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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제 Oct 05. 2020

열하나와 열아홉의 당신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적으려다가 몇 번이고 실패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이야기. 열아홉 당신 이 견딘 죽음은 그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도 도저히 쓰일 수 가 없어서. 나는 이렇게 두서없이 주섬주섬 뭐라도 건넵니 다 당신에게. 


익숙한 듯 내뱉는 저 왔어요 하는 목소리와 벌써 이리도 지났는데 그렁그렁 한 눈을 한 채 멋쩍은 듯 돌리는 고개가 슬퍼 서 아무 말도 건넬 수가 없습니다. 나지막이 담뱃불을 붙이 고 소주를 따르고 꽃을 두는 당신의 속과 숨과 손과 눈이 나 는 아픕니다. 당신은 이와 비할 수 없이 아프겠지요. 


한 번은 우리는 송진 가루가 날리던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린 해가 비치던 날이었지요. 체리씨를 뱉어내는 것 에 집중해서인지 개미의 움직임도 눈치채지 못했지요. 마지 막 체리씨를 뱉어 내는데 당신의 무릎 위에 제법 커다란 개 미 한 마리가 올라와 있었지요. 그때 무슨 생각이 든 당신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태우는 날이었어로 시작된 소리에는 헤아릴 수 없 이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당신은 나비를 말했습니다. 사람이 다 타는데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더라고 그 한 사람이라는 말을 애써 삼키며 말을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랑 같이 있었어 근데 나비 한 마리가 자꾸 엄마한테 오는 거야. 훠이 훠이. 손을 저어도 엄마 어깨에 앉았다가 손등에 앉았다가 머 리에 앉았다가 하더라 아무리 해도 안 가는 거야. 


나비는 무슨 색이었어 나는 괜히 당신의 호흡을 한 번 떼어 냈습니다. 하얀색 나비였어. 무튼 나비가 엄마 옆에서만 그 러는거야 계속. 엄마는 그랬어 그 하얀 나비가 아빠라고. 나 는 괜히 체리씨만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손가락에 물 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내 손가락을 닦으며 말을 잇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화장터에서 풀어 놓은 나비라는 걸 알 고 있었어. 그래서 풀어 놓은 나비라도 아빠라고 믿었지. 체리물이 든 손을 말끔히 닦아 낸 당신이 이제 당신의 아버지 를 셋으로 나눕니다. 


셋으로 조각난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 옆에 둥둥 떠있습니다. 


여담. 미소 짓는 당신의 입이 밉습니다. 나는 오늘 꿈을 꿉니다. 열여섯의 당신과 나무에 오르고 열일곱의 당신과 함께 비를 맞고 열여덟의 당신과 구름을 먹고 난 열아홉의 당신을 온 힘을 다해 껴안습니다. 다시 열하나의 당신과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참 미운 당신을 더 꽉 안아줄 것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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