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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잘 쓰는게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by 김주임 Feb 01. 2025

"저 차단기가 안열려요."


"차단기가 안열리신다구요? 혹시 천천히 차를 뒤로 뺐다가 다시 천천히 들어와보시겟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은 입주민은 내 말대로 시도해봤지만 결국 차단기는 열리지 않았다. 


"입주민님 혹시 기계가 차량 번호를 잘못 인식 했을수도 있거든요. 지금 확인되는 번호로 기계에서 인식하는 차량 번호를 한번 찍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후 받은 사진을 가지고 차단기에 인식하는 차량번호를 확인해보면 7을 9로 적어놓기도 하고 "소"라는 글자를 "고"라는 글자로 인식해서 입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주민에게 사진을 받아 확인을하고, 입주민 등록카드를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글씨가 조금헷갈릴 것 같았고 그 결과로 차가 들어오지 못한것이다. 나는 입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입주민님, 죄송합니다. 제가 확인해보니까 저희가 입주자카드에 적힌 글씨를 잘못 봐서 차 번호 등록이 잘못되었었네요. 보내주신 사진을 보고 수정했으니 이제는 불편하실 일 없으실 거에요."


이렇게 안내한 데에는 악동같은 내 작은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글씨가 자유로워서 알아보기가 힘들었어요.' 


 하루에도 20장이 넘는 입주자 카드가 들어오던 입주 초기. 차단기가 열리지 않는다는 민원전화를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그 때는 소장님의 재량으로 차량등록증을 확인하지 않고, 오직 입주민이 적은 그대로 차량 번호를 등록했기 때문이다. 소장님의 경험으로 입주 때에 그것까지 확인했다면, 업무 처리 시간은 배로 늘어나고 불만도 배로 늘어났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뒤로 조금 헷갈리는 글자나 숫자가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글자가 맞는지 물어보고 아니라면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 당직 근무자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해주셔서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차량 번호를 정확하게 받고, 아파트 주차 스티커에 차량 번호를 정확하게 적어서 전달해주는 일련의 로보트같은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던 어느날이었다. 


 "네 주차 스티커 차량 앞 유리 하단에 꼭 부착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통상적인 안내가 끝났는데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차 스티커 벌써 받았어?"

"응"
"아, 내가 쓰려고 했는데!!! 글씨 진짜 못 쓴단 말이야."


'와 저 이야기를 이렇게 면전에 대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진짜 있네. 기분... 나쁜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내 주차 스티커를 받은 남편이 아내에게 스티커를 보여주었고, 아내의 대답은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럽다. 


"봐줄만하네"


정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글씨로 평가를 받다니. 못알아볼 정도도 아니고 헷갈리는 글자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낮에만 근무하는 사람들이 적어준 스티커와 밤에 스티커를 받은 사람들의 스티커 인증 사진이 올라오면서 관리사무소 직원이 주차스티커의 글씨가 보통이네 어떻네 말이 나왔던 것이다. 입주 아파트에 먼저 들어간 경험을 아직 입주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글을 블로그 또는 아파트 카페에 올리게 되면서 그 스티커도 올리게 된 것이 시작이 된 것이다. 


 전에는 당연히 주차 스티커도 내가 적어주었는데 이런 글씨체 이슈로 입주민에게 하는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주차스티커에 직접 써보시겠어요?"


 대부분은 써달라고 하시고, 일부는 본인이 직접 쓰겠다고 하신다. 우리가 쓰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직접 쓰는데 알파벳이 틀렸거나 생각보다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낙장불입. 새 상품에 비닐 뜯고 써 본 다음에 반품 안 되듯, 우리도 새로운 스티커를 제공할 수 없고 안내를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안들어도 그 스티커를 가져가신다. 내내 눈에 밟히고 거슬리겠지. 안타까운 마음을 공감하는 얼굴뒤 속 마음으로 통쾌함을 느낀다. 가끔은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요즘같은 시기에 글씨를 잘 쓰고 잘 못쓰고가 중요한 시대일까? 필요한 문서가 있다면, 파일로 받아서 컴퓨터로 타다닥 치면 그만이다. 우체국으로 왔다갔다하는 대부분의 문서는 컴퓨터로 뽑고 보내는것은 택배 물건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예쁜 글씨체를 온라인에서 구매해서 쓰기도 한다. 내가 글씨를 잘 쓰고 못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짧지만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나오는가. 그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글씨를 곧고 바르게. 예쁘게 쓰는 사람이 부러운 시대가 되었고, 서점에는 어떻게 글씨를 예쁘게 쓸 수 있는지 자신만의 비법과 글씨체를 따라 할 수 있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내 남편 역시 예쁘게 글씨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글씨를 교정하는 책을 사기도 했다. 글씨 교정 책을 사서 글씨가 교정이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효과는 없었다. 


 나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손 편지도 많이 썼고, 러브장이라는 것도 했었다. 러브장은 연애편지처럼 한장에 마음을 꾹꾹 눌러 적은 문장이 아니고 다양한 그림과 표현을 노트에 꾸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모르라드는 간지러운 표현을 얼마나 예쁘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했던 사랑의 표현이었다. 러브장이 아니더라도 친구끼리 교환 일기를 쓰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집중을 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글씨가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졌었다. 


 이제는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타다닥 치고 인쇄를 누르면 되는 시기여서 그런지 못알아보는 글씨들이 많아졌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글씨를 잘 쓰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써야하는 몇 안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손 글씨가 가장 중요한 순간을 뽑으라면, 전,월세 매매를 포함해서 아파트에 처음으로 입주자 등록 카드를 쓰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편히 들어가야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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