이 다가왔다. 취침시간, 불이 꺼지고 그렇게 한 시간 즈음 잠이 들기 시작했을까. 옆 백발 아저씨 침실에서는 기침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저씨는 호흡곤란이 왔는지 비상벨을 연신 눌러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간호사들이 들어왔고 수액의 양을 조절하고 아저씨를 안정시켰다. 잠시 후 담당의사도 들어왔고 들어온 의사는 아저씨를 면밀히 체크한 뒤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샤워하셨어요? 왜 하셨어요? 환자분은 면역력이 너무 떨어진 상태라 샤워를 하면 안돼요. 대무슨 생각으로 샤워를 하신 거예요? 빨리 상태가 나아져서 퇴원하고 싶지 않으신 건가요?"

백발의 아저씨는 누워서 그저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적막이 찢긴 밤은 모두에게 작은 상처 같은 것을 남기고 지나가버렸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상태가 좀 호전된 듯한 백발의 아저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방을 걷기도 하고 가볍게 스트레칭도 해 보였다. 전 날 샤워를 권했던 아저씨는 자신의 건강함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침대를 잡고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스쿼드도 정확한 자세로 20개씩 천천히 나누어하고 있었다. 얼마 전 PT를 시작한 나였지만 그의 정확 스쿼드 자세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단련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스쿼드를 할 때마다 종종 그의 엉덩이에서는 방귀가 새어 나왔다. 아니, 새어 나왔다기보다는 '나 좀 건강하니 봐주쇼.' 식의 뿡뿡 소리가 힘찬 방귀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방귀소리는 조금도 더럽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안 좋은 상황에서도 저런 건강한 방귀를 뀔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그가 부러웠는지 가장 최근에 병동에 온 한 젊은 친구도 그를 따라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스쿼트도 하기 시작했다,

"옳지. 젊은이들이 몸 아프다고 병상에만 누워 있으면 안된다구. 이렇게 도수체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가볍게 근력운동도 하고 해야지. 그래야 빨리 낫는거라구,"

빨라 낫는다. 빨리 나아야 한다. 사실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빨리 낫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켜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지만 오래 살만큼 사셨고 어차피 내가 죽기 전에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 이건 불변이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한들 우리는 인간이기에 죽을 것이다. 나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나에 그저 친구인 뿐이다. 그들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고 나 역시 그들을 책질 수 없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다던가 해서 지켜야 할 것이 나에게 생긴다면 내 몸을 팔아서라도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다. 이 병동에서 살아나간다 한들 어차피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간 하고 싶은 일은 충분히 해왔다. 가고 싶은 많은 곳들을 다녀왔고 먹고 싶은 것을 충분하게 먹었고 사고 싶은 것은 대부분 구입을 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식대로 충분히 사랑하며 살아왔고 그래서 사실 이 병동에 있으나 이 병동 밖의 세상에 있으나 그 어느 곳이던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다시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그래. 그거야. 바로 그거. 젊으니까 바로바로 따라 하네."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아저씨 A는 젊은 친구의 스쿼트 자세를 보정해주고 있었다. 문득 조금이나마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들이 부러워졌다. 하지만 식곤증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잠이 쏟아졌고 나는 잠에 빠져든다. 입원해 있는 약 2주간 꿈이란 걸 꿔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긴 꿈을 꿨다. 전쟁통 같은데 엄마가 기차 플랫폼의 끝에 서 있었다. 나를 보고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영화 같은 곳에서 보는 흔한 이별 장면 같았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손을 흔들며 달려갔지만 나와 엄마는 꿈에서 깰 때까지, 꿈에서 깨고 나서도 만날 수 없었다. 무척 짧은 꿈이었지만 꿈속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꿈에서 깬 나는 한참을 울었다. 병동 안에서의 시간은 찬 잘 간다. 꿈을 꾸고 한참을 울고 나니 어느새 다시 저녁이 되었다. 저녁에는 담당의가 회진을 돌며 각 환자에 대한 상황에 대한 설명 등을 해주고 있다. 담당의는 우리 병동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건강 A 아저씨에게 가장 먼저 갔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제가 왜. 제가 왜죠? 저 이렇게 건강하고, 샤워도 꾸준하게 하고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구요. 그런데, 제가, 제가 왜죠?"

아저씨는 무언가 억울한 지 담당의에게 항변을 늘어놨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써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서의 최선은 이 정도일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저씨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저녁에 이동을 하게 될 거예요. 미리 짐을 싸 두세요. 곧 다른 팀에서 데리러 올 겁니다."

그 아저씨는 체념을 했는지 조용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 병동에서 나간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상태가 호전이 돼서 퇴원을 한다는 것, 혹은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간다는 것. 간헐적인 기침이 복막에 까지 문제가 생겼는지 딸꾹질까지 시작하게 된 나는 타인의 아픔에 동정할 여력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잠이 들었고. 내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 일어났을 때 그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냥 분주하고 정신없이 산만했던 한 공간에 블랙홀 같은 적막이 생긴 것이  어색하긴 했지만 사라져야 하는 것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그러니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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