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야 Aug 28. 2023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 메타세쿼이아


 출처-담양군 블로그


내게 만일 널찍한 마당이 생긴다면 꼭 심고싶은 나무들이 있어. 꼭 마당이 아니어도 좋아. 길게 쭉 뻗은 길도 참 좋지. 그런 공간이 있다면 나는 둘레에 메타세쿼이어를 심을 거야. 메타세쿼이어는 가로수로 많이 심겨지는 인기있는 나무야. 메타세쿼이어를 길 따라 길게 심어 명소가 된 곳들도 있을 정도지. 특히 유명한 곳은 담양과 남이섬에 있. 그런데 꼭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메타세쿼이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곳곳에 워낙 많이 심겨진 나무니까 말이야. 주변을 다니다가 껑충한 키에 세모꼴의 길쭉한 모양을 뽐내고 있는 나무를 만난다면 그게 바로 메타세쿼이어일거야.   


메타세쿼이어라는 이름은 영어이름을 그대로 쓴 거야. 플라타너스도 영어인데 우리말로 양버즘나무라는 이름이 있지. 하지만 메타세쿼이어는 그냥 메타세쿼이어야. 우리말 이름은 따로 없단다. 무슨 뜻일까? 이름 속에 들어있는 '메타'라는 말을 들어보았니? 공부할 때 중요하다는 '메타인지'라는 말도 있고 요즘 자주 쓰이는 '메타버스'라는 말도 생각나네. 이 낱말들에 들어있는 '메타'는 모두 같은 뜻이야. 무언가를 뛰어 넘는, 그 이상의 것이라는 뜻이거든. 메타세쿼이어란 뜻은 그러니까 세쿼이어를 뛰어 넘는, 세쿼이어 이상, 이후의 나무라는 뜻이겠지. 세쿼이어라는 게 있냐고? 그럼, 진짜 있어! 세쿼이어도 나무의 한 종류야. 메타세쿼이어와 아주 가깝고 닮았지만 크키가 훨씬 크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멀리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볼 수 있다고 해. 세쿼이어 중에 큰 나무는 상상할 초월할 정도로 크단다. 100미터가 넘는 나무도 있었는데 건물 한 층 높이를 대략 3m라고 하면 30층이 훌쩍 넘는 대단한 높이야. 


메타세쿼이어 나무는 화석으로 먼저 발견되었어. 세쿼이어와 비슷한데 뭔가 좀 다른 나무가 화석으로 발견된 것이지. 학자들은 그래서 세쿼이어와 비슷하지만 나중에 발견되었다는 뜻으로 '메타'라는 말을 앞에 붙였어. 그런데 그 이후에 진짜 살아있는 메타세쿼이어가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견된 거지. 그 이후로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 나무를 번식시키고 가로수로 가꾸며 키웠어. 그러다보니 메타세쿼이어는 점점 널리 알려지고 더 인기를 얻게 되었지. 그 덕분에 요즘에 와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로수 중 하나가 되었단다. 


출처-경주문화관광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새를 수형이라고 해. 메타세쿼이어의 수형은 굉장히 매력적이야. 아기들이 노는 장난감 중에 나무 모양 블럭 하나를 상상해 볼까. 어떤 모양일까. 아마 원뿔(고깔 모양)로 된 부분 아래에 긴 몸통이 달려있는 모습일 거야. 세모 밑에 길쭉한 네모! 바로 그 전형적인 나무의 모습이 메타세쿼이어의 모습이야. 나무의 수형이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계절은 겨울이야. 잎도 꽃도 남아있지 않은 나무는 앙상해보이기도 하고 볼품없이 보이기도 해. 하지만 겨울의 메타세쿼이어는 수형이 더 도드라져 단정하고 꼳꼳해 보이지. 계절이 바뀌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저녁 노을 질 무렵에 높은 하늘까지 뻗은 메타세쿼이어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단다. 그 멋진 광경을 꼭 한 번 만날 수 있길 바랄게. 이 나무가 세모난 수형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어. 바로 아래층 가지가 가장 길고 위로 올라갈 수록 가지가 조금씩 짧아지기 때문이야. 신기하게도 층층마다 뻗은 가지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나지 않아. 조금씩 방향을 틀며 자라지. 가지에 나는 잎들이 서로 골고루 햇볕을 받게 하기 위한 전략이야. 나무들은 이처럼 자기만의 생존전략을 지니고 있어.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 똑똑한 존재들란다


메타세쿼이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을 지닌 나무야. 화석으로 발견되기도 했고,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살았던 나무여서 그렇대. 공룡은 이제 화석으로만 존재하는데 그 시대를 함께 했던 나무가 여태 살아있으니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것이지. 은행나무, 소철과 함께 메타세쿼이어는 아주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지내며 살아남았어. 내가 길가를 오가며 만나는 메타세쿼이어가 공룡시대에 살았던 바로 그 나무는 당연히 아니겠지. 그 나무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 중 하나일거야. 그래도 나는 메타세쿼이어를 보고 있노라면 공룡시대가 떠올라. 내가 살던 마을에도 공룡이 살았겠지? 이곳은 혹시 그때 땅이 아니고 은 바다였으려나.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지구였겠지만 그 안에서 메타세쿼이어는 한 쪽 풍경을 단정히 채우고 있었을 거야. 


수천만년 전부터 지구에서 대대손손 살았다는 것, 여태껏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 나무에게 영광일까, 수치일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급격하게 온갖 풍파와 변화를 겪으면서 메타세쿼이어가 뿌리와 줄기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천년 넘게 사는 나무가 일백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세상을 헤짚어놓는 인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메타세쿼이어 줄기에 초록색 이끼가 잔뜩 끼었어. 어떤 나무는 지의류가 온 몸을 덮고 있어. 그 위로 가만히 손을 얹으며 들리지 않는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척 하게 돼. 언젠가 나무의 이야기를 꼭 한 번 듣고 싶어져서 말이야.


별과 우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말하더구나. 광대한 우주와 반짝이는 별들을 마주할 때는 나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것이 실감난대. 나는 공룡시대부터 존재하는, 그리하여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나무들을 만날 때 딱 그 기분을 느껴. 나의 수십년 세월이 거대한 존재들 앞에서 더 작아지는 기분, 지금보다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그런 마음 말이야. 수천만년의 세월을 이 나무가 어떻게 견디어 왔는냐고? 그건 아주 단순하지. 초봄에 꽃을 피우고-메타세쿼이어도 꽃을 피워. 연둣빛 꽃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초봄부터 나무를 잘 살펴봐야 해.- 열심히 잎을 내고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장미꽃같은 솔방울을 여물게 하지. 요즘에야 가로수로 살다보니 사람들의 손을 빌어 번식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 전까지 수천만년 동안 꽃 피우고 씨앗 맺기를 묵묵히 반복해왔을 뿐이야. 우리의 하루도 그렇지 않을까. 매일 하는 일들, 때로는 겨우 해내는 일들. 그런 일들이,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긴 세월을 만들고 켜켜이 쌓아올린 세월을 보며 나는 또 하루를 견디게 되지. 



  


 


이전 14화 너의 백일은, 배롱나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