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제 Oct 05. 2020

너는 나는 검정 속이었다


예상보다 늦어졌다. 전혀 관계되지 않은 기억나지 않는 기 억날 필요조차 없는 숫자들을 들으며 자리에서 발끝만 왔다 갔다. 시계는 왔다 갔다. 시간은 왔다 갔다. 언제나 빗나간 다. 모두 다른 몇 시 몇 분 몇 초의 시간. 단위의 시간. 시간 의 단위. 어림잡을 수가 없어서 조각조각 쪼개어 볼 수가 없 어서. 더는. 너는. 빨라지고 느려진다. 느려지고 빨라진다. 몇 숨이 더 지나 사람들 틈을 지나 세 개의 계단을 지나 큰 문 앞에 잠시 큰 문을 여는 방향을 잠시 주춤주춤 헤매다. 밖 이다. 밖이었다. 첫 숨을 뱉으니 검정 속이었다. 호흡. 검정 은 낯설었고 차분했다. 이번엔 모든 발로 왔다 갔다. 여전히 방향을 헤매다. 검정에 직면했다. 명목. 이날의 검정은 결이 보드라운 잠옷을 그대로 입은 채 아무렇게나 바닥에 털썩 주 저앉아 먹던 카스테라 같았다. 나무 탁자 위에 퉁명스레 놓 여진 둔한 카스테라와 우유팩 그대로 빨대가 꽂혀져 있던 그 ‘것’ 같았다. 결락. 버스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빵 집에 갔다. 길 건너 두 번째 빵집에 갔다. 코너를 돌아 또 다 른 세 번째 빵집에 갔다. 것은 없었다. 것은 어디에도 없었 다. 것은 아무데도 없었다. 것은 아무래도 없었다. 다른 빵 집에 가보려다가 관뒀다. 것은 없었다. 여전히 검정 속. 것 은 없었다. 어디에도. 아무데도. 아무래도. 하지만 여전히 너 는, 나는 검정속이었다. 




이전 05화 고백의 도피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