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빨간불
내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가 있으면 남은 시간을 보면서 뛰어갈지, 다음 신호를 기다릴지 고민된다.
예전에는 무조건 뛰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급하지 않는 이상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 더 많다.
필라테스 운동이 끝나면 개운함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느끼는 것은 극한 운동 후 겪는 힘듦이다.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가면 운동하러 가기 전보다 훨씬 느려진 걸음걸이를 느낄 수 있다.
9시 수업을 들어가면 정확히 50분에 수업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챙겨 입는다. 높은 건물이다 보니 4대의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2~3분은 족히 기다리는 것 같다. 건물밖을 나와 옆 건물에 있는 다이소까지 걸어가면 아직 다이소 오픈 시간인 10시가 되기 조금 전이라 사람들이 오픈런을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이소 건물을 지나면 홈플러스가 있다. 거기에서 왕복 8차선의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야 한다.
정확한 시간에 수업을 마치고, 걸어가는 속도가 비슷하다 보니 내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의 신호도 늘 일정하다. 살짝 뛰어가면 충분히 초록불의 신호가 끝나기 전에 반대편에 닿겠지만, 3분의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그 시간 동안 숨을 고르고 천천히 쿨다운 하는 시간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같은 건물에 있는 단골 안경점에 아이의 안경을 고치러 갔다가 안경점 여사장님도 같은 필라테스를 다니시는 걸 알게 됐다. 일대일 수업을 하시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신다.
-저는 집에 갈 때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데요? ㅎㅎㅎ 횡단보도 신호 바뀌어도 절대로 못 뛰어요
맞아 맞아, 둘이서만 공감하는 대화를 한참 나눴다.
같이 듣고 계시는 남자 사장님은
-아니 그냥 줄만 땡기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아내가) 그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지~인짜 힘들어요,라고 말씀드려도 건장한 남성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