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기왕에 경진지평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청계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 아마 데이비드 너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 일거야."
"해보세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들어보면 알것지."
"이미 지나오면서 봤지만 청계천이 한강 같이 큰 하천은 아닌데 조선 건국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도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큰 지역적 차이를 만들어 낸 하천이야. 예전에는 청계천을 기준으로 한양을 남과 북, 동과 서로 구분해서 북촌, 중촌, 남촌, 웃대, 아랫대라고 구분을 했어."
"북촌과 남촌은 뭐 방위에 따라 만들어진 것 같은데, 웃대와 아랫대는 뭐냐?"
"지금 서울의 강남을 처음 개발할 당시에는 영동이라고 했는데,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말이었지. 비슷하게 청계천의 상류와 하류를 그렇게 불렀는데, 영동과 같이 단순히 지형적인 특징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던 듯 해. 웃대는 청계천의 상류 쪽이니 아무래도 물이 맑았겠고, 아랫대는 오염이 되어 좀 더 지저분했겠지. 그리고, 조선시대는 사대부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신분 정치 체제의 계급사회였잖아."
"그래, 그럼 웃대는 문관과 양반이 살고 아랫대에는 중인이나 상인들이 살았던 지역인 모양이구나. 그리고 그 명칭은 거주자들의 신분도 암시하고… 아랫대 사람들은 웃대 사람들이 발 씻은 물로 세수했겠네.."
"그래. 네 말대로 지명이 좀 시니컬한 것 같기도 하지? 그리고 남촌 북촌과 관련된 말로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것이 있는데, 남촌은 술맛이 좋고 북촌은 떡 맛이 좋다는 뜻이야."
"남촌에는 술집이 많고 북촌에는 떡집이 많다는 말이냐?"
"그 말도 맞네. 사실 지금 남산 밑 회현동이나 명동 쪽에 카페와 술집이 많지. 북촌 근처인 낙원동에 가면 유명한 떡집들이 많이 모여있고. 그런데, 조선 시대에 남촌에는 남산골샌님이라고 해서 벼슬도 못하고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 살았었다고 해. 혹시 ‘남산골샌님 역적 바라듯’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냐?"
"...."
"역적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역적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 같은 이라는 말이야. 남산골샌님들은 집안도 배경이 없고 가난하여 벼슬을 할 기회가 적어서 누군가 역적이라도 나오면 한 번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의외의 상황을 바라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지."
"고려의 귀족 사회가 아닌 그래도 나름 시험 봐서 출세하는 사대부 중심의 사회라도 배경이나 연줄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네. 세상이 다 그렇지 어디 완벽한 시스템이 있겠냐. 서로 고쳐가며 쓰는 것이지… 물론 네 말대로 신정왕후의 신장석을 이상하게 쳐 박아서 만들었기는 하지만 광통교 같은 튼튼한 다리도 놓아져서 웃대나 아랫대 사람들 모두 편해지긴 했을 것 같네."
"그랬을 거야. 하여간 청계천을 중심으로 근대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1899년에는 이 다리 옆으로 전차선이 지났고, 1910년에는 전차선이 복선화 되면서 광통교 위로 전차길이 생겼어. 1410년에 돌로 튼튼하게 만든 것이 500년 후 일제 강점기에 항일과 민족경제 수호를 위한 상징적인 심리적 저항선으로서 도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전차길이 민족경제 수호를 위한 선이라는 말은 데이비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사실 한양은 요새 말로 하면 조선 건국과 함께 만들어진 계획도시인데, 시차를 두고 세워진 다섯 개의 주요 궁궐이 자리를 잡고 있지. 어딘지 알아?"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경희궁, 그리고 여기 창경궁이지."
"잘 아는구먼. 덕수궁은 원래 경운궁이라 했지. 여하간, 이 5개 궁의 정문을 지나면 금천(禁川)이라고 부르는 하천이 하나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놓여 있지. 왕과 신하의 세상을 구별하는 것으로 궁으로 들어갈 때 늘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 그리고, 궁궐에 흐르는 禁川은 모두 청계천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물이 왕과 백성을 연결해 주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왕들도 늘 눈으로 금천의 물을 보면서 백성을 생각하도록 한 장치 같다는 생각도 들어. 특히 비원이라고 알려진 창덕궁 후원에 가면 옥류천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위를 깎아서 물이 흐르게 되어 있고, 그 물이 관람정이라는 부채꼴 모양의 정자가 있는 연못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니까 청계천이 왕과 백성이 나라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자연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도 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조선의 왕은 정치를 통해 백성들이 먹고사는 일을 항상 보살피고 있어야 한다는 상징 같기도 하고.. 또 근대에 전차가 청계천을 기준으로 지났다면 일본인들이 많이 있었던 청계천 남쪽과 어느 정도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네"
"언젠가 또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청계천 북쪽인 종로가 김두한의 나와바리 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볼 수 있지. 일본 백화점들이 청계천 남쪽에 많았던 반면에 화신백화점은 청계천 북쪽에 있었으니 뭐 좋게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 그보다 중요한 건 청계천이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대에 따라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야.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말이지."
데이비드는 청계천과 같은 작은 하천이라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큰 궁궐이 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아봐야겠네.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