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너지드링크 Sep 20. 2020

선배, 나는 이 일이 적성에 안 맞아요.

혹시 적성에 맞다는 사람 있으면 한 명만 찾아올래?

이래 저래 세월이 가다 보니 지금 직장에 선임이 돼버렸다.

 연차 순으로만 보면 위에서 네 번째지만 하는 일은 신입일이다 보니 농담 반, 진담 반 나 스스로를  '여왕 일개미'라고 불러 달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다.


 내가 겪은 세월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니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결혼이 세상 전부였던 A는 만나는 사람마다 결혼은 했는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를 묻고 다녔고 당연히 퇴사 이유는 '결혼해야 해서'였다.


불만 투성이 B는 이게 나쁘고, 저게 나쁘고, 이건 뭐가 잘못되고  내뱉는 모든 말이 불만이라서 같이 이야기하기가 껄끄러웠다. 일에 있어 잦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이 회사의 '계약직  구조가 잘못되었다'라고  열변을 토하며 나갔다.

황당한 건 다음 해에 계약직을 또 뽑았는데 지원했었다는 것이다. 여기처럼 정규직과 동급의 대우를 해주는 곳이 드물다는 것을 나가서 알았나 보다.  ( 담당자가 서류에서 탈락시켰다고 한다.)


한참 바쁜데 사람이 없을 때  들어온 최고령자 C는 다른 회사의 부서장급 일을 하다가 나왔는데 다시 신입일을 하겠다고 들어왔다.

(사실 부서장님의 사람 뽑는 기준 자체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우리 일은 앉아서 하는 일보다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은데  정말 계속 자리를 지켜며 앉아 계셨다. 바쁜데 앉아 계시길래 계속 움직이셔야 한다고 다그칠 때도 꼼짝하지 않아서 내 몸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동창회를 다녀오시고는 급히 관두셨다.

이유인 즉 , 친구들이 나이도 있는데 이제 집에서 편히 쉬라고 했단다.  (아마 자신이 일 안 한 것은 말하지 않고, 나이 어린애 하나가 자꾸 일하라고 갈군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이런 와중에도 보석 같은 후배님들이 들어왔기에 늘 고맙게 생각했고 지금 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돼주었다.  그런데 일 잘하고 꼼꼼한 D가 갑자기 상담 아닌 상담을 해왔다.



" 선배, 저는 이 일이 적성에 안 맞아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는 이 일이 잘 맞아서 할 거 같아? 런데 뭐 때문에 적성 이야기까지 하며 안 맞다는 거야?"


"저도 여기 들어온 지 4년이 되었는데, 학교 졸업할 때 보다 지식이 더 늘어난 것 같지도 않고 이 일이

 보람차지도 않아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나에게 맞는 일 같지 않아요."


"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책에서 읽었거든. "


나는 내가 읽은 책에서 본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릿 203~209p)


벽돌공의 우화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세 벽돌공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두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세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첫 번째 벽돌공은 생업을 갖고 있다. 두 번째 벽돌공은 직업을 갖고 있다. 세 번째 벽돌공은 천직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세 번째 벽돌공 같기를 원하지만 실제는 첫 번째나 두 번째 벽돌공과 같다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천직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완성품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직업을 생업, 직업, 천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 나도 이 일이 맞아서  하고 있는 건 아니야. 계속 일을 해 보면서 정 안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일도 알아봐. 그렇지만 계속 찾기를 멈추지 말아야 해.  어쩌면 이 일이 천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 수 도 있고."


나에게도 지금의 일이 천직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남아있게 되었고 여기까지 왔다.  직장인이라면 의례 하는 '확 관둘까?'를 나도 너무나 많이 되뇌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 전에 관두기를 밥먹듯이 했다면, 결혼과 함께 책임감과 성숙함이 더해져 쉽게 퇴사를 결정 내리지 못하게 된 면이 있다.

나도 얼마나 많은 시간, 많은 밤들을 고민하고 보냈는지.

재작년까지도 고민만 하며 살았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하고 또다시 고민하다 다시 잊를 반복했다.

그러나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똑같이 살면서 달라지길 바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작년부터 정신을 좀 차리고 이 일이 내 천직이 아니라면, 천직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이것저것을 시도해 보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내가 원하는 그것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나는 그 후배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부터 일에서든 생활에서든 단 하나라도 평소 안 하던 거 하나라도 해봐.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면 거기서부터 찾아보는 거야. 서두를 필요 없어.  적성에 맞는 그일? 찾아가면 되니까."


오늘 그 후배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전 16화 일 잘하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 남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